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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전해지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는 무한대다”

일본 페미니즘 출판사 ‘엣세트라 북스’ 설립한 마츠오 아키코


 

2018년 12월, 일본에서 페미니즘 전문 출판사 ‘엣세트라 북스’(etc. books)가 탄생했다. ‘엣세트라’는 영어로 여러 가지, 기타 등등이라는 뜻. “아직 전해지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는 무한대다. 그런 여성들의 엣세트라를 전하는 페미니즘 프레스”이다.


2019년 5월에는 페미니즘 매거진 [엣세트라]를 간행했는데, 만화가 다부사 에이코(田房永子)가 책임편집장을 맡았다. 창간호 테마는 “편의점에서 성인 잡지가 없어지는 날.”


작년 1월, 일본의 각 편의점이 8월 말까지 성인 잡지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 그 자체로는 기쁜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당당하게 진열되어온 성인 잡지가 일순 사라지는 순간을 보며, 대체 편의점 성인 잡지란 무엇이었을까 진단해봤다. 판매 중단 반대파의 주장도 싣고, 성인 잡지를 제작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담아서 펴냈다. 잡지는 지금 벌써 4쇄를 찍었다.


엣세트라 북스에서 2019년 5월 간행한 [엣세트라] 창간호는 현재 4쇄를 찍었다. 출처: etc. books


엣세트라북스를 설립한 것은 출판사 가와데쇼보 신샤(河出書房 新社)에서 15년간 편집자로 일하며 <엄마도, 인간>(다부사 에이코 저)나 <사모님은 애국>(기타하라 미노리 외 공저) 등 수많은 페미니즘 책을 세상에 내놓았던 마츠오 아키코(松尾亜紀子) 씨다.


“제가 만드는 책의 알맹이는 지금까지 해오던 일의 연장이에요. 하지만, 페미니즘이라고 내걸게 됨으로써 이렇게 많은 분이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미투 시대, 까놓고 페미니즘 책만 만들고 싶다


마츠오 아키코 씨(1977년생)는 나가사키현에서 나고 자랐다. 세 자매 중 맏이로, 대놓고 남존여비하는 집안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를 서포트하는 역할이었고, 늘 아버지의 의중을 헤아리려고 했다.


“그럼에도 ‘남자는 여자 손바닥 위에 있으니 사실은 여자가 더 강한 것’이라는 기만적인 이중규범이 구석구석까지 뿌리내린 환경이었어요.”


대학에 들어가 우에노 치즈코, 사이토 미나코, 기타하라 미노리 등이 쓴 페미니즘 책을 만났다. “여성학이란, 우에노 씨가 말하듯 궁극적으로 당사자 연구이니 제 경험으로 끌어올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세계가 넓어졌고, 생각하는 이치를 처음으로 갖게 된 것 같았어요.”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서, 편집회사를 거쳐 2003년 수시채용으로 들어간 가와데쇼보 신샤에서 차례차례 페미니즘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 마츠오 씨의 기획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스트레스는 없었다. 하지만, 회사에 속해있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기는 어려웠다.


2017년 1월에 미국에서 성/인종 차별주의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대규모 여성 행진(Women’s March)이 미국 전역에서 열렸고, 반년 후에는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그 고조된 페미니즘의 열기는 일본에도 SNS 등을 통해 전해졌다.


“그때까지 제가 편집했던 책으로 어느 정도 독자는 보였고. 까놓고 이제 페미니즘 책만 만들고 싶으니, 독립한다면 지금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소수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독립출판사들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2018년 12월 페미니즘 전문 출판사 ‘엣세트라북스’를 설립한 마츠오 아키코 씨. ‘노 헤이트’(혐오 반대)를 나타내는 뱃지를 가슴에 달고 있다.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도쿄의대 입시 차별: #우리는_여성차별에_분노해도_된다


그럼에도 아직 ‘페미니즘 전문’이라고 내거는 데는 망설임이 있었다. 그 망설임을 끝내게 한 것은 2018년 여름에 드러난 도쿄의대 입시 여성차별이었다. 마침 기타하라 미노리 씨와 함께 한국에 방문해 한국 페미니즘 운동을 취재하고 돌아온 차였다.


“한국에서는 여성들 모두가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고, 분노하고 있었어요. 엄청 자극을 받았고, (일본의 차별 상황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때였죠. ‘한국 여성들이었다면 도쿄의대 사태를 듣고 분노했겠죠’ 하는 얘기를 기타하라 미노리 씨랑 나누면서, 둘 다 정식 집회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어서 트위터에 ‘항의하자’ 올렸더니 1백 명이나 모였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마츠오 씨는 “장난하나!”라고 일갈했다. 그와 동시에, 회사 트위터에 올렸던 “#우리는_여성차별에_분노해도_된다”라는 해시태그가 순식간에 퍼졌다.


“목소리를 높이면 언론 보도도 되고, 일이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갑니다. 역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분노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페미니즘 출판사로서 독립할 각오를 했다.


마츠오 씨는 매월 11일에 일본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는 성폭력에 항의하는 ‘플라워 집회’의 주동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은 집회에서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모두가 피해자 곁에 선 마음으로 모이기 때문이겠죠. 한국의 #미투 운동에서 배웠습니다.”


옛 여성들의 명저를 복간하고, 책방도 열고 싶어


엣세트라북스는 2019년 11월 젠더연구자 마키노 마사코(牧野雅子) 씨의 책 <치한이란 무엇인가-피해와 면죄를 둘러싼 사회학>을 출간했다.


“치한이라고 일컫는 성범죄가 왜 남성의 ‘문화’로 소비되고 있으며, 어느 시기부터 억울한 죄만 주목받게 되었는지, 전후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언설을 분석한 책입니다.”


엣세트라 북스에서 2019년 11월 간행한 [엣세트라] 2호. 출처: etc. books


매거진 [엣세트라] 2호도 같은 시기 출간됐다. “We♥Love 다지마 요코”(田嶋陽子, 1941~ 여성학자이자 영문학자이며 가수, 탤런트. 전 국회의원) 기획이 눈에 띈다. 1990년대 이후 ‘TV에서 아저씨와 싸우는 페미니스트’로 인식되는 다지마 요코는 대중들에게 조금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졌다. [엣세트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아이콘이 미디어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로 방치되고 있음에 문제를 제기하며, 다지마 요코를 재조명하고 시대적 의의를 짚었다.


그 외에도 처음 일본어로 번역되는 미국 문학계의 #미투를 이끈 여성작가 단편집, 일본 레즈비언 운동사, 소녀 대상 YA(Young Adult) 소설 등의 내용이 실렸다.


마츠오 아키코 씨는 영국에 있는 ‘페르소포네 북스’라는 여성의 생활소설을 복간하는 출판사를 동경한다고 했다. 그곳이 책방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의 명저 복간도, 책방도 운영하고 싶다. 여성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도 갖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에요!”


엣세트라북스 웹사이트 https://etcbooks.co.jp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가시와라 도키코 님이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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