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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관한 지식을 생존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배우다
<피해와 생계 사이> 연재를 마무리하며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의 ‘생계’를 키워드로 하여 성폭력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피해와 생계 사이> 기사 연재를 마칩니다. <피해와 생계 사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성폭력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연속집담회로, 5월부터 다섯 차례 열렸습니다. 마지막 기사의 필자 김신아 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피해와 생계 사이” 1회차 집담회를 준비하는 중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을 이야기할 때 ‘권력 구조’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
연속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성폭력을 말하다>는 성폭력의 권력 구조와 성폭력 피해자가 직면한 ‘생계’와 ‘생존’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기획되었다. 지난 5월 9일부터 10월 25일까지, 5회에 걸쳐 총 열일곱 분의 생존자 혹은 활동가들이 출연해 이야기 나눠주었다.
1회차 <노동은 비정규, 성희롱은 정규?>에서는 불안정한 고용과 노동 형태가 만들어내는 일터 내 권력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성폭력을 발생하게 하고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에 주목했다. 일터가 다양해지는 만큼 권력 관계도 단순하게 구분하기 어려웠으나, 직장 내 성희롱이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라는 점을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회차 스케치 기사 http://ildaro.com/8472)
2회차 <지도받을 권리, 지배받지 않을 권리>에서는 스포츠계, 극단, 학교 등 노동의 영역으로 잘 여겨지지 않지만, 위계화된 시스템 속에서 유무형의 가치나 성과를 생산해 내야 하는 교육 훈련 과정의 권력 관계와 성폭력을 다뤘다.
생계, 진로, 커리어와 관련하여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권력의 크기가 비대한 만큼 피해자가 문제 제기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인권보다 성과가 중심이 되고, 진로 등을 변경하면 생계의 어려움이 발생하는 현장의 불합리가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2회차 스케치 기사 http://ildaro.com/8502)
“피해와 생계 사이” 2회차 집담회를 시작하기 전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처음 두 회차 집담회를 통해서는 권력 관계가 만들어지고 행사되는 맥락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권력은 성폭력 사건 당시에만 국한되어 작동하지 않았다. 일터 및 교육 훈련 현장의 일상적인 문화와 관행이, 소수의 특권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권력의 차이를 크게 만들어 왔으며 성폭력은 그 연장선에서 발생했다. 성폭력 문제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인 이유다.
때문에 권력 구조가 어떻게 작동되고 유지되는지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성폭력 범죄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각 현장과 업계에 대해 깊은 이해가 생기는 동시에, 성폭력을 문제화하는 관점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의심받지 않고, 비용을 줄이고, 일상 찾기
3회차 <성폭력, 말할 수 있을까?>에서는 미투 운동으로도 가시화되지 않는 소수자들의 성폭력 경험을 나눴다. 성매매 여성, 이주 여성,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와 차별, 이를 기반으로 하는 법과 제도가 소수자의 위치를 더 취약하게 만들고 성폭력이 발생해도 말할 수 없도록 만드는 조건임을 알 수 있었다. 성매매 여성이 성폭력을 문제 제기하면 ‘돈을 노리는 꽃뱀’ 소리를 듣게 되고, 이주 여성이 성폭력을 문제 제기하면 ‘더 체류하기 위해서’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트랜스젠더는 오히려 이들이 여성들의 공간을 침범하고 성폭력을 할 것이라고 의심받거나, 가짜 여성/가짜 남성이라고 여겨진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방해한다. 한 패널분의 말씀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어떤 여성이고 그가 겪은 피해가 성폭력이 맞는지 판단하기 이전에, 피해자가 문제 제기하는 맥락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왜곡된 통념, 자원의 빈곤, 불리한 법제도 등으로 인해 ‘겹겹의 위계’ 속에서 피해가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할 때, 소수자가 겪는 폭력의 문제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3회차 스케치 기사 http://ildaro.com/8533)
“피해와 생계 사이” 3회차 집담회에서 활동가들이 이야기 중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4회차 <성폭력과 싸우는 데 내가 들인 비용>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로 인해 빼앗기거나 잃은 것부터, 사건을 해결하고 생존을 위해 들이는 모든 경제적/비경제적 노력을 ‘비용’이라는 언어로 드러냈다. 피해자가 삶의 온전함과 통합성을 회복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과 가해자가 성폭력 이후 들이는 비용의 격차를 선명하게 대조해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피해자가 성폭력과 싸우는 데 들이는 비용을 줄이고 가해자가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했다. (4회차 스케치 기사 http://ildaro.com/8572)
5회차 <성폭력 이후, 나의 일상 찾기>에서는 성폭력 생존자의 회복을 치료적 관점이나 ‘씻을 수 없는 고통’이라는 말처럼 회복 불가능한 관점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회복된다는 뜻은 피해가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피해’라는 다른 조건 위에서 매일의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해 생존자의 삶을 ‘피폐해진’, ‘무너진’ 등으로 묘사하며 성폭력 사건의 절대적 영향력에 묶여있을 것이라는 통념과는 다른 일상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생존자가 잘 살아가는 것, 그 일상을 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은 다른 생존자들에 대한 당부와 격려로도 이어졌다. (5회차 스케치 기사 http://ildaro.com/8599)
생존자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는 충분한가?
특히 마지막 두 회차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따라 웃고, 울고, 박수치고, 분노하는 시간이었다. 한 패널분 말씀처럼 몇 개월에 걸쳐 말하기를 준비하여 무대에 올라 공개적으로 말하는(speak out)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와, 매달 열리는 성폭력 생존자 자조 모임 <작은말하기>의 그 사이, ‘중간 말하기’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생존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행사를 이끌어가는 힘은 해당 회차의 주제도, 집담회라는 형식도, 사회자의 진행도 아니고 그저 생존자의 이야기 자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피해와 생계 사이” 연속집담회 1회차부터 5회차까지 포스터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미투 운동 이후,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말하는 장이 공적 채널부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개인 채널까지 많아지고 넓어졌다고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이번 연속집담회를 통해서는 ‘함께 모여서 공감하고 공명하고 지지하는 자리가 충분한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내 이야기를 발견하고, 울음이 나올 때는 다가가 서로 안아줄 수 있는 자리가 충분한가?’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연속집담회를 시작할 때 성폭력 생존자들의 또 다른 말하기의 장, 활발한 공감과 연대가 일어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실제 어떠한 의미가 남을지는 그 과정을 거치기 전에는 알지 못하기에 매 집담회마다 느낀 감동은 새로웠다. 생존자의 이야기가 지식과 관점이 되는 자리였고, 많은 배움이 있었다. 동시에 그저 말하고 듣는 자리만으로 충분하며, 이런 자리가 더 필요하다는 간명한 깨달음을 남겼다.
함께 해주신 모든 패널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모든 용기 있는 말하기에 깊은 지지의 마음을 보낸다. 회차별로 꼼꼼하게 기사를 작성해주신 나랑 님께도, 연속 기고를 편집하여 실어준 <일다>에도 감사드린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곧 제작될 자료집을 통해 ‘피해와 생계 사이’의 이야기들이 더 많은 생존자들에게 다가가 언어가 되고,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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