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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없이 월30만원 지급”이 청소년의 자립에 미친 영향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 ‘기본소득’ 경험 연구 발표회 열려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에 대해 소개하자면, ‘가출팸’에 살며 ‘이상한’ 청소년이라는 눈총을 받는 이들이 ‘사회가 더 이상한 게 아니냐!’라고 반문하면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긍정하는 곳이다. (관련 기사: 탈가정 후, 자립을 위해 도전하는 앨리스들 http://ildaro.com/7043) 자립팸에선 최대 5명이 최장 2년 2개월까지 거주할 수 있다. 자립팸 ‘이상한나라’에 사는 이들은 만18세에서 24세 여성 청소년으로 ‘앨리스’라 불린다.
자립팸을 운영해 온 활동가들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존재만으로도 존중받는 경험’이 필요하고, 걱정과 불안에 잠식되지 않을 ‘경제적 안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개인에게, 어떤 증빙이 없이,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현금, 즉 기본소득을 시도하고자 꿈꿔왔다.
이윽고 “자립팸의 운영철학과 원칙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한 기획”인 기본소득을 2018년과 2019년 2년 동안 앨리스들에게 제공했다. “증빙이 필요 없는, 현금 30만 원을, 매월 1일 직접 지급한다”는 정말 간단한 기준만 가지고 말이다.
과연 자립팸의 시도가 앨리스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리고 기본소득을 제공한 자립팸 활동가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의미 있는 이 기본소득 실험을 연구한 <2020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 기본소득 경험연구 발표회>가 지난 11일 서울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 니콜라오홀에서 열렸다.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 후원으로,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과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에서 주최한 자리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이호연 연구자는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에서 2년 동안 진행된 기본소득 프로젝트를 가까이 관찰하면서, 이것이 ‘앨리스’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촬영: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주연 기자)
이걸 내가 받아도 돼?…의문과 불안, 기대 사이
이호연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자는 2018년과 2019년에 기본소득을 받은 앨리스 6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심층 연구를 진행한 결과를 설명했다. 이호연 연구자는 무엇보다 “이 연구는 기본소득과 ‘자기결정’의 관계에 주목”한다면서, “기본소득을 통해 이들이 경험한 자기결정은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얘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자립팸의 앨리스들은 ‘탈가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삶의 자기결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것을 추구해 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보면, 자기결정의 실현이 선택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여성 청소년’이라는 위치와 경제적 열악함이 이들의 자기결정의 실현을 왜곡하고 어렵게 했고, 이들은 좌절을 겪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결정의 조건’으로 작용하는 기본소득의 의미를 살펴보는 건 중요하다. 자기결정이 권리로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다들 반기며 선뜻 받을 거라고 예상하겠지만, 처음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앨리스들은 망설였다고 한다. “기대도 있었지만 의아한 마음도 컸다”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처음엔 ’받으면 안 되는 돈’이라고 생각했어요. 부담이 되기도 하고. 내가 이걸 왜 받아야 돼? 그렇게 해도 되는 돈이 있어?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나중에 우리가 통장내역을 다 보내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어서 약간 거북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앨리스 인터뷰 중)
이호연 연구자는 “앨리스들의 이런 불안과 의심을 해소한 건 크게 두 가지”라고 얘기했다. 첫 번째는 “기본소득의 이해와 쟁점을 얘기하고 각자의 생각을 나눴던 이야기 자리”를 가진 것이고, 두 번째는 “비(非)청소년 자립팸 활동가들이 기본소득 원칙에 충실하고, 이를 일관되게 운영”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주겠다고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교육을 받게 하는 건, 여타의 ‘교육 참여 수당’(교육에 참여하면 참여시간을 기준으로 금액을 정해 비용을 지불하는 형태로 ’취업성공 패키지’와 같은 직업훈련 교육 등이 있음)과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앨리스들은 ‘그전까지 기본소득이 뭔지 잘 몰랐기 때문에 교육에 참여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고, 교육을 할 때 기본소득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할 만큼 의지가 강했다’고 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있었던 만큼 앨리스들은 기본소득을 궁금해했다. 또 그 돈을 정말 그냥 써도 되는 건지 계속 확인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기본소득에 대한 교육과 수다회는 자립팸 활동가와 앨리스들이 서로의 불안을 해소하고 소통하는 장이 됐다.
이호연 연구자는 그것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건 “인권에 기반한 관계맺기 방식과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며, ‘(앨리스들이 돈을 쓰는 것에 대해)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무너뜨리지 않는 비청소년 활동가의 뚝심과 믿음, 감수성이 중요했다”고 짚었다.
2018년 12월 10일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두 번째 수다회가 열렸을 때 한 앨리스가 쓴 편지.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 제공)
기본소득 효과, 내 삶을 예측하고 집행할 수 있다
“그전에는 아예 적금을 못 했거든요. 전에는. 실패했어요. 남는 돈이 없으니까. 돈 모을 생각만 하고 실천을 못 했는데 기본소득을 받고 실천할 수 있었어요.” (앨리스 인터뷰 중)
이호연 연구자는 “앨리스가 얘기한 실패는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시도했던 것이기에 어쩌면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받게 된 이후에는 절약해야 한다는 당위적 생각이 아니라, 자립팸에서 나간 이후 자립에 필요한 보증금을 마련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적금 계획을 세웠다”는 점을 주목했다.
계획을 세운다는 건, 삶에 대한 예측과 예산 집행이 가능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돈에 얽매여 사는 삶은 돈에서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삶이다. 이러한 상황은 앨리스의 정서 상태를 압도했고 위축감을 줬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받은 이후엔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불안감을 덜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계획 세우기’를 통해 돈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예측과 집행이 가능한 삶을 만나게 된 거다.”
“기본소득이 생기고 친구들이랑 조금 더 자주 놀 수 있었어요. 카페를 가더라도 딸기 주스가 6천 원이면, 그전에는 제일 싼 거, 평소엔 잘 먹지도 않는 아메리카노 이런 거 먹었는데, 기본소득을 받고 제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죠.” (앨리스 인터뷰 중)
앨리스의 기본소득은 “써야 할 곳을 미리 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를 전제”하고 있다. 또 “기본소득을 받음으로써 사용자가 누릴 수 있는 선택의 가능성”이 생겼다. 앨리스는 “나침반은 동서남북이 어느 쪽인지 알려 주는데 기본소득은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호연 연구자는 이런 선택과 자유가 앨리스들에게 ‘자기결정의 감각’을 되살려줬다는 점을 기본소득의 주요 영향으로 꼽았다.
“탈가정 청소년은 누구보다 자기결정을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집에서 가족을 구성해 살기를 소망하며 집을 나온 사람들이니까. 단지 이들이 이런 감각을 발휘할 수 없는 조건에 놓여있을 뿐이다. 기본소득 시도를 통해, 조건 없는 물질적 지원이 자기결정의 조건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왜 ‘사회복지서비스’가 아니라 ‘기본소득’인가
앨리스들은 “중요한 삶의 갈림길에서, 기본소득은 충분하진 않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보통 안전장치로 제공되는 ‘사회복지서비스’와 기본소득은 뭐가 다른 걸까?
이호연 연구자는 앨리스들이 지적한 기초생활수급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앨리스들은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을 받기 위해 원치 않은 이야기를 반복했던 경험, 이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자신을 ‘을’로 만드는 구조에 대해 말했다. 그러니까 현재의 사회복지서비스는 인간을 ‘권리의 주체’로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틀 안에서 ‘지원 대상’으로 본다는 걸 알 수 있다.”
“사회복지서비스는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치사하다는 느낌’을 준다면, 기본소득은 내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다. 기본소득과 사회복지서비스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앨리스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자기 생을 스스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욕구는 타인에게 조종당하지 않으려는 욕구와 일치한다.” 페터 비에리(Peter Bieri, 1944~ 독일 철학자. <리스본행 야간열차>을 쓴 작가이며 존엄한 삶과 자기결정에 대해 탐구함)의 말을 인용한 이호연 연구자는 “기본소득이 행복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해주기만 하는 사람 vs 부탁만 하는 사람’이라는 관계의 변화
기본소득이 가져온 변화는 기본소득을 받는 개인들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기본소득 운영 경험을 평가하며, 자립팸 활동가들은 “자신들과 앨리스와의 관계에서 변화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기본소득이 도입된 후 앨리스들이 활동가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얘기를 다른 활동가에게 들었는데,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한번은 약속에 늦은 앨리스가 자신을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을 저를 걱정하며 ‘미안한데 어디 들어가서 뭐라도 마시고 있으라’며 기프티콘을 보내더라. 전에는 돈이나 자원이 없어 일방적으로 계속 받기만 하고 본인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는데, 기본소득이 이러한 관계 구도를 조금이라도 전환시켜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자립팸의 쏭쏭 활동가가 기본소득 프로젝트의 과정과 활동가들의 경험과 의견을 정리해 발표했다. (촬영: 박주연 기자)
활동가들의 경험을 정리해 발표한 자립팸의 쏭쏭 활동가는 “활동가들이 친구처럼 다가가려고 많이 노력하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그게 왜 되지 않는가를 질문했을 때, 우리는 뭔가를 해 주기만 하는 사람, 앨리스들은 부탁만 하는 사람이라는 관계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의도치 않았던 권력 관계와 불평등이 생겼던 부분이 기본소득 이후 앨리스들이 활동가에게 뭔가를 해 주는 관계로 발전한다는 건, (기본소득이) 이 권력 관계를 해체하는 단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활동가들에게 고민이 남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본소득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자립팸이 ‘30만 원 주는 개꿀 집’으로 소개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활동가들은 “적어도 ‘이 집에 있는 우리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는 감각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전엔 앨리스들에게 ‘이 집에서의 관계가 너무 좋고 내 집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기본소득 도입 이후 자립팸 운영 평가를 했을 때 ‘(여기서 나가고 나면) 내 지원, 내 혜택을 못 받는 게 너무 아쉽다’는 의견을 받았을 때의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기본소득 전후로, 청소년들이 자립팸을 기억하고 의미화하는 게 달라진 부분”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는 것. 활동가들은 “자립팸에서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무색해지거나 관계성이 묻혀 버리는 지점이 있지 않은지” 고민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살아있으니까 받는 것”
연구자, 활동가, 그리고 당사자인 탈가정 여성 청소년 앨리스들은 “기본소득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본소득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호연 연구자는 특히 ‘자립’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본소득을 통한) 자기결정은 경험하고 채워져야 할 중요한 역량이자 권리”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기본소득을 받은 앨리스이자, 지금은 ‘이상한나라’에서 나와 자립한 니모는 “나에게 기본소득이란 희망이었다. 배움이라는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해 봤고, 기본소득을 받으면서 ‘내가 다시 살아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사람들도 만나고, 이렇게 뭔가를 배우고 있구나’ 싶었다”고 말하며 “기본소득은 살아있으니까 받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기 때문에 혹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받는 거라는 소감이, 앞으로 더 뜨거운 기본소득 논의를 불러오길 기대한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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