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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성영화인들의 안부를 묻다

올해 개봉한 상업영화 중 여성감독 작품 비율 2%



2017년 개봉한 상업영화 204편 중에서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는 단 4편, 전체의 2%에 불과하다.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아니라, 총 제작한 작품이 4편뿐이다. 상업영화에 비해 훨씬 적은 예산으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를 포함하여 다양성 영화의 경우엔 총 90편 중 14편. 이중에는 남성감독과 공동 연출도 있어서 여성감독의 단독 연출인 작품은 8편으로, 전체의 9%다. (출처: 2017 여성영화인활동백서)


올해 개봉한 상업영화 중 여성감독의 작품 단 4편


▶ 2017년 개봉한 여성감독의 상업영화 포스터

 

상업영화도 다양성 영화도 전체의 10%가 안 된다. 특히 상업영화의 경우에는 이렇게까지 여성감독이 없었나 싶을 정도로 2%는 충격적인 수치다. 한국영화감독조합에 따르면 현재 조합에 가입된 감독은 약 330여명이며 그 중 여성감독은 약 30여명이다. (협회는 개봉 혹은 개봉 예정작이 1편 이상이어야 가입할 수 있다.)


단 4편의 여성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싱글라이더>(이주영), <해빙>(이수연), <유리정원>(신수원), <부라더>(장유정)로 각각 약 35만명, 120만명, 2만명, 150만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발권통계 기준) 가장 흥행한 작품은 <부라더>로 올해 흥행 순위 약 20위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봉’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는 많은 영화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올해 영화제에서는 여성감독의 작품이 어느 정도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대표적인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 상영작 총 27편 중 6편(22%)이 여성감독의 작품이었다. 특색 있는 장르 단편영화를 보여주는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상영작 총 70편 중 11편(16%),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독립영화를 보여주는 서울독립영화제의 본선경쟁 단편 부문 상영작 총 28편 중 15편(54%), 본선경쟁 장편 부문 상영작 총 10편 중 2편(20%)이었다.


개봉된 상업영화 비율에 비해서는 높은 수치이고, 서울독립영화제의 본선경쟁 단편 부분의 54%라는 비율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장편으로 가면 그 비율이 뚝 떨어진다는 사실은 여성 감독들이 장편영화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극장 개봉할 수 있는 상업영화를 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 2017년 흥행 1~10위 영화 포스터. 여성의 모습이 보이는 건 ‘아이 캔 스피크’가 유일하다.


흥행 TOP10 영화 중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 단 1편


2017년은 여성감독뿐만 아니라 여성배우 및 여성배우가 연기하는 여성 캐릭터를 영화 속에서 보기가 특히 힘든 한 해이기도 했다. 10위 안에 들지 못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영화가 기억나는가? 김옥빈의 <악녀>(정병길 감독), 김혜수의 <미옥>(이안규 감독), 문소리의 <여배우는 오늘도>(문소리 감독)…. 잘 떠오르지도 않을뿐더러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김옥빈이 연기한 ‘숙희’와 김혜수가 연기한 ‘현정’이라는 캐릭터는 킬러와 범죄조직의 보스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모성애로 귀결되는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강인하고 다양한 욕망을 표출하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기대했던 관객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악녀>는 관객수 약 120만명, <미옥>은 약 24만명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발권통계기준)


<악녀> 6월 개봉, <아이캔스피크> 9월 개봉, <여배우는 오늘도> 9월 개봉, <미옥> 11월 개봉에서 알 수 있듯이, 올해 상반기 여성캐릭터 부재는 심각했다. 하반기에 들어와서 그에 관한 문제 제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이를 의식한 듯 <침묵>(정지우 감독, 11월 개봉)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라는 홍보를 하기도 했다.


▶ 영화 ‘침묵’이 벡델테스트를 적용시켜 홍보를 진행했다. ⓒ출처 CJ엔터테인먼트 페이스북     

 

벡델테스트는 1985년 미국의 만화가인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의 만화 <다이크 투 워치 아웃 포>(Dykes to Watch Out For)에 등장한 캐릭터가 자신이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 그 기준은 ‘첫 번째, 여성 캐릭터가 적어도 2명 이상 나올 것. 두 번째,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할 것. 세 번째, 그리고 그 대화가 남성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현재 벡델테스트는 영화에서 여성이 등장하는지, 발언의 기회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유의미한지를 확인함으로써 성평등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에는 자주 언급되고 있다. 여성캐릭터의 등장조차 보기 힘들었던 올해의 영화들 중에 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작품은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든 여성 제작자 1명


여성영화인에게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결과가 보이는 2017년의 가장 빛나는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건, 2017년 흥행 1위와 천만 관객 돌파 영화로 기록된 <택시운전사>(장훈 감독)를 만든 제작사 더 램프의 박은경 대표다. 박은경 대표는 <택시운전사>로 54회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 38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18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제작자상을 받으며 제작자로서의 능력을 대중에게 알렸다.


그리고 올해 흥행 7위의 <남한산성>, 8위의 <아이 캔 스피크> 또한 각각 여성 제작자인 김지연(싸이런 픽쳐스) 대표와 강지연(시선) 대표, 그리고 심재명(명필름) 대표의 작품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 더테이블, 재꽃, 용순 포스터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다양성 영화에서도 여성제작자들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더 테이블>(김종관 감독, 구정아 제작), <재꽃>(박석영 감독, 안보영 제작), <용순>(신준 감독, 김지혜 제작)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2017 여성영화인활동백서 참조.) 이 영화들이 여성캐릭터를 내세웠다는 점에 특히 주목하게 된다.


많은 비용을 투입하여 흥행 여부에 매우 민감하고 위험부담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 상업영화의 구조에서는 빠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성 영화를 통한 여성제작자들의 도전은 더욱 눈여겨 볼만 하다. 이런 움직임들이 상업영화의 변화를 끌어올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몫은?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영화산업 내 성희롱, 성폭력 실태도 고발되었다. 그에 따른 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 자체적으로 촬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고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노력하는 영화인도 생기기 시작했다. (참고: 남순아 ‘성희롱도, 욕설도 없는 촬영현장 만들기’ http://ildaro.com/8069)


나아가 영화산업 내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상담 및 피해자를 지원을 하고 해외 성평등 영화정책을 연구하는 등의 활동을 펴나갈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영화진흥위원회 지원, 여성영화인모임 운영)이 내년 1월경에 오픈 예정이다.


여성영화인들이, 그리고 여성영화인과 관객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지도 못하는 올해의 양상들이 사라지고 내년에는 큰 변화가 생기리라 기대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관객들의 몫은,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그 이야기를 하려는 이들을 응원하는 것일 것이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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