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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자가 다 힘들다, 과연 그럴까
 
요즘 회사 다니는 친구들로부터 근심 어린 목소리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 하나 같이 친구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과연 회사에서 내 위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앞으로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들 말이다.

회사에서 인정 받기 위해 소위 ‘악바리’처럼 자신의 삶을 바쳐 왔던 그녀들이다. 혹자는 그녀들을 ‘명예남성’이라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을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의 극심한 경쟁 속에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아서 다른 여성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어했던 그녀들이기에.

[여성배제 논리가 통용되는 노동시장] 일러스트-오승원

그러나 요즘 나의 그 열정적인 친구들은 지쳐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악화되어온 경제상황 때문에 기업들이 모든 노동자들을 옥죄는 탓이라고, 모두들 같이 힘든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내 친구들이 느끼는 허탈함이 ‘모든’ 노동자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무게일까?

'삼팔선'(38세 퇴출), '사오정'(45세 정년) 등으로 표현되듯 이제는 어떤 일자리도 평생 동안 자신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사람에게 있어 자신의 현재의 일터는 중요한 삶의 터전이고, 일터에서의 자신의 위치는 곧 자신의 정체성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사회이기에, 이들은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들만의 레이스, 승진에서 밀려나는 여성들


실상 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그녀들이 요즘 경험하고 있는 현실은 ‘밀어내기’다.

한 친구는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한 부서에서 전반적인 업무 과정을 두루 거친 실무 능력이 뛰어난 대리다. 이번에 팀장 자리가 비었다. 그녀는 이미 부서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데다, 남자동기들 중에는 대리 직급임에도 벌써 팀장을 꿰차는 이들도 눈에 띄고 하니, 내심 팀장이 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희망을 품었다. 그렇게 되면 내년 과장 자격 심사때도 보다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팀장을 맡기기엔 “여자라서” 또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벌써부터 외부영입설이 나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비어있는 자리는 자기 부서와는 전혀 연관도 없는 타 부서의, 이 부서의 일은 전혀 모르는 남자과장이 임시로 팀장 대행을 하게 됐다. 업무만큼은 자신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감이 넘쳤던 그녀지만, 회사의 인사방식과 외부영입설에 힘이 빠졌다. 더 이상 일할 기운이 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자라서” 일 못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남보다 곱절은 더 일에 매진했던 그녀이기에 그녀가 느낀 허탈감은 더욱 더 클 수밖에 없다.

또 한 친구는 직급이 올라가도 신입사원 시절에 할 수 없이 떠맡아야 했던 비공식적 업무들, 예를 들어 팀원들의 생일을 챙기고 회비를 걷는 일, 출장경비 처리, 차 접대 등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아직도 하고 있다. 팀장은 신입 남자사원들이 들어 와도 그들이 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 그녀에게 이 같은 일을 맡긴다. 여자가 할 일, 남자가 할 일을 구분해 놓고 있는 팀장은 그녀가 지금 회사의 중요 업무를 맡고 있는 것도 불만이다.

심지어 새로 들어온 남자사원들에게 핵심 업무를 나누어 넘기라고 업무 분장을 강요했다. “대외업무는 남자가 하는 것이 편하지 않겠냐”면서. 남자사원들이 들어 오기 전에는 미혼이라서 “집에 일찍 안 가도 되지”하며 야근을 시키는 등 철저히 부려 먹었던 그다. 그런데 지금까지 잘 해 왔던 업무들을 넘기라니, 직급상 권력관계가 분명한 조직에서 받아들여야만 하겠지만 그건 “나가라”는 소리나 다름 없다. 모든 것을 빼앗길 위험에 처한 그녀는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 지 걱정이다.

효율성 논리보다도 우선시되는 가부장적 사고의 벽

그녀들의 고민은 거의 비슷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직급이 올라가도 여자들이 할 일이라고 규정 지워놓은 틀에서 벗어나기란 힘들며, 승진의 기회를 잡으려 해도 번번이 “여자”라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탈락한다. 회사 내 경쟁은 오직 남성들만의 레이스다. ‘끼워주기’가 허용되는 건 가장 부려 먹기 좋은 ‘대리’ 직급 정도까지다. 그 다음부터는 철저한 배제다.

어려운 취업의 문을 뚫고 들어선 나의 친구들, 여성노동자들은 ‘노력만 하면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논리가 통용되는 세상을 꿈꾼다. ‘여자’냐 ‘남자’냐에 따라 평가의 척도가 달라지는 편협한 세상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면 능력 있다고 평가 받고, 그만큼의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 말이다.

기업들의 노동자 통제와 억압의 정도는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지만, 특히 여성노동자들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시장중심의 효율성 논리보다 우선시 되는 이 견고한 가부장적 사고의 벽을 어떻게 균열 낼 수 있을 것인가? 고유영아일다는 어떤 곳?

    [관련 기사보기 ->기혼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진짜’ 이유최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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