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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으로 당혹스러워하는 여성들에게 보내는 편지



코로나19 감염 확산 상황에서 십대들의 원치않는 임신에 대한 불안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 24세의 한 여성이 일본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 기고한 수기를 공개한다.


일본 학교에서 휴교 조치가 취해진 외출 자숙기간 중에 “중고생으로부터의 임신 상담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고, 집에 있기에도 어려운 소녀들이 임신을 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었죠.


감염병 사태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그냥이라도 큰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 ‘나는 임신을 한 게 아닐까’, ‘아기, 어쩌지…’ 하는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소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십대 여성들이 너무 어렵고 무거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니, 그 심정이 어떨지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중에서 임신중지를 선택하는 사람이 적지 않겠죠. 그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괴로워하는 여성이 늘어나지 않았으면 해서 적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여성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단을 한다 한들, 결코 그 선택을 타인에게 비난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자기의 몸에 대한 결정을 했다.’ 그것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존엄한 아기의 생명을 빼앗아도 괜찮은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죠. 그렇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그 아기가 머물러 있는 곳이 당신의 몸입니까? 아니죠, 타인의 몸입니다. 지금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네덜란드 단체 Rutgers에서 제공하는 시각적 이미지 https://rutgers.international


일본에서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임신중지를 위한 수술을 받을 때, 마치 벌을 주듯이 마취제를 쓰지 않거나 수술 도중에 눈을 뜨도록 하는 의사가 있습니다. 저는 재작년, 동의하지 않은 성교에 의해 임신했고, 임신중지를 선택했습니다. 그때 제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가 딱 그랬습니다. 인터넷상에서도 같은 경험을 한 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발견했습니다.


병원은, 가정은, 그리고 ‘타인들의 눈’은 여성이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한 것,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는 것, 혹은 임신중지를 하는 것, 그 모든 것을 질책합니다. ‘섹스를 한 여성에게 잘못이 있다’고, ‘자신을 소중히 하지 않으니 그런 일을 당했다’고.


여성들은 있는 힘껏, 임신 상황을 마주해 마음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이 사회에서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 경험을 질릴 정도로 겪고 있습니다. 과연, 다음 섹스에서는 갑자기 ‘자신을 소중히’ 할 수 있다고, 정말 믿고 있는 걸까요?


‘임신을 한 이상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다, 임신중지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요? 사람마다 사정이 다른데, 한 번 임신을 하게 되면 더이상 그녀의 인생은 없나요?


알려진 바, 임신중지는 여성 서너 명 중 한 명이 경험하는 일입니다. 살기 위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해서 사회 전체가 들러붙어 공격을 멈추지 않습니다. 마치 범죄자를 대하듯 합니다.


임신중지는 코로나19 여파로 우선 순위가 떨어질 위험이 있는 의료 서비스 중 하나다. 자궁에 삽입하여 임신중지를 유도하는 Ipas MVA를 판매하고 있는 DKT WomanCare 팜플렛. https://dktwomancare.org


생명이 존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상실해도 될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눈앞에 살아 있는 여성에게 ‘네 몸이 중요해’라고 말해주지 못할까요.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나요? 학교의 성교육은 원치 않는 임신의 무거운 죄책감과 공포보다 “네 몸은 너만의 소중한 것”이라고 먼저 가르쳐야 했습니다.


임신중지를 경험한 저는 이제 전과 다릅니다. 오랫동안 ‘전부 내 잘못이야’, ‘무서운 짓을 저질렀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저 역시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져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회의 성차별적 가치관에 짓눌려진 한 명이다’, ‘내 몸의 결정권은 내가 가져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임신해서 당혹스러운 분, 아이를 낳기로 한 분, 그리고 임신중지를 선택한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요. 사회는 여성이 ‘자기 몸의 결정권’을 일생 동안 단 1초도 내팽개치지 않아도 되도록, 당신을 도와야 합니다. ‘내 몸에 대해 결정’한 일 때문에 누구로부터도 질책당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든 자기를 응시하고, 스스로를 제일 사랑해도 괜찮아요. 안타깝지만 누구도 당신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대신해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당신의 편이 될 겁니다. 무슨 말을 듣든 당신 편이 누구인지. 신뢰할 수 있는 상대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하고 가급적 정직한 마음으로 이야기해보세요.


시간은 걸리겠지만, 반드시 당신 스스로가 당신 마음을 낫게 할 거예요. 지금은 슬픔의 밑바닥이어도, 살아갈 기력이 샘솟지 않아도 괜찮아요. 자기를 책망해도, 분노로 자기를 잃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인간에게는 누군가와 아픔을 공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서로 북돋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전과 다르지 않게 행복해져야 할 존재입니다. 괜찮아요, 살아주세요.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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