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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아닌 인구’에 따라 임신중단 담론이 바뀌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운동>① 낙태죄의 역사 살펴보기


※ 한국의 낙태죄 현황과 여성들의 임신중단 현실을 밝히고, 새로운 재생산권 담론을 모색하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운동’ 기사를 3회에 걸쳐 싣습니다. 이 기사의 필자 ‘앎’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뭐라고? ‘낙태’가 죄라고? 그러면 여태까지 내가 보고 들은 것은 전부 뭐였는지 아연하다.


카페에서 예비 장모와 청첩장을 접으며 ‘친구들은 다 수술시킨다고 돈 빌려가는데 나는 책임감이 강해서 애를 지우라고 못 했다’고 스스럼없이 뻐기던 그 남자는 뭐였나. 언제는 결혼하자며 한사코 피임을 거부하더니 막상 임신하니까 ‘발목 잡지 말라’며 차단하더라는 그 흔하고 익숙한 ‘아는 사람 이야기’들은 다 뭐였나. 임신한 여주인공에게 ‘조용히 처리하라’며 돈 봉투를 건네는 악역과, 그녀를 억지로 병원까지 끌고 가는 주변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 수많은 드라마, 영화, 소설 속 장면들은 또 뭐였나.


어차피 ‘낙태’ 자체가 불법이라면 ‘여아낙태’를 방지하기 위해 의료인이 임신 32주 전(‘낙태’ 시술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전)까지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여 밝힐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 제20조는 도대체 뭐였나.


▶ 2017년 9월 28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여성단체들의 연대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출처: 성과재생산포럼)

 

낙태죄의 탄생


믿기 어렵지만 대한민국 형법은 1953년에 제정될 때부터 이미 ‘낙태’를 죄로 규정하고 있었다. 부녀의 임신중단을 무조건적으로 금지하는 ‘낙태’죄는 떨어질 낙(落), 아이 밸 태(胎)자를 써서 임신중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공고히 해왔다. 그러다 1973년에 모자보건법이 제정되면서, 형법상 ‘낙태’죄를 예외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 한계’를 규정하였다. 각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비교해 보더라도 ‘낙태’라는 용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윤리적 함의는 명백하다.


그러나 ‘인공임신중절수술’이라는 용어는 마치 소파술 또는 진공 흡입술과 같은 외과 수술을 통해서만 임신중단을 할 수 있는 것 같은 제한된 인식을 제공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임신중단에 대한 두려움 내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 기사에서는 외과 수술뿐 아니라 약물 또는 자연 유산을 유도하는 민간요법 등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포괄할 수 있는 ‘임신중단’이라는 용어를 가급적 사용하고자 한다.


일본 형법의 영향을 받아 제정된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269조, 270조)는 수차례의 형법 개정 속에서 일부 표현만 시대에 맞게 다듬어졌을 뿐 본질적인 내용은 고스란히 유지한 채로 반세기 이상 존속해왔다. 그 내용의 핵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임신중단을 한 여성을 처벌하는 269조 1항(자기낙태죄),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임신중단 행위를 한 사람을 처벌하는 269조 2항(동의낙태죄),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임신중단 행위를 한 사람이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인 경우에 가중 처벌하는 270조 1항(업무상동의낙태죄),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 없이 임신중단 행위를 한 사람을 처벌하는 270조 2항(부동의낙태죄). 임신중단 행위로 여성을 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 가중 처벌하는 269조 3항과 270조 3항, 그리고 270조에 해당할 경우에 자격 정지를 병과하는 270조 4항.


‘낙태’죄 폐지 운동에서 문제 삼는 것은 주로 ‘자기낙태죄’와 ‘업무상/동의낙태죄’이다. 임신중단을 원하지 않은 여성에게 임신중단 행위를 하는 ‘부동의낙태죄’는 그 자체가 심각한 인권침해이므로 폐지 요구 대상이 아니다. ‘자기낙태죄’와 ‘업무상/동의낙태죄’를 반드시 폐지하고, ‘부동의낙태죄’는 임신중단에 대한 중립적 용어로 수정하여 현행법보다 가중 처벌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라는 것이 ‘낙태’죄 폐지 운동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골자라고 할 수 있다.


50년 간 사문화된 법이 왜 갑자기?


형법상 ‘낙태’죄는 오랫동안 사문화된 법이었다. 형법이 제정된 이후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국가는 경제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펼쳐왔다. 이를 위해 임신중단을 용인했을 뿐 아니라 암암리에 권장해왔다. 1973년에는 인구조절 가능성을 열기 위해 인공임신중절수술의 예외적 허용 사유를 규정하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되었다. 이후 가족계획, 경제적 이유 등을 합법적 인공임신중절수술 사유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으나, 특정 종교계의 강력한 반발로 보류되었다.


▶ 1960년대와 1970년대 국가의 산아제한 캐치프레이즈. (출처: 2009년 10월 5일 보건복지부 ‘출산장려 캐치프레이즈’ 보도자료 중에서)


1987년에는 의료법에 태아의 성감별 및 고지를 금지하는 법조문이 신설되었다. 이는 출산을 억제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와 남아선호사상이 결합하여 ‘여아낙태’가 성행하자, 남녀 성비불균형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결과였다. ‘선생님! 착한 일 하면 여자 짝꿍 시켜주나요’라는 표어를 보자. 그 당시 사회 문제로 인식됐던 것은 남성의 인구가 여성의 인구보다 현격하게 많은 ‘남초현상’이었지 ‘낙태’ 그 자체는 아니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가는 ‘저출산’ 문제를 조명하며 출산장려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출산율 저하가 미래의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은 지금도 괴담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과 발맞추어 1994년에 낙태반대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2010년에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결성되면서 공격적인 ‘낙태’ 근절 운동이 벌어졌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불법 임신중단 시술을 한 병원을 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의사, 보건소, 조산사, 임신중단을 한 여성 등에 대한 고발을 이어갔으며 ‘낙태’죄의 실질적인 처벌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안전하게 임신중단을 하기 어려워졌다. 임신중단 시술 비용은 폭등했다. 잠자는 사자가 깨어나 여성의 삶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 출산장려정책 포스터 (출처: 보건복지부)


2012년 8월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업무상동의낙태죄’에 대하여 재판관 8명 중 4명의 찬성, 4명의 반대로 아쉽게 합헌 결정이 선고되었다. 해당 결정문에도 판시된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 ‘공익 대 사익’이라는 허위적인 대립 구도는 마침 인구 통제를 원했던 국가의 이익과 잘 맞아떨어졌다.


2016년 9월 보건복지부는 임신중단 시술을 한 의사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반발한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개정안 시행 시 ‘낙태’ 수술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을 침해하고 임신중단을 규제하려는 정부와, 임신중단이 필요한 여성의 몸을 사실상 인질로 삼은 의료계, 양 측에 분노한 여성들은 전국 곳곳으로 뛰쳐나와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를 벌였다.


본격적인 낙태죄 폐지 운동이 점화되었다


2016년 10월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여성모임 비웨이브(BWAVE)가 결성되어 지속적인 시위를 이어나갔다. 작년 9월에는 여성단체들의 연대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발족됐다. 다양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의 임신중단 경험을 알리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같은 시기,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등록되었고, 한 달만에 23만여 명의 동의 서명을 모았다.


청와대는 조국 민정수석을 통해 “친절한 청와대_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하다”라는 영상 답변을 발표했다. 그간 ‘낙태’죄 찬반 논쟁에서 빠져 있던 국가와 남성의 책임에 대하여 지적하고, 임신중단 불법화가 여성의 생명권과 재생산권에 끼치는 해악을 인식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낙태’죄 폐지 여부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과 현실적인 대응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어 사실상 현황에 대한 논평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작년 12월에 여성들이 청와대 앞에서 검은 시위를 진행하며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부르짖은 배경에는, 여성들의 청원이 충분히 답변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목마름이 있었다.


▶ ‘친절한 청와대: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하다, 조국 수석’ 영상 중에서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특정 종교계에서는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인 서명 운동’을 조직하는 등 덩달아 거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2017년 2월에 헌법소원을 접수하여 ‘자기낙태죄’와 ‘업무상동의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다시 심리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임신중단은 우리 사회에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여러 국가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임신중단의 불법화는 임신중단율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낙태’죄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중단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보와 접근권을 빼앗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여성들이 터무니없는 비용으로 위험하고 불법적인 임신중단 수술에 내몰리고 있다. 임신중단이 합법인 나라에서는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간단한 알약 복용으로 임신중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형법상 ‘낙태’죄가 서있는 대한민국의 지형과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낙태’죄 폐지 운동이 전개된 배경과 과정을 정리해보았다. 다음 기사에서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낙태’죄 폐지가 더 나은 사회로 연결된다고 주장하는지 Q&A 형식으로 다뤄보겠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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