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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고맙다.”
2006년 12월. 수 많은 벽장 중 하나의 벽장 속에서 나오며 들었던 말입니다.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한 순간, 4년 전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빛과 말들이 떠오른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요. 단 한번도 어머니가 그런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때 어머니의 눈빛은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눈빛이었던 지라, 얼마만큼 맞았는지, 그게 아팠었는지, 어머니가 울었었는지, 어떤 욕을 했는지 등의 반응에 대해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 이후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외출금지와 지나친 감시. 마치 제가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듯한 부모님의 태도까지도요.

커밍아웃('벽장 밖으로 나오다'라는 뜻.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것) ⓒ일다

이성애자 친구의 우정 메시지

2006년 12월. 친구에게 호감이 가는 아이가 있다고 얘기 하던 중 “그 앤 열여섯이야.”라고 말했더니, “혹시. 네가 늘 말하던 걔는 여자 아니가?”라며 반색과 동시에 반문을 하더군요. 그래서 벼르고 있던 커밍아웃을 “응.”이라는 말 한마디로 엉겁결에 해버리게 되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친구는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하여 날 벽장 밖으로 당겨주었습니다. 평소 동성애에 대해 ‘이해는 하겠지만 납득은 할 수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그래도 난 싫더라. 진짜 싫다.’는 문장으로 말을 끝맺는 친구였던 지라, 제 벽장탈출멤버에서 두 번째로 고민되던 친구였는데 “미안하다”니요!

사실 친구의 질문에 “응.”하고 대답을 한 이후에 ‘드디어 내가 말했구나’ 하는 생각보다 0.1초 더 빠르게, 또 3초 더 많이 4년 전 엄마의 눈빛을 떠올렸던 저를 더 미안하게 만드는 친구의 대답이었습니다.

친구가 미안해하는 이유인즉 이렇습니다. ‘이해하잖아!’ 라고 외치며 동성애 관련 워크숍이며, 축제며, 영화제를 주절주절 소개시키며 데리고 다니는 못된 동성애자였던 저에 대해서, 그냥 커서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이니까 관심을 많이 갖는 거겠거니 생각했다는 겁니다. ‘쟤가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자신의 무관심이 미안하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는 ‘난 동성애자를 싫어하지만 네가 날 믿고 말 해주는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며 웃었습니다. 이제 내 나이가 어린 나이도 아니고 스스로에 대해서 알고 판단할 수 있으니, 남인 자신이 말을 보태는 것은 “실례”라고 말하는 멋진 친구 녀석이었습니다.

‘네 사랑은 다른 사랑이니까’를 전제하는 식의 질문도, ‘이해한다’는 상투적인 대답도, 눈물만 흘리며 걱정하는 대답도 아닌, 5분전의 저로 변함없이 인정해주고 존중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로 그 친구는 자신이 알아 볼 수 있는 범위내의 동성애자 인권에 관한 정보를 ‘한 번 참여해봐’ 라는 말과 함께 제게 전달해주곤 합니다. 물론 그 정보들이 내가 늘 친구보다 먼저 입수한 것들이긴 하지만, “동성애 진짜 싫다”던 이성애자 친구에게서 받아보는 동성애자 인권에 관한 정보는, 저에겐 감사한 우정의 메시지입니다.

핀야일다는 어떤 곳?  [] “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사랑한다” [] 커밍아웃을 지지해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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