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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에 필요한 적정한 돈 벌기, 3만엔 비즈니스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작은 일 만들기①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나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돈의 흐름


월급을 받고 거주를 독립하면서부터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누가 쓰라 한 것도 아니고 돈을 모아 어디에 써야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그저 내가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시작했다고나 할까. 막상 써보니 정말이지 지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달의 상태와 업무강도는 급여액으론 알 수 없었지만, 지출로는 알 수 있었다. 밥 해먹을 시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고 싶어 했는지, 식구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비한 금액과 용처를 살펴보아 감출 수 있는 건 없다시피 했다. 인터넷 사용기록만큼이나 매일의 관심사 변천부터 생활패턴까지 돈의 이동은 그 무엇보다 나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한 사람이 어른이 되었는지를 나이나 학력,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로도 평가하지만 일차적으로 판단하는 잣대는 소득 여부다. 소위 자기 밥그릇은 챙기느냐로 사회에서는 어른 대접을 판가름하는데, 고민해볼 여지없이 그 기준은 자력으로 화폐를 벌어들이는 능력에 달려있는 듯 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를 ‘졸업했으면 취직해야지’, ‘돈 벌면 결혼해서 집 사야지’로 시작되는 어른이 되는 모든 단계의 시작은 수입 발생에서부터였다. 돈 벌어 어디 쓰냐, 왜 돈을 벌어야 하냐와 같은 질문은 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모두가 이견 없이 받아들이는 관습 같은 거였으니까.


▶ 후지무라 센세가 정리한 자급자족기술 또는 작은 일 목록. ⓒ글: 후지무라 야스유키, 번역: 비전화공방서울


비전화제작자로 살면서 자연 그리고 세상과 공생하는 법을 다양하게 익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자립할 수 있는 기초근력이 될 수는 있어도 전부일 수 없다는 걸,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1년간 비전화제작자로 생활하기 위해 누구는 적금을 깨고 누구는 퇴직금을 허물며 누구는 아침저녁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경제적 뒷받침을 해줄 보호자나 동거인이 없는 경우 당장의 교통비와 주거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제작자 생활이 일정 기간 지나면서 모아둔 돈이 떨어졌다, 계약기간이 만료돼 이사를 해야 하는데 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는 목소리가 스멀스멀 일상의 수면 위로 올라왔다.


시의 지원으로 서울혁신파크에서 농사를 짓고 비전화제품을 만들며 에너지자립 건축물을 세우고 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도시 안에서 먹거리를 구할 텃밭은커녕 내 몸 뉘일 자리 구하기조차 녹록치 않다는 불안이 서로를 잠식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자립적으로 살아가보고 싶어 이곳에 왔는데, 지금 여기를 버텨내는 순간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만큼이나 막막할 때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적정한 화폐소득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고 또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일을 보는 색다른 시각, 3만엔 비즈니스 


▶ 3만엔 비즈니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번역서 「30만원으로 한 달 살기」(북센스)에 소개되어 있다. ⓒ촬영 : 이민영


그래서 비전화제품이나 기술처럼 가시적으로 빠르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1년 간 비전화제작자 수행과정 중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부분은 “작은 일 만들기”다. 비전화제작자 과정을 통해 배운 것들을 일과 생활 그리고 사회와 연결하고 통합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일’을 발명하는 것이 일종의 졸업 작품인 셈이다. 이 작은 일은 후지무라 센세가 제안하는 ‘3만엔 비즈니스’에 그 토대를 두는데, 쉽게 말하면 한 달에 이틀 일해 30만 원을 버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이틀에 30만 원을 버는 일을 열 가지 해서, 한 달을 꼬박 일해 450만 원을 벌면 되겠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조금 더 본질에 가깝게 3만 엔 비즈니스를 설명하자면, 한 달에 30만 원만 벌어도 충분하도록 삶을 전환하자는, 일과 돈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한 생활방식을 만들어 나가자는 제언에 가깝다. 3만 엔 비즈니스는 사업 자체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생활주기를 중점에 두고 일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이다.


▶ 3만엔 비즈니스 순환 고리 전환표 ⓒ그림 : 후지무라 야스유키


몸과 마음이 지칠 때까지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살 수밖에 없는, 모두가 불행해지는 초경쟁사회의 구조에서 벗어나는 방법의 일환으로 후지무라 센세는 3만 엔 비즈니스를 주창하며 많은 젊은이들이 위 표의 왼쪽에서 오른쪽의 형태로 삶이 변환되길 바란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는 통상 위 표의 네 가지 지점 중 어디서든 한 곳에서 만나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삶의 바퀴를 굴리게 된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돈을 주고 소비하면서 점점 지출이 늘어나고, 늘어나는 지출만큼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일 외의 자기 시간은 줄어들고. 돈 이외의 방법으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짐과 동시에 건강과 관계까지 잃게 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시작되는 ‘작은 일 만들기’


‘작은 일 만들기’는 이런 순환의 고리를 어느 지점에서든 깨고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오른편의 순환 고리로 전환해보자는 것이다. 비전화제작자들이 1년 간 배우는 철학과 기술은 바로 자급의 측면에서 새로운 고리를 거는 힘을 키우는 작업이다.


▶ 작은 일 만들기의 약속 ⓒ글: 후지무라 야스유키, 번역: 비전화공방서울


이건 도대체 뭐지 조금은 막연한 작은 일거리를 만들라니 그리고 연말 제작자 모두가 하나씩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상품으로 장터에 출점한다니. 이 모든 수행과정이 1년 후 자신의 자립기반이 된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막연한 감이 없지 않다. 게다가 충분히 숙지되지 않은 약속을 지켜가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지역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상생의 비즈니스를 염원하는 ‘작은 일 만들기’에 마음이 이끌리는 이유는 뭘까.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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