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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서비스 시장의 밑바닥…플랫폼 노동 속 여성

민우회, ‘고용관계’ 따지는 시대착오적 노동법제 개편 요구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은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유입될 것이 자명해 보이는 플랫폼 시장에서의 여성노동 경험을 듣고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5월~7월까지 플랫폼 노동을 해본 적 있거나, 플랫폼의 확장에 일자리가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던 15명을 집중 인터뷰한 것. 공동 연구를 진행한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그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여성노동자의 플랫폼을 통한 노동경험”을 다루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플랫폼 노동의 범위와 양상이 매우 이질적이라는 측면을 고려하여, 특정 업종과 플랫폼 유형을 집중 살펴보는 방식을 택했다.” 바로 IT서비스·디자인 분야다.


10월 23일 열린 토론회 <제도공백: 플랫폼 노동 속 여성을 말하다> 자료집 중 ©한국여성민우회


IT서비스 시장의 수직적, 성별 구분된 비즈니스 사슬


IT산업이라고 하면 흔히 자유롭고 최첨단 기술의 요람인 실리콘밸리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연구에 참여한 여성노동자들은 이 시장이 “발주사가 있고, 그걸 협력업체들이 하도급을 계속 주는 형태인 건설현장과 유사하다”고 표현했다. 


“IT서비스 시장은 크게 대기업이 발주하는 대규모 IT 아웃소싱 시장과 중소기업·스타트업이 발주하는 소규모 아웃소싱 시장으로 구분되는 양상을 띈다. 주요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원청 정규직부터 하청업체 정규직과 프리랜서, 플랫폼 등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개인 프리랜서까지, 수직적 비즈니스 사슬에 따라 다양한 고용관계와 계약관계가 배치되어 있다.”  “철저한 피라미드 구조에서, 아래 쪽으로 내려갈수록 일자리 안정성과 노동조건은 열악해진다”.


어떤 직무를 하느냐에 따라서도 노동조건과 지위가 달라진다. 김 부연구위원은 “개발자가 디자이너에 비해, 백엔드(서버 관리, 프로그램 기능 구축 등) 개발자가 프론트엔드(레이아웃, 텍스트, 그림 등 웹페이지 화면을 구성하는 일) 개발자에 비해 비교적 고용지위가 안정적이고 보상 수준은 월등히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 같은 시장구조와 직무체계의 위계적 구분이 ‘성별 구분’과 상당히 겹쳐 있”다. “개발자 특히 백엔드 개발자는 남성이 다수이고, 프론트엔드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여성이 다수라는 게 업계에서 오래 일한 참여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결국 이런 직군의 성별 비중 차이로 인해 피라미드형 시장구조에서 여성은 상위보다 하위에 더 많이 편재해 있다는 것 역시 참여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이는 기업조직의 남성중심적 문화와 연결되고, 여성노동자들은 “승진 차별과 유리천장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연구 참여자들은 “남자들끼리만 형, 동생 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어 기술 관련 지식이나 주요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브로그래머’ 문화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런 분위기는 여성노동자들이 “성차별적 언행과 성희롱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초래”한다.


10월 23일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토론회 <제도공백: 플랫폼 노동 속 여성을 말하다> 현장. ©한국여성민우회


노동자 고려 않고 ‘수요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플랫폼


플랫폼 노동자가 되는 건 시장에서 과연 어떤 의미일까? 김원정 부연구위원은 참여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플랫폼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었다.


“대기업 계열사나 중견기업이 수주하는 대규모 IT아웃소싱은 여전히 기존 원·하청 관계를 통해 수행”되고 있고, 플랫폼 업체를 이용하는 주체들은 “대부분 중소규모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중소기업(수요처)과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를 주로 수주하는 도급업체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플랫폼에서 구할 수 있는 일은, 전체 프로젝트에서 요구되는 특정한 업무 중에서도 더 세분화되고 쪼개진 일자리, 단기 수요를 충족하는 일거리를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여러 직무들이 위계적으로 연결된 개발 과정에서, 디자인 등 가장 아래쪽에 있는 업무들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참여자들이 “이런 일들은 대체로 돈을 많이 벌 만한 일도, 포트폴리오에 남을 만한 일도 아니라고 털어놨다”고 했듯이, 현재 플랫폼을 찾는 수요처들은 “결과물의 질보다 속도가 중요한 일, 급하게 필요한 일을 해줄 사람을 찾을 때 활용”한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접속하게 되는 플랫폼 노동은 이미 소모적인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분석이다.


노동을 제공하는 제공자들은 “수요자에 비해 얻게 되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제공자들은 프로필 등을 통해 자신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게시해두거나, 수요자에게 서비스 계획을 담은 견적서를 보내야 하지만, 플랫폼 업체는 수요자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 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서비스에 대한 평가 또한 제공자만 받는다. “제공자에 대한 수요자의 별점 평가가 플랫폼에 접속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별점 관리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좋은 평가가 중요한 상황에서 수요자에게 무언갈 요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매우 불균형적이다.


단가 후려치기, 비정형적 시간대 근무, 소모되는 노동


많은 노동자들이 플랫폼 업체를 이용하는 이유가 “플랫폼 업체가 제대로 중개를 할 것이라는 기대와, 계약의 공식화와 그에 따른 보호”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것도 큰 문제다. “몇몇 IT아웃소싱 전문 플랫폼은 계약서 작성을 권고하고 일정한 가이드나 양식을 제공하며 계약이 체결되면 그 내용을 통보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공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계약 과정에 개입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결국 계약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 플랫폼은 중개만 할 뿐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게 경험자들의 지적이다.


이편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가 발표한 “여성노동자의 일 경험으로 읽는 플랫폼, 노동” 발제문 중.


플랫폼이 노동력 제공자들의 수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 “플랫폼이 나서서 ‘단가 후려치기’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에 따른 하향 가격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돈을 더 벌려면 더 낮은 돈을 받겠다고 경쟁에 동참해야 하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일할수록 적자”라고 말할 만큼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또한 플랫폼 노동엔 정해진 시간이 없다. 좋게 말해 노동자가 노동할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현실은 24시간 늘 대기 상황이다. 플랫폼 업체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수요자의 요청에 맞게 제공자가 견적서를 제공해야 하는 경우, 빨리 견적서를 보내지 않으면 관심 받기 어렵다. “매칭률을 높이기 위해 알람을 계속 켜둘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거기다 “밤이든 주말이든 급하게 일해 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플랫폼에 의뢰하는 수요자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 맞춰, 플랫폼이 ‘주말 작업 가능 여부’에 따라 작업자를 필터링 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김원정 부연구위원은 “플랫폼이 보다 적극적으로 ‘비전형적 시간대 근무를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이 수요자와 제공자 모두에게 ‘제공자는 24시간 언제든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전달하며, 특히 수요자에게 언제든 그런 의뢰를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표준계약서, 저작권 보호, 경력 증명 시스템 필요


이러한 문제들은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김원정 부연구위원은 먼저 플랫폼 업체에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지속가능한 노동을 위해 공정한 계약 관리와 제공자 보호 강화를 위한 제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플랫폼 기업이 표준계약서 양식을 제공하고, 간편하게 전자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의 방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자 편향적인 평가체계도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공정한 거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당사자로서 수요자가 지켜야 할 수칙을 제시하고, 위반 시 적절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제공자의 대항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또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제공자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적어도 별도의 상담·지원 창구를 개설하는 정도의 노력의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공자들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소득을 증명하거나 플랫폼을 통해 축적한 작업 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는 것 등도 언급되었다.


토론회 <제도공백: 플랫폼 노동 속 여성을 말하다> 현장에서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발표 모습. ©한국여성민우회


‘독립 자영업자’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정부 차원의 법·제도 개선도 이루어져야 한다. 김 부연구위원은 “가장 시급한 것으로 플랫폼 노동자 지위 보장을 위한 입법”을 꼽았다. “앞으로 고용관계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노동방식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그랬을 때 한두가지 특정한 노동형태만 포괄하는 방식으로는 노동법제의 사각지대가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노동법의 경계를 허물어,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일반적인 법제로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키는 방식을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정 부연구위원은 “시급히 보호가 필요한 대상에 대해선 특화된 법·제도를 새로 구축하는 과정이 병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중 하나가 “주로 일감을 받아서 생활을 영위하는 독립 자영업자에 대해서 공정한 계약을 촉진하고, 불공정 상황 발생 시 접근성 높은 구제 절차를 통한 해결을 지원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독립 자영업자를 정부의 보호가 필요한 정책 대상으로 명명하고, 관련 정책 추진에 대한 국가의 책임, 추진체계 구성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는 내용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며 “더불어 계약의 체결과 이행, 해지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이나 불이익을 금지하고, 성희롱 금지 및 발생 시 피해자 보호를 위한 내용을 포함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기존의 고용 중개인에게 적용되었던 「직업안정법」의 성격과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여기에 일거리를 중개하는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이다.


“지금과 같이 ‘직업’을 고용관계로만 한정하거나, 이 법률의 대상을 노동자-사용자 간 중개에만 한정하는 방식은 입법 목적의 실현 범위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법률의 수혜 대상을 ‘근로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로 확대하고 취업 의사를 가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구직활동 및 취업활동 과정에서 체결하는 다양한 계약관계를 보호하는 내용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김원정 부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적정 소득과 적정 노동시간이 보장되도록 하는 방안, 사회보장제도에 편입될 수 있게 하는 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 기사는 일부 요약문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IT서비스 시장의 밑바닥…플랫폼 노동 속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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