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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의 노래 이야기 (2)
                                                                                    <여성주의 저널 일다> 차우진 
 
 
<필자 차우진님은 대중음악비평웹진 '[weiv]'(웨이브)의 편집인이며, 음악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차우진의 노래이야기’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중심으로 한 칼럼으로, 격주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지난 주말 TV에서는 추석 특집으로 <아이돌 육상선수권 대회>가 있었다. 전체 참가자가 100여 명이 넘는 대규모의 출연진으로 하루 종일 녹화된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얘기는 이 칼럼의 주제와 꽤 거리가 멀므로 생략하자. 다만 거기에 걸 그룹 멤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건 인상적이었다.
 
엔터테인먼트 환경에서 걸 그룹은 흥미로운 위치를 가진다. 연예 산업 안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은 고스란히 재현되는 동시에 전복적인 의미를 가진다. 요컨대 모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2010년 현재 한국의 음악 산업에서 걸 그룹이 ‘유행’하고 있다면, 그 현상은 단순히 연예산업의 젠더 문제로만 치환되지 않는다. 이런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미스A의 “Bad Girl Good Girl”이다.
 
‘닥쳐 이것들아’ 정도로 해석하면 딱 좋을 ‘Shut Off Boy’가 반복되는 인트로를 가진 이 곡의 인상은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굉장히 단순한 멜로디가 꼭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랫말이 상대적으로 도발적이라는 점이다.
 
일단 “Bad Girl Good Girl”의 멜로디는 지독하게 관습적이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인상은 그 때문이다. 병풍처럼 아득하고 넓게 펼쳐지는 무그 신서사이저 앞에서 단순한 테마가 몇 소절씩 반복되는 구성도 한 몫 한다. 신서사이저와 전자 드럼 정도가 사용된 미니멀한 편성은 복잡하게 쌓아올린 레이어로 점철된 최근 아이돌 가요의 트렌드를 거스른다. 관습적이면서도 신선하게 들린다. 영리한 접근이다.
 


▲ 미스 에이(miss A)의 데뷔 싱글 앨범 <Bad But Good > 표지  
 
하지만 이보다 더 영리한, 혹은 흥미로운 건 노랫말이다. 도발적인 여자에 대해 노래하면서도 관습적인 여성성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왜 나를 판단하니 / 내가 혹시 두려운 거니’와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 그리고 ‘이런 옷 이런 머리모양으로 이런 춤을 추는 여자는 뻔해 / 네가 더 뻔해’다.
 
댄스가수, 특히 여자 댄스가수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제대로 겨냥한다. 댄스음악과 여자가수에 대한 편견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에 도발적이고 그래서 차별적이다. 이 두 개의 인상이 뒤섞이며 미스A의 (첫)인상과 포지셔닝(positioning)을 결정한다. 요컨대 ‘쎈 언니들’이다. 하지만 이건 이미 포미닛과 2NE1이 차지한 위치다. 그 계보를 따지면 디바와 베이비복스로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런데 후렴구는 거기서 선회한다. ‘날 감당할 수 있는 남잘 찾아요 / 진짜 남자를 찾아요’와 ‘(날 불안)해 하지 않을 남잔 없나요 자신감이 넘쳐서 / 내가 나일 수 있게 자유롭게 두고 멀리서 바라보는’, 그리고 마침내 ‘춤 출 땐 bad girl 사랑은 good girl’로 이어지는 가사는 이 도발적인 여자들이 사실은 ‘진짜 남자’와의 연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포미닛이나 2NE1이 여성들의 연대를 확인하는 데서 멈추는 것과는 다른 전개다.
 
미스 에이는 남자를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들 내부에 줄을 긋고 그걸 컨트롤한다(진짜 남자 vs. 진짜인 척하는 남자). 이들은 소녀시대처럼 수동적이지도 않고 2NE1처럼 공격적이지도 않다. ‘현대여성’답게 주체적인 한편 이성애 연애관계에도 충실하다. 얼핏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다수 여성 연예인들처럼 성적 대상화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점에서 전형적이고, 동시에 그런 이중적인 정체성이 결국 관습의 균열에서 가능하단 점에서 신선하다. 이건 굉장한 모순이다.
 
이 노래의 작곡과 작사 모두 박진영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미스A와 박진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혹은 JYP엔터테인먼트와 한국 음악 산업에 대해, 혹은 여성성과 여성적 감수성에 대해 생각하게도 한다. 어쨌든 여러 가지 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노래를 ‘도발적인 여성 팝’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고 ‘한계적인 걸 그룹 팝’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어떤 모순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사실이 남을 뿐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정치적인 맥락에 놓인다.
 
하지만 그게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선 뭐라 말하기 어렵다. 다만 대중음악이라는 게 엄격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상황적인 흐름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는 건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생각 없는 걸 그룹’이라고 비난받았던 스파이스 걸스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가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로 대변되는 21세기 현대여성의 주체성을 구현했음을 생각해보면, 미스A의 음악에 감동받은 지금의 10대 소녀들이 만들게 될 10년 후의 한국 사회가 문득 궁금해진다. 이 노래의 모순이 그 자체로 긍정적인 쪽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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