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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뜻밖에도 그녀에게 냉정한 이별 통고를 받고 만다. 그녀를 향해 달음질 치던 사랑의 관성을 제어하지 못한 그는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그녀가 언젠가 나타날 그녀의 학교 정문 앞에서 일인 시위를 벌인다.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녀를 향한 그의 공개구애임을 알 수 있게 실명을 공개한 대자보를 온몸에 두르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 그의 이런 당당하고(!) 시끄러운 이별거부 시위는 신문에 전해졌고 인터넷에 두루두루 퍼졌다.

B. 한 여자가 있다. 사귀던 사람이 있었으나 헤어지고 싶었다. 미련을 남기지 않게 그에게 냉정하게 이별 통고를 했으나 남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답답했다. 그런 모습에 더더욱 정이 떨어진 그녀는 그녀를 향한 모든 접근방법을 차단시켰지만, 남자는 오히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녀의 의사를 묵살했다. 급기야는 그녀의 학교 정문 앞에서 그녀의 실명이 공개된 피켓을 들고 그녀에게 '일인시위’를 했단다. 추운 날 나오지 않는 그녀를 기다리며 시위를 하는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오뎅국물을 퍼주며 격려하고 사진도 찍어갔단다. 자신이 원치 않는 결과를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응원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마침내 그의 '가상한' 노력은 신문지상과 인터넷에 공개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여론몰이가 되어 그녀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그의 의사를 거부할 경우, 그녀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나쁜 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사를 끝내 관철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남자 A의 이야기는 '여친 학교앞 용감한 구애시위'(스포츠 투데이 2003-12-08), '여전히 널 사랑해, 여대앞 1인시위'(연합뉴스 2003-12-08) 등의 제목으로 보도돼 화제가 된 한 기사내용을 참조한 것이고, 여자 B의 이야기는 약간의 상상력과 내 경험담을 토대로 구성한 것이다.

기사를 본 어떤 사람들은 그의 끈질긴 구애를 받는 그녀를 부러워하기도 했을 테지만, 필자를 비롯한 어떤 사람들은 치를 떨며 그 상황을 끔찍해했다. 이미 마음이 떠난 상대가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며 강압적으로 관계회복을 요구하는 것, 그것은 다름아닌 피 말리는 '스토킹'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언젠가 아주 어이없는 상황에서 공주병 환자 같은 취급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술자리에서 진지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아프고 괴로웠던 기억을 털어놓으며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나와 헤어지길 거부하며 스토킹을 했던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그 반응들은 참 어이없는 것이었다. 이해와 위로는커녕 아름다운 여자나 연예인이나 당하는 스토킹의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철없는 공주병 환자나, 혹은 부러운 시선을 담아 한 남자의 아주 열렬한 사랑을 받은 행운아 따위로 취급했다.

그 남자가 나를 미행하고, 내 주변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나에 대한 헛소리를 지껄이고, 내 호출기를 언제나 감시하여 내 행적을 조사하고, 집과 학교 앞에 수시로 진을 치고 있었던 끔찍한 기억들이 제삼자가 보기엔 '열정적인 사랑의 추억'쯤으로 보이는 것이었다니! (아마 내가 밝히기 민망해서 '맞았다'는 얘기까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누드사진을 올려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들은 것도.) 내가 정말 지순(!)한 남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이었나? 그 상황이 로맨틱하고 낭만적으로 추억될 거라고 믿는가?

당시는 스토킹이란 어휘조차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나는 이후에 여러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그것이 명백한 범죄란 것을 알았다. 그 남자는 당시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의식은 전혀 없이, 그러한 자신의 ‘노력’이 정당할 뿐 아니라 남자다운 것이라 믿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쫓아다니며 억압했다. 그는 그런 노력에 내가 감화돼 언젠가 되돌아올 것이라 믿었고, 그것이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든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따위의 경구들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머리 속엔 내 의사에 대한 존중이라던가, 내가 그를 거부하는 이유에 대한 생각은 한 치도 들어있지 않았다.

나를 더욱 곤혹스럽게 한 것은 내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 남자가 당시 한 통신 동호회에서 내가 그를 거부함에도 나를 향한 '사랑'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고 자랑스레 늘어놓았을 때, 수많이 격려 리플들이 달린 것을 보고 나는 내 앞에 놓여있는 거대한 거짓의 벽을 느꼈다. 그들은 그의 사랑이 아름답고, 그의 행동이 용감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 남자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로맨스의 주인공이 아니라 스토킹이란 지독한 범죄의 피해자였다. 그리고 그 남자는 오랜 기간 내 삶과 정신을 파괴시킨 범죄자였다.

남자는 적극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전통적으로 강요되는 남녀 사이의 '사랑' 구도를 떠올려보면 남자의 강력한 접근이 보다 열정적인 남녀관계를 성립하게 하는 동기로 오인되기도 한다. 또 '거부의사'를 '튕김'이라고까지 해석하는 문화 속에서 여성들의 진정한 '거부의사'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아마도 일인 시위를 한 남학생에게 쏟아진 갈채는 그의 일방적이고도 과격한 사랑의 호소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엄청난 오해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사건의 당사자인 그 여성이 나처럼 그의 작태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워하고 있을지, 아니면 이렇듯 온 동네에 소문나도록 자신을 사랑할 줄은 몰랐다며 감동했을지는 장담 못한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절교의 의사를 밝힌 그녀의 의지를 박살냈다. 만약 그녀가 여전히 그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의 행위는 엄청난 위협이 된다. 공개적으로 이별통고를 거부함으로써 엄청난 여론몰이에 성공해 그녀를 압박한 것이다.
 
때려서 옆에 두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그의 방법은 훨씬 정교하고 조직적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의 일방적인 애정공세를 문제 삼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격려하고 부러워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다. 이런 시선이 당사자에게는 끔찍한 고통일 수 있는 폭력을 ‘사랑’으로 둔갑시키며 계속해서 재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www.ildaro.com

최정연/ 일다 [관련 기사] “아이스께끼, 똥침도 성폭력이야” | 성교육’을 정규과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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