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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들이 즐길 수 있는 넷플릭스 콘텐츠

<페미니즘과 논다>④ 넷플릭스에서 페미니즘 발견하기 Ⅰ



‘TV는 바보상자다’ 그러니까 TV를 많이 보면 안 된다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TV 앞에서 몇 시간을 지내다 보면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TV의 형태는 변화하고 있다. 이제 TV는 우리를 그 앞에 앉혀두지만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있는 곳으로 TV를 가지고 올 수 있다. 가방에 넣고 다니는 노트북과 태블릿PC,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TV의 역할을 하고 있고, 심지어 보고 싶은 어떤 프로그램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기존 TV 형식의 라이브 TV, 놓쳤거나 다시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볼 수 있는 VOD, TV와 형태가 조금 다른 팟캐스트, 유튜브 등 더 많은 선택권이 생겼다. 그걸 선택하는 건 이제 내 몫이다. 다양해진 플랫폼만큼 콘텐츠도 많아졌다. 즐길 거리가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잘 골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즐길 거리’에는 분명 페미니즘도 있다. ‘TV에서 무슨 페미니즘이야? 벽에 밀치고 강제로 키스하는 걸 로맨스라고 하는 데이트 폭력이나, 백마 탄 재벌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 여성캐릭터나 안 나오면 다행이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고르면 의외로 우리의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재미있고 유용한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플랫폼 중 넷플릭스(Netflix)는 미국의 DVD 렌탈 업체로 시작했다가 미디어 산업 흐름에 맞춰 VOD 플랫폼으로 전환한 곳이다. 어느 집에나 깔려 있는 지상파 TV와 달리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플랫폼이었던 만큼, 기존 미디어가 전달하는 흔한 이야기에서 벗어난 다양한 소재를 담은 콘텐츠들을 제작, 배포하며 인기를 얻었다.

 

그런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콘텐츠 중 페미니스트들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 메리 도어 감독 다큐멘터리 <그녀는 분노할 때 아름답다> 2014


다큐멘터리 <그녀는 분노할 때 아름답다>(She’s Beautiful When She’s Angry, 메리 도어 감독, 2014)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여성운동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여성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당시 영상과 활동가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는 대학 학위를 가진 몇 안 되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졸업을 하고 나서 보니 여성문학, 여성예술, 여성사 등 여성에 대해서는 배운 게 하나도 없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 낙태죄 개정 운동, 강간 문화에 대항하는 장면, 그리고 월스트리트에서 여성활동가들이 당시 남성들이 월스트리트에서 여성을 대했던 것을 미러링하기 위해서 길을 걸으며 남성들에게 ‘거기 섹시. 다리가 잘 빠졌네’ 등의 추파를 던지며 행진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런 광경은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져서, 현재 우리의 역사가 어디까지 와 있나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운동 내에서 백인과 흑인 여성 간의 간극,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여성 간의 간극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부분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여성운동 안의 ‘다름’, 그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나아가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인종, 계급, 성을 통합할까 하는 생각으로 고민했죠. 그런 이유로 우리가 ‘페미니즘’ 용어에 여유 공간을 둔 거죠. 왜냐하면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여성의 존재적 측면만 나타내는 것 같거든요.” (We were grappling with that idea of how do you integrate race, class and gender. That’s the reason why we had some reservations about the term “feminism” Because “feminism” just seemed to be dealing with the female aspect of your being.)

 

한국의 여성운동사는 아니지만 여성운동이 어떤 문제를 다루고, 어떻게 대응했는지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여성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거친 역사를 헤쳐 온 페미니스트들의 생생한 증언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없을 것이다.

▶ 제니퍼 시벨 뉴섬 감독 다큐멘터리 <미스 레프리젠테이션> 2011


다큐멘터리 <미스 레프리젠테이션>(Miss Representation, 제니퍼 시벨 뉴섬 감독, 2011) 


44 사이즈의 마른 몸이지만 왜인지 풍만한 가슴, 주먹만 한 얼굴에 완벽한 메이크업의 여성들만 나오는 잡지, TV, 영화 심지어 뉴스까지.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산업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여성들로 하여금 ‘자기를 대상화하도록’ 만든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유치원에 다니는 여아와 남아들에게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조사하면 거의 동일한 비율로 나온다. 그런데 중학생만 되면 성별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또한 13살 소녀의 53%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17세가 되면 그 수치가 무려 78.7%로 상승한다. 10대 여성의 17%가 자해를 하며, 2000년과 대비해 2010년 여성의 우울증 지수는 두 배로 뛰었다. 다큐에서는 이런 수치를 보여주면서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했는지에 대해 파고든다.

 

미디어산업이 어떻게 꾸준히 여성을 대상화하면서 수익을 얻어왔는지, 그 미디어 산업을 주도하고 있었던 것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도 밝힌다. 그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들이다. ‘백인 남성들’, 그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여성의 이미지를 ‘시청자와 고객이 원한다’는 이유를 대며 마구 쏟아냈다. 그 결과는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된 잘못된 성 관념, 특히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들이다.

 

미국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전 국무장관이 ‘여성’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경험부터, MSNBC에서 정치논평가로 활동 중인 방송인 레이첼 매도우(Rachel Maddow)가 커밍아웃한 여성 정치논평가로 겪어야 했던 차별과 지금까지도 받는 폭행, 살해 협박에 대한 증언을 듣다 보면 사회가 갖는 여성혐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미국에서 제작한 다큐이다 보니 등장인물들은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 미국 미디어산업의 폐해를 이야기하지만 다큐를 끝까지 보고 나면 아마도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거 우리 이야기 아니었어?’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지겹게 들어왔는데 뭘 또 보기까지 해야 되나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왜,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지 조금 더 세밀하게 파악하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걸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니까. 이 다큐가 마지막에 던지는 메시지도 사실 그것이다. “롤 모델을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롤 모델이 될 수 있으니 뭐든지 하라.”

 

TV시리즈, 드라마 <마담 세크러테리>(Madam Secretary)

 

성공한 여성 롤 모델을 말해보라고 할 때, 많은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실제 여성 롤 모델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있는데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일명 대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극히 낮은 수준이고, 여성정치인의 비율도 여남 동률을 이루기까지는 아직 당당 멀었다. 여성 리더십을 보여주는 콘텐츠도 그리 많지 않다.

 

2014년부터 방영 중인 TV시리즈 <마담 새크러테리>는 정치계의 여성을 전면으로 내세운 몇 안 되는 콘텐츠 중 하나다. 제목 그대로 여성 국무장관 이야기를 담고 있다. CIA 출신의 엘리자베스 맥코드가 국무장관(한국의 국무총리와 외교부 장관 역할이 섞여있다)으로 임명된 후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정치 환경 그리고 가정생활과의 양립까지. 여성이 정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과, 국무장관이라는 위치가 주어졌을 때 겪게 되는 일들을 보는 것이 꽤나 흥미롭다.

 

미국의 정치 환경은 한국과는 다른 점들이 있긴 하지만, 국무장관이 하는 일 특히 타국들과 협상을 하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미국 정치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미국 정치에 대한 소소한 정보들도 얻게 된다. 또 한국 정치와 비교하면서, 소란스러웠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임명 과정도 떠올리게 되고 한국 정치에서 여성의 입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여자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이제 그런 미신 같은 말에서 벗어나자.

 

▶ TV시리즈, 코미디 <그레이스 & 프랭키>(Grace & Frankie)

 

TV시리즈, 코미디 드라마 <그레이스 & 프랭키>(Grace & Frankie)

 

<미스 레프리젠테이션>에서 언급되는 미디어산업의 특징 중 하나는 40대 이상의 여성들이 미디어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영포티’라는 말이 등장했지만 그 영포티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40대 남성을 일컬을 뿐이다. 여성들은 언제까지나 20대에 머물러야 하는 신화적 존재인걸까? 미디어에서 나이 든 여성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적다.

 

<그레이스 & 프랭키>는 1937년생인 제인 폰다(Jane Fonda)와 1939년생인 릴리 톰린(Lily Tomlin)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코미디 시리즈이다. 동네 노인정에 모여 고스톱이나 치면서 시간을 때우는 거의 80세에 가까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콘텐츠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인생 말년이라고 생각하는 시기, 편히 쉬면서 살려고 했던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어느 날 남편들의 부름을 받고 한 저녁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남편들의 커밍아웃을 듣게 된다. 또한 그들이 연인이라는 사실도. 이후 그레이와 프랭키는 ‘남편과 자신의 삶’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딸에게 물려주고 그만뒀던 일에 다시 참여해 보려고 기웃거리기도 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멘토링 일을 하기도 하고, 노년의 여성들을 위한 자위용품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백인 중산층 가정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70~80대 여성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도전적이다.

 

실제 생활에서도 여성운동과 성소수자 인권운동 활동가로도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온 제인 폰다와 릴리 톰린이 업계에서 자리를 지키며 살아남아 연기하는 그레이스와 프랭키를 보는 것 그 자체로도 왠지 힘이 난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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