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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주도하는 페미니즘 운동, 스쿨미투

#스쿨미투,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다(4)


※ 스쿨미투 운동을 확산시키고 제도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서 스쿨미투 현황과 의의, 과제와 전망을 담은 기록을 4회 연재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스쿨미투 운동의 네 가지 요구


앞선 세 편의 기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지난 1년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전국을 순회하며 스쿨미투 집회를 개최하고,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었던 UN 아동권리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해 제네바에 발을 디뎠으며, 3천여 명의 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청와대에 스쿨미투 운동에 대한 응답을 촉구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 당사자들이 피해자로 남지 않고, 주체가 되어 일관적으로 요구해온 것들은 다음과 같다.


▶ 2월 16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진행된 <스쿨미투,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 집회 참가자들이 요구안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청소년페미니즘모임 제공


첫째, 학교 성폭력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가 작년 12월 21일 발표한 스쿨미투 종합대책은 ‘양성평등 교육을 강화하겠다’, ‘표본 현황 조사를 실시하겠다’ 등 우리의 요구를 최소한만 수용하고 있다. 정부가 이야기한 양성평등 교육은 강화가 아니라 페미니즘 시각의 교육으로 재편돼야 한다. 현재의 양성평등 교육을 강화하는 것만으론 일상 속 깊게 뿌리내린 성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학교를 범죄의 장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조사를 진행한다니!(조선에듀, <스쿨미투 이후 계속되는 ‘성비위' … 처벌도 거의 이뤄지지 않아> 2019년 2월 11일자 기사 참조) 학교가 정말 범죄의 장이 되지 않으려면, 범죄를 축소하려 할 것이 아니라 응당 전국 단위의 전수조사를 통해 범죄의 뿌리를 뽑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


교육부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과의 간담회에서 ‘학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전수조사가 어렵다고 답변했다. 그 많은 학교들을 관리하기 위해 교육부, 각 시도에 교육청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아직 본인이 당한 폭력을 이야기하지 못한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도 전수조사와 그 결과에 따른 책임감 있는 대응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둘째, 교원 대상 페미니즘 교육이 의무화되어야 한다.


스쿨미투로 폭로된 가해자는 대부분 교사였고 가해행위는 ‘권력형 성폭력’이었다. 학생인권법도 부재한 상황에서 교사의 말은 곧 교실의 법이 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직접적이고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교사들은 정작 제대로 된 인권의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교사가 받는 성교육 시간은 학생에 비해 훨씬 적고, 성폭력 관련 의무교육은 고작 3시간에 불과하다. 이 짧은 시간마저 온라인 강의 같이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단체교육으로 귀결돼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2월 16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개최된 <스쿨미투,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 집회에서는 현재 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인 활동가가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교사들 또한 성평등한 환경을 만나지도 못했고, 교대에서도 성평등 관련 과목 하나 이수하지 못하고 졸업한다”고 실태를 고발했다. 그리고 “문제 교사 한 명을 욕할 게 아니라, 교사들이 성평등 교육을 이수하게 하고 이후에도 성평등 교육을 꾸준히 받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며 교원 대상 페미니즘 교육을 촉구했다. 실제로 교육대학 내의 성평등, 페미니즘 교육은 전무한 수준이다.


▶ 2월 16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진행된 <스쿨미투,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 집회를 알리는 포스터. 스쿨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여러 단체와 모임들이 공동 주최했다.


셋째,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해 사립학교의 공공성을 보장해야 한다.


사립학교는 스쿨미투 고발 비율이 공립학교보다 높다. 그러나 교원에 대한 징계 권한이 학교 재단에 있기 때문에 가해 교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돼왔다. 가장 대표적인 스쿨미투 사례로 꼽히는 용화여고와 충북여중이 사립학교이고, 최근 잇따른 부산의 스쿨미투가 일어난 세 학교도 모두 사립학교다. 충북여중, 청주여상 등이 속한 서원재단은 스쿨미투 고발 후 교육청의 ‘직위 해제’ 권고를 따르는 듯 싶었으나, 결국 고발된 다섯 명의 교사를 모두 같은 재단의 남학교로 전근시키는 등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 식 조치를 취했다.


이렇게 사립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정부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어렵사리 학내 성폭력 사건을 고발해도 바뀌는 것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루빨리 사립학교 교원의 성/폭력에 대한 징계 수위를 강화함과 동시에, 공영이사제 등 사립학교의 공공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교 성폭력에 대해 검찰과 경찰의 적극적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스쿨미투의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는 용화여고조차 백 명 이상이 증언한 가해 교사가 ‘불기소 처분’을 받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무리 청소년들이 용기를 내어 피해 사실을 증언해도 지금처럼 검경이 소극적 수사로 일관한다면, 가해 교사는 언제든 다시 교단에 설 수 있고 학생들의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학교를 바꾸는 페미들” 모여라


지난 1년, 전국 90여 개 학교에서 스쿨미투 고발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고발이 부재한 학교도 아직 많다. 그것이 해당 학교에 차별과 폭력이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바는 아니다. 스쿨 미투의 여러 사례들처럼 수위 높은 폭력을 견디고 또 견디다가 고발한 학생들도 있지만, 수위에 무관하게 크고 작은 폭력과 혐오를 감내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우리 주위에 상상 이상으로 많다.


▶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1기 운영위원회 “학교를 바꾸는 페미들” 모집 포스터


그래서 2019년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1기 운영위원회 “학교를 바꾸는 페미들”을 기획했다. ‘스쿨미투 1년. 가해 교사는 교단에 돌아오고, 피해 학생은 자퇴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학교를 바꿀 것입니다. 말하기 시작한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스쿨미투 1년을 축약한 문구와 함께 지난 3월 7일 “학교를 바꾸는 페미들” 모집 공고를 냈고,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던 일곱 명의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모였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신청자들과 한 명 한 명 사전 미팅을 진행했는데, 그것은 예상보다 꽤 울컥하는 과정이었다. 운영위원회 활동에서 가장 기대되는 점을 물었을 때 신청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입을 모아 ‘또래의 청소년 페미니스트를 만나 교류하고 싶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었지만 보수적인 학교라서 결국 해체됐다’,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고 싶지만 교내에서 함께할 페미니스트 친구를 찾을 수 없다’며 고립된 상황을 이야기하는 청소년들에게 나는 조금 더 즐거운 활동을 함께 해보자고 약속했다.


이윽고 3월 24일, 서울 망원동 인근에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은 어색하고 낯설었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활동가 두 명과 생전 처음 보는 7명의 청소년이 둘러앉아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된 이유를 나누고, 공통된 경험을 공유하며 웃고, 따뜻한 보드게임을 했다. 그렇게 보낸 4시간여 중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청소년 페미니스트인 내가 학교 가기 싫은 이유’에 대한 대화는 마음에 유독 남는다.


청소년 페미니스트인 내가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를 포스트잇에 적어 한 자리에 붙이고, 공감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포스트잇 내용을 빌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내 몸이 아닌 ‘여성성’에 맞춰진 교복, 교실에서 여자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속 성적인 장면을 돌려보는 남학생들, 페미니스트라고 밝혔더니 “반사회적”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경험을 나누며 함께 화내고 때로는 웃었다. 나는 위로를 받았다. 그것이 나만의 유별난 경험이 아니라, 한국의 여성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순간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함께 싸우고 쟁취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 순간을 ‘연대’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리고 연대는 세상을 바꾸는 주요한 힘이다.


▶ “학교를 바꾸는 페미들” 운영위원들의 첫 만남 오리엔테이션 중 ⓒ청소년페미니즘모임 제공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서 올 상반기는 이 일곱 청소년 페미니스트들과 여러 가지 작당을 하며 보낼 예정이다. 학생인권과 섹슈얼리티 등 평소에 청소년들이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 주제에 관해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세미나를 진행하고, 5월에는 스승의 날을 맞아 진정으로 스승을 존경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작고 따뜻한 행사를 개최하고자 한다.


물론,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모임도 빠질 수 없다. 날씨 좋은 날의 한강 소풍, 경쟁할 필요 없는 보드게임처럼 혐오와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는 무궁무진하다. 지난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늘 축구하는 남학생들에게 밀려났던 여학생들이 운동장을 점령해 자유롭게 뛰어노는 운동회를 개최하자는 아이디어가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몸, 마음 모두를 조여 오던 ‘여성성’을 배척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이토록 많다.


창립을 앞둔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 당시, 자유발언대에서 만난 몇몇 청소년의 자조 모임으로 시작했던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단체 창립을 앞두고 있다.


그간 청소년은 페미니즘 운동에서 소외되었다. 청소년이 페미니즘 의제 안에서 등장할 때는 주체가 아닌 ‘보호되어야 할’, ‘미래의 희망’ 등 아직은 미성숙하고 부족한, 타자로 여겨졌다. 투표권이 없으니 관련 정책을 요구할 수 없고,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죄다 친권자에게 묶여있으니 운신이 자유로울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청소년’과 ‘여성’이라는 두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복합적인 차별을 공론장으로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스쿨미투, 탈코르셋 등 청소년들의 페미니즘 운동이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추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내 페미니즘/성소수자/인권 동아리는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이며, 페미니즘 집회 등의 활동에 참가하는 청소년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스쿨미투 집회들은 대부분 청소년들이 참여했고, 2백~3백 명이 거리로 나와 청소년들의 관심을 증명했다. 이제는 청소년이 ‘대상’이 되는 페미니즘 운동을 넘어, 청소년 페미니스트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일상에 ‘변화를 만드는’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하다.


▶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발기인 모집, 찾아가는 간담회를 제안하는 포스터


5월 창립 예정인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을 목표로 한다. 청소년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개인, 동아리, 소모임, 단체가 모이는 구심점으로 기능하고자 한다. 각자의 공간에서 싸워온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동료를 만나고 서로의 활동에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는 단체를 꿈꾼다.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을 지속하고 확장할 수 있는, 마침내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사회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단체를 꿈꾼다.(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창립 제안서 중에서 인용)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있던 3월 28일, 사립학교법 일부개정안(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위원 대표 발의, 비위 행위를 저지른 사립학교 교원도 국공립 교원에 준해 징계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음)이 국회를 통과했다. 오래도록 외쳐온 요구안 중 하나가 이뤄지는 건 드물고 벅찬 일이다. 이렇게 긍정적인 변화들이 쌓여 지난하고 고된 여정의 동력이 되어간다.


여학생들은 이토록 커다란 변화의 시작을 도모했고, 더 이상 폭력으로 얼룩진 교실로 돌아갈 수 없다. 여성 청소년들은 더 이상 숨죽이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며 학교를 바꿔나가고 있다. 순종적이고 얌전한 ‘여학생’이 아니라 변화를 만드는 ‘주체’임을 세상에 증명했다. 스쿨미투는 끝나지 않았다, 변화는 이제야 시작되었다. (최유경)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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