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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몸으로 실현하는 ‘불구의 정치’

<어쩌면 이상한 몸> 북콘서트 이야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탈코르셋 논의가 뜨거워질 때마다 ‘몸’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내 몸이 ‘여성’의 몸으로서 어떤지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 몸이 ‘특정 나이 대’의 몸, ‘직업적, 사회적인 위치’를 가진 몸, ‘경제적 계층’을 드러내는 몸으로서 충분히 세상의 요구에 부합하고 있는지, 오히려 부족한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저항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몸이란 대체 뭘까? 젊은 여성의 머리카락이 단지 짧다는 이유로 남성으로 보거나, 이젠 ‘메갈’이라며 낙인찍기까지 하니 말이다. 이 사회에선 몸의 형태 하나하나로 쉽게 ‘무언가’로 재단 당한다. 조금 다른 몸은 굉장히 ‘특별한’ 취급을 받기도 한다.


신체에 장애를 가진 여성의 몸도 그렇다. 그들의 모습은 쉽게 ‘이상한’ 몸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건 곧 ‘정상이 아닌’ 몸으로 판단되며, ‘다른’ 몸이라고 규정된다. 하지만 말했듯이, 대체 몸이란 원래 뭐길래 이런 구분과 분류가 가능한 걸까? 그 기준은 뭘까?


장애여성의 몸, 통증, 쾌락, 관계, 노동 이야기


몸에 대한 고민이 많던 차에,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장여애성 인권단체인 장애여성공감에서 <어쩌면 이상한 몸>(오월의 봄)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부터 마음을 사로잡은 이 책의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 열린다기에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지 기대와 호기심, 많은 물음을 안고 찾아갔다.


▶ <어쩌면 이상한 몸> 북콘서트에서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와 수수의 합동 공연. ⓒ장애여성공감 제공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와 수수의 합동 공연으로 문을 연 북콘서트는 시작부터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사회자인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사무국장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재우 활동가는 치마도 바지도 아닌 검은색 망토(?) 같은 예사롭지 않은 복장을 하고 귀여운 빵모자를 쓰고서 등장했다.


이 책을 기획한 강진경 활동가는 “10주년 때는 ‘장애여성운동사’를 기록한 책을 내고, 15주년 때는 장애여성 이슈에 관한 출판물을 제작했는데, 20주년 때는 운동 이슈나 운동사 말고 장애여성에게 조금 더 쉽게 접근하는 책을 내자는 기획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라고 <어쩌면 이상한 몸>의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독자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지만, 주제를 들여다보면 꽤 무게감이 있다. ‘몸, 관계, 고통, 쾌락, 노동’에 대한 장애여성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모으기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공감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고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본인이 직접 글을 쓰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서 쓴 글이 모여 만들어진 책”이라고 소개하는 강진경 활동가의 말에는 공동 작업을 완료한 뿌듯함이 담겨있었다.


‘타인의 시선’이 없다면 장애도, 이상한 몸도 없다


북콘서트 무대 위에 오른 패널은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조미경 소장,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와 안인선 회원, <춤추는허리> 서지원 팀장과 조화영 배우였다. 책에서 조미경은 통증을, 배복주는 몸을, 서지원은 연기를, 조화영과 안인선은 노동을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어쩌면 이상한 몸> 북콘서트에서 사회자 이진희, 패널 조화영, 서지원, 안인선. ⓒ장애여성공감 제공


사회자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이상한 몸과 살아간다는 것. 어떤 순간, 자신이 장애를 가진 몸을 인식하게 되었는지?”였다.


조미경: “사실 어렸을 때 저한테 장애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 동네에 선교하는 분들이 와서, 신기하게도 항상 저한테 같은 성경 구절인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어쩌고’를 말씀하시더라고요. 난 별로 안 걷고 싶은데… 하루는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이야기인지 들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어유, 잘 만났네’ 이러면서 막 얘길 하더라고요. 그 때 제가 사람들과 ‘다른 몸’을 가졌다는 걸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사회로부터 차별과 배제를 처음 경험한 건, 장애가 심하다는 이유로 특수학교에서조차 입학을 거부당했을 때에요. 나한테 문제가 있는지 몰랐는데, 장애가 있으면 이렇게 거부를 당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죠. 친구들이 다 학교에 가면서 고립되기도 했고요. 전 제가 이상한 몸을 가졌다는 게 크게 불편하거나 그러진 않는데, 차별과 배제를 겪으면 분노하게 되죠. 사실 전 정말 평화주의자거든요.”


사회가 자꾸 자신을 투쟁하게 만들지만 사실 ‘난 평화주의자’라고 한 조미경 소장의 얘기에 청중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장애를 인지한 순간에 대한 얘기는 굉장히 무겁고 절망스러울 것 같다는 예상을 완전히 깨고, 패널들의 이후 발언에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조화영: 중학교 1학년 때 중간고사 시험을 봤는데 몰라서 하나도 안 풀고 제출했거든요.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부르더라고요. 그리곤 선생님이 작은 소리로 장애에 관한 걸 얘기하셨어요. ‘넌 장애 2급이야. 지적…이야.’ 라고 말이죠. 그래서 ‘제가 왜 지적이에요?’라고 물었죠.(청중 웃음) 그랬더니 선생님이 창피한지 작은 목소리로 ‘그건 집에 가서 물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서지원: 제가 자기 소개할 때 깜빡하고 얘길 안 했는데 전 언어장애가 있어요. 그래서 통역을 부탁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제가 제 장애를 깜빡해요.(청중 웃음) 어릴 때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언니가 두 발로 걷는 게 그게 더 이상했거든요. ‘나는 무릎으로 걷는데 쟤는 발로 걷지?’(청중 웃음) 초등학교 때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특수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제 번호를 제일 마지막으로 매기더라고요. 그래서 ‘왜 내가 꼴찌냐’고 물었더니 ‘네가 중증(장애)이라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때 제가 중증(장애)이라는 걸 알았어요.”


안인선: 어렸을 때부터 내 몸에 익숙해져 있어서 장애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냥 좀 불편하다? 사실 내가 장애인으로서 나를 생각할 땐 내가 ‘정상’이거든요?(청중 웃음) 장애인이라고 해서 이상한 몸이라기보단 제가 바라보는 저는 장애인으로서는 ‘정상’이에요.


장애여성들이 자신의 장애를 인지한 이야기를 들으며 다같이 웃는 게 신기하게도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냥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장애는 타인(비장애인)의 시선에서 판단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중요했고, 안인선 회원의 ‘내가 정상이거든요’라는 말은 비장애인인 나를 뜨끔하게 만들기도 했다.


돌봄을 ‘받기만 하는’ 사람?


▶ 장애여성공감에서 펴 낸 <어쩌면 이상한 몸>(오월의 봄) 표지


‘장애인과 노동’은 어울리지 않는 말로 생각된다. 장애여성의 경우엔 ‘장애’와 ‘여성’이라는 위치가 중첩되어 ‘몸을 써서 돈을 버는 노동’과는 더욱 더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패널들은 장애여성과 노동의 관계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조미경: “사실 장애를 가진 몸은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몸이고, 미래가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아요. 보통 노동이라고 하면 돈을 버는 임금노동을 생각하니까요. 노동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장애인들은 돈을 못 번다는 이유로 (사회적) 활동 무대를 가질 수 없죠.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로만 치부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서로 의존하는 방식은 다양하잖아요?


전 골형성부전증(작은 충격에도 뼈가 잘 부러지는 장애)인데, 종종 완전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될 때가 있어요. 정말 딱 누운 자세에서 8개월 정도 누워 있었던 적도 있고요. 그럴 땐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죠. 그런데 그런 상태에도 전 수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며 돌봄노동을 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마음으로요. 눈빛으로, 입으로요.(청중 웃음) 저도 늘 돌봄노동을 하면서 살아 왔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정이 안 되고, 돌봄노동을 받는 사람으로만 인식되는 게 문제에요.


또 돌봄이라는 건 여성의 역할로만 규정되기도 해서,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제대로 그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죠. 이런 논의가 앞으로 더 많이 얘기될 필요가 있어요.”


서지원 팀장은 “극단 <춤추는허리>에 들어오기 전까지 ‘네가 한번 해봐, 네가 한번 계획해봐, 네가 생각한 거 한번 해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애초에 장애여성들에게 어떤 노동을 생각해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얘기다. 그리고 장애여성들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해주지 않기도 한다.


“비장애 중심의 사회에서 극장을 찾기도 어려웠고, 연습실 찾기도 어려웠어요.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는 왜 이야기를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저희가 연극을 하면 ‘연극의 이야기가 너무 좋아요’가 아니라 ‘그런 몸으로 어떻게 연기를 해요? 감동했어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비장애인 중심의 노동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자동차판매원으로 20년으로 일한 안인선 회원은 “장애여성으로서 직업적으로 성과를 내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되돌아 보니 그게 안인선의 성공 스토리가 될 순 있을지 몰라도 장애여성의 인권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 혼자 해서 되는 건 없더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안인선 회원은 자신의 경험을 다소 냉정하게 얘기했지만, ‘장애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냉소적인 시선 속에서 그가 성취한 것들은 분명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만 그의 말대로 ‘혼자 해서 되는 건 없다’는 것의 의미는 함께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수요일 저녁마다 모여 나눈 ‘야한’ 이야기


드러나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장애여성의 ‘몸’에 관한 이야기는 섹슈얼리티, 쾌락과 고통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몸’을 주제로 글을 쓴 배복주 대표는 유독 이 글을 쓰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에서 몸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왔죠. 공감 초기에 수요일 저녁마다 모이는 모임이 있었어요. 그래서 모임 이름이 ‘수저모’. 수요일 저녁마다 장애여성들이 모여서 ‘야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만들어 본 거죠. 그런데 야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꾸만 성토대회가 되는 거예요. 이를테면 섹스 이야기를 하는데 섹스 경험이 있는 사람, 경험이 없는 사람, 되게 불편한 경험이 있는 사람, 좋은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기억에 남는 건, 섹스의 정상체위라는 게 정말 우리 몸에 맞느냐, 즐거운 섹스란 무엇인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거예요.


개인적으로 전 가슴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어요. 큰 가슴에 대한 고통이 심해서요. 예전에 한창 여성운동에서 ‘브래지어를 벗어버리자’ 이런 운동도 했거든요.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인 브래지어를 벗어버리자고요. 근데 전 그걸 벗으면 너무 힘들어요. 전 브래지어가 아니라 ‘의료기구’라고 표현하거든요.(청중 웃음) 큰 가슴을 가진 여성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


장애여성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비장애 여성들과 이런 가슴 이야기도 하고, 공감에서 몸에 대한 이야기를 다방면으로 했어요. 자기 장애를 분석하는 이야기도 많이 했었고요. 몸에 대해 우리는 해부학적으로 이야기하거든요. ‘몸이 S자로 되어 있으니까 섹시하지 않아?’ 그러니까 몸이 S라인이 아니라 그냥 S자거든요.(청중 웃음) ‘나는 손가락 다 펴지지 않고 요 정도만 펴지는데 고급스럽지 않아?’(청중 웃음) 이렇게 농담을 하기도 하고요.”


▶ <어쩌면 이상한 몸> 북콘서트 패널들. 왼쪽부터 조미경, 배복주, 재우, 이진희, 조화영, 서지원, 안인선. ⓒ장애여성공감 제공


“어쩌면 이상한 몸”들의 향연


골형성부전증을 통해 평생 통증과 함께 동행한 조미경 소장은 담담하게, 그리고 여전히 치열하게 통증과의 삶을 고민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조미경: 제 장애가 뼈가 부러지는 장애에요. ‘뼈아픈 이야기’ 이런 말 종종 하는데 전 진짜 뼈가 잘 부러져서 아파요. 그래서 제가 정말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통증 참는 거예요. 통증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참는 거예요. 이 통증을 어떻게 반갑게 맞이해야 할지, 사실 반갑진 않지만 여튼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또 어떻게 맞춰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이에요. 기침을 하다가 갑자기 뼈가 부러져서 출근을 못할 수도 있고, 아침마다 ‘과연 내가 계속 출근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출근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매일매일 출퇴근하는 활동을 못하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좀 더 그 시간이 빨리 다가올 수도 있겠다 싶죠.


통증과 함께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요. 예전엔 ‘이까짓 통증 뭐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정말 참을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이런 몸을 가지고 어떻게 활동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지 고민이에요. 어떻게 대안을 만들어가고, 사회에 무엇을 요구하면서 어떻게 즐겁게 살아나갈 것인지, 좀 집중을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옆에서 배복주 대표는 “동료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며 “우리 함께 몸으로 통증은 못 나누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은 각자 다른 몸을 지닌 우리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다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장애여성이란 누구이고 그들이 하는 장애여성운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사회자의 마지막 질문에 조미경 소장은 “이 시대에서 이상한 몸이라고 규정된 이들과 서로의 차이를 찾고 교차되는 점들을 찾고 그러면서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건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작일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패널들의 무대가 끝나고 축하공연으로 드랙킹 아장맨이 무대에 올랐다. 앵콜곡 퀸의 ‘위 아 더 챔피언’(We’re the Champian)을 다같이 합창하며 끝난 북콘서트는 그야말로 이상한 몸들의 대향연이었다.


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하던 내가 이 책 <어쩌면 이상한 몸>을 통해 알게 된 건, 나 또한 이 시대의 이상한 몸이라는 것과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상한 몸’을 가진 모두가 이 책을 접했으면 좋겠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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