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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편 
 
가정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 것인가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의 건강성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양육에 대한 관심은 오로지 ‘아이의 사회적 경제적 성공’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저 ‘이걸 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식으로, 삶의 가치관과 철학이 상실된 단편적인 처방전을 찾는 데만 급급한 현실이다.
 
7월 26일 방송된 SBS 스페셜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편은 ‘가족식사’라는 화두를 통해 새로운 양육법을 제시하고자 했으나, 결국 시류에 편승한 또 다른 ‘알맹이 없는 비방(秘方)’을 내세우는데 그치고 말았다. 단순논리로 접근해 어수선한 분석을 나열하며, 한국사회의 현실적 조건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친아’, ‘엄친딸’ 성적의 비법은 가족식사?
 
방송에서는 하버드대학과 콜롬비아대학 연구결과를 들어 ‘가족식사를 많이 하는 가정의 아이들이 지능과 학업성취도가 높으며, 비행을 저지르는 일도 적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가족식사에서 이루어지는 가족간의 대화가, 아이들의 지능과 정서 발달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실례로 한국에서 우등생이거나 명문대를 다니는 소위 ‘엄친아’, ‘엄친딸’을 둔 두 가족의 저녁식사 풍경을 보여준다. 즉, ‘두 가정의 공통된 공부비법은 가족식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식사를 많이 하면 지능이 향상된다’는 식의 단편적인 추론은, 아무리 ‘하버드’의 이름을 빌린다고 해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조금만 살펴보면, 가족식사는 대화를 위한 한 방편일 뿐이지 ‘식사’ 자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방송에서도 한 학교의 학생들에게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의 대화에 대해 묻자, 학생들은 “갑자기 성적얘기가 나와요. 숟가락으로 머리 한대씩 맞고요”, “대화가 안 통해요” 라며 ‘대화 자체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한국사회의 현실이 이렇다. 가족들이 서로 평등하고 평화롭게 이야기하는 대화법을 모르는데, 같이 밥 먹으라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대화가 풍부한 가족식사가 많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다른 생활에서도 부모와 자녀간의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가정은 가족구성원 상호 간에 지적, 정서적 교류가 활발하고 안정된 가정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자녀의 지능, 정서발달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정이 평화롭고 구성원들이 행복해야 한다’는 결론이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정규직아버지가 벌고, 전업주부 어머니가 차린 밥상?
 
무엇보다 SBS 스페셜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족식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현실과 이들의 입장에 대해 무심하다는 것이다.
 
방송에 등장한 ‘엄친아/엄친딸 가정’은 모두 중산층 이상의 사회적으로 안정된 환경에, 어머니가 ‘전업주부’인 가정이다. 이 집의 아버지들은 저녁식사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그 시간에 집에 오는 것이 가능한 직장환경 속에 있다.
 
한국의 전통 밥상머리 교육을 돌아보자면서 보여준 ‘한국의 대표 명문가’로 꼽힌다는 ‘류성룡가’의 가족식사도 마찬가지다. 남녀가 겸상도 하지 않는 종갓집의 밥상머리 풍경이 ‘교육적’인지도 의문이지만, 앞서 보여준 ‘엄친아/엄친딸 가정’과 마찬가지로 서민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환경이다.
 
문제가정으로 등장한 한 가족은, 부모가 맞벌이로 바빠 식사를 챙겨주기 힘들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족식사’가, 중산층 이하 서민가족들의 현실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만나서 할 얘기가 없는 건 둘째 문제이고, 일단 만날 시간이 없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국가 중 가장 길다. 야근은 종종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고용불안은 심화되고, 노동강도는 더 세지고 있다. 치솟는 물가 속에서 맞벌이를 해도 가계 빚은 늘어간다.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한부모 가족들은 당장의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이다.
 
아이들은 자율학습과 학원을 전전해 한밤중에 들어온다. 교육정책은 점점 이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같이 모여 식사 한 끼 하는 일이 쉽지 않은 데에는 이런 사회환경적 요인을 간과할 수 없다.
 
SBS 스페셜은 잠깐 일본에서 노동자를 일찍 귀가시키는 캠페인을 전개한 것을 소개한다. (물론 이것도 정규직 사무원에게만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의 전반적인 내용은 가족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대한 진단이나 대책마련에 있지 않기 때문에, 단란한 가족식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부모들에게, 그저 상대적 박탈감만을 준다. ‘우리에게 무엇을 어쩌라는 것인가’ 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방송을 다 보고 나면, 이 방송이 공중파에서 나와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마저 든다. 가족들이 식사를 함께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면, 아이들이 왜 부모와 함께 더 시간을 보낼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공중파 교양다큐멘터리의 역할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건강한 부모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밥상머리 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가정 안에서의 양육이 잘 이루어지려면, 사회공동체의 노력이 함께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희정 기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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