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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교육을 희망하며
아영이, 태준이, 한결이, 혜진이는 지난 6월초부터 나와 함께 공부하고 있는 2학년 학생들이다. 그들에겐 1· 2학년 어린이를 위해 만들고 있는‘독서프로그램’과 ‘창의성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주에는 <나는 다 컸어요>를 공부했다. 이 수업에서는 ‘자기는 다 컸다고 생각하는데, 어른들도 그렇게 대해 주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다 컸다는 것을 보여드릴지’등을 생각한다. 우선, 혼자 못하고 어른들이 챙겨주어야만 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대답해 보게 했다. 아이들은 매우 다양한 예들을 발표했는데, 이것들 가운데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없는지도 찾게 했다.
그들은 아침에 엄마가 깨워야 일어난다,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지 못한다, 책가방을 챙겨주신다, 샤워하라고 엄마가 말해야 샤워를 한다, 만들기나 미술 숙제를 도와주신다, 등등 나름대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골랐다.
그런데 그것의 원인을 생각해 보고 어떻게 스스로 하도록 노력하겠느냐는 질문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몰라도 <숙제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는 이유가 제기되자, 너나 할 거 없이 모두 숙제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입을 모으는 것이었다.
숙제가 너무 많아서 전날 늦게 자게 되고 그래서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난다, 숙제가 너무 많아서 책가방 챙길 시간이 없다, 준비물 챙길 시간도 없다, 급기야 숙제가 너무 많아서 샤워를 숙제 뒤로 미루다가 엄마가 말해야 샤워를 한다는 등, 실로 이유도 잘 갖다 부치며 모두 숙제 핑계를 댔다.
나는 ‘어디서 숙제를 내주는지, 또 그것은 얼마나 되는지’도 물어가며, 그들이 숙제 때문이라고 대답한 것에 토를 달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주었다. 아이들은 학교뿐만 아니라 다니고 있는 여러 학원에서도 모두 숙제를 내준다고 했다.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그들이 숙제에 대해 느끼는 부담이 얼마나 큰지 좀 더 알 수 있었다.
몇 달 전, 6학년인 윤진이는 그날따라 늦게 온데다가 옆에 숙제 거리를 끼고 공부를 하러 온 적이 있었다. 철학공부 바로 이어서 있는 영어학원 숙제를 하다가 늦었는데, 다 하지도 못했다고. 무엇보다 숙제를 안 해오면 아주 굵은 몽둥이로 매를 맞아야 하는데, 정말 아프다고 말하는 그녀는 다소 겁에 질려 있는 표정이었다.
‘참 안 됐다’라는 내 위로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막 공부를 시작하면서 얼른 생각을 서둘러 쓰고는 친구들이 의견쓰기를 기다리면서 숙제를 꺼내 그것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부도 하지 말고 숙제를 하라’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윤진이, 숙제 집어넣어! 오늘은 매를 맞는 게 낫겠다!”
라고 말하며 공부시간에 다른 숙제를 하려는 윤진이를 막아 세웠다. 숙제를 못해가 매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것 역시 허락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주 윤진이는 역시 매를 맞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숙제 때문에 자기 할 일을 못한다는 건 사실이 아닐런지 모르지만, 아무튼 다른 재미있는 걸 할 여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부담스러운 량의 숙제를 내주고, 그것을 해오지 않으면 때리기까지 하는 교사가 진정으로 교육자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학원으로 아이들을 돌리는 부모의 태도를 교육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다들 해결책으로 ‘숙제를 미리미리 하겠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보라고, 그런데도 숙제가 너무 많아 너희들 생활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때는 학원을 좀 끊어 숙제의 양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해 주었다.
이렇게 공부는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생선뼈는 혼자 못 발라 먹을까?”네 아이들 모두 그건 아직까지는 스스로 할 수 없어, 좀 더 어른의 신세를 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 이번에는 어른들이 아기 취급할 때는 언제인지 물었다. 혜진이는 ‘갈비를 먹을 때 잘라준 고기만 먹어요’라고 대답했고, 태준이는 ‘책을 잘 못 읽는다며 엄마가 읽어주신다’고 했다. 아영이는 ‘중학생인 오빠가 책을 읽어주고 숙제도 도와준다’고, 한결이는 ‘엄마가 애기 동화책을 읽어주신다. 아빠는 시시한 선물을 사주신다, 방에 애기 벽지를 발라주신다’고 제법 많은 걸 생각해냈다.
그 해결책으로 혜진이는 “엄마! 저도 이제 다 컸으니, 뼈를 들고 먹어 볼께요.”라고 말하겠단다. 아영이는 “긴 책은 오빠에게 읽어달라지만, 짧은 책은 스스로 읽겠어요.”한다. 또 한결이는 “부모님께 이런 자기 생각을 똑똑하게 말하겠다”고 대답했다. 무엇보다 태준이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엄마, 제가 스스로 읽겠어요!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잖아요!”한단다.
공부를 시작할 당시, 자신감이 부족한 태도를 보여 수업마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태준이를 격려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태준이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것이 왜 중요한지 잘 깨달아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흐믓했다.
아이들의 순진하고 꾸밈없는 마음을 부모들이 잘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결국, 이런 한걸음 한걸음이 아이를 아주 크게 자라게 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인진/일다 ⓒwww.ildaro.com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교육일기] 문제는 아이가 아니다 | 체벌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 | 시험을 너무 못 본 것 같아요
아영이, 태준이, 한결이, 혜진이는 지난 6월초부터 나와 함께 공부하고 있는 2학년 학생들이다. 그들에겐 1· 2학년 어린이를 위해 만들고 있는‘독서프로그램’과 ‘창의성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주에는 <나는 다 컸어요>를 공부했다. 이 수업에서는 ‘자기는 다 컸다고 생각하는데, 어른들도 그렇게 대해 주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다 컸다는 것을 보여드릴지’등을 생각한다. 우선, 혼자 못하고 어른들이 챙겨주어야만 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대답해 보게 했다. 아이들은 매우 다양한 예들을 발표했는데, 이것들 가운데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없는지도 찾게 했다.
그들은 아침에 엄마가 깨워야 일어난다,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지 못한다, 책가방을 챙겨주신다, 샤워하라고 엄마가 말해야 샤워를 한다, 만들기나 미술 숙제를 도와주신다, 등등 나름대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골랐다.
"인생의 무게" ©일다-천정연의 그림
숙제가 너무 많아서 전날 늦게 자게 되고 그래서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난다, 숙제가 너무 많아서 책가방 챙길 시간이 없다, 준비물 챙길 시간도 없다, 급기야 숙제가 너무 많아서 샤워를 숙제 뒤로 미루다가 엄마가 말해야 샤워를 한다는 등, 실로 이유도 잘 갖다 부치며 모두 숙제 핑계를 댔다.
나는 ‘어디서 숙제를 내주는지, 또 그것은 얼마나 되는지’도 물어가며, 그들이 숙제 때문이라고 대답한 것에 토를 달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주었다. 아이들은 학교뿐만 아니라 다니고 있는 여러 학원에서도 모두 숙제를 내준다고 했다.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그들이 숙제에 대해 느끼는 부담이 얼마나 큰지 좀 더 알 수 있었다.
몇 달 전, 6학년인 윤진이는 그날따라 늦게 온데다가 옆에 숙제 거리를 끼고 공부를 하러 온 적이 있었다. 철학공부 바로 이어서 있는 영어학원 숙제를 하다가 늦었는데, 다 하지도 못했다고. 무엇보다 숙제를 안 해오면 아주 굵은 몽둥이로 매를 맞아야 하는데, 정말 아프다고 말하는 그녀는 다소 겁에 질려 있는 표정이었다.
‘참 안 됐다’라는 내 위로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막 공부를 시작하면서 얼른 생각을 서둘러 쓰고는 친구들이 의견쓰기를 기다리면서 숙제를 꺼내 그것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부도 하지 말고 숙제를 하라’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윤진이, 숙제 집어넣어! 오늘은 매를 맞는 게 낫겠다!”
라고 말하며 공부시간에 다른 숙제를 하려는 윤진이를 막아 세웠다. 숙제를 못해가 매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것 역시 허락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주 윤진이는 역시 매를 맞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숙제 때문에 자기 할 일을 못한다는 건 사실이 아닐런지 모르지만, 아무튼 다른 재미있는 걸 할 여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부담스러운 량의 숙제를 내주고, 그것을 해오지 않으면 때리기까지 하는 교사가 진정으로 교육자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학원으로 아이들을 돌리는 부모의 태도를 교육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다들 해결책으로 ‘숙제를 미리미리 하겠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보라고, 그런데도 숙제가 너무 많아 너희들 생활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때는 학원을 좀 끊어 숙제의 양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해 주었다.
이렇게 공부는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생선뼈는 혼자 못 발라 먹을까?”네 아이들 모두 그건 아직까지는 스스로 할 수 없어, 좀 더 어른의 신세를 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 이번에는 어른들이 아기 취급할 때는 언제인지 물었다. 혜진이는 ‘갈비를 먹을 때 잘라준 고기만 먹어요’라고 대답했고, 태준이는 ‘책을 잘 못 읽는다며 엄마가 읽어주신다’고 했다. 아영이는 ‘중학생인 오빠가 책을 읽어주고 숙제도 도와준다’고, 한결이는 ‘엄마가 애기 동화책을 읽어주신다. 아빠는 시시한 선물을 사주신다, 방에 애기 벽지를 발라주신다’고 제법 많은 걸 생각해냈다.
그 해결책으로 혜진이는 “엄마! 저도 이제 다 컸으니, 뼈를 들고 먹어 볼께요.”라고 말하겠단다. 아영이는 “긴 책은 오빠에게 읽어달라지만, 짧은 책은 스스로 읽겠어요.”한다. 또 한결이는 “부모님께 이런 자기 생각을 똑똑하게 말하겠다”고 대답했다. 무엇보다 태준이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엄마, 제가 스스로 읽겠어요!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잖아요!”한단다.
공부를 시작할 당시, 자신감이 부족한 태도를 보여 수업마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태준이를 격려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태준이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것이 왜 중요한지 잘 깨달아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흐믓했다.
아이들의 순진하고 꾸밈없는 마음을 부모들이 잘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결국, 이런 한걸음 한걸음이 아이를 아주 크게 자라게 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인진/일다 ⓒwww.ildaro.com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교육일기] 문제는 아이가 아니다 | 체벌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 | 시험을 너무 못 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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