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읽고 “말하자면 나는 애초에 내 인생을 눈치챘다. 그래서 사람들이 희망을 떠들어댈 때에도 나는 믿지 않았다.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했다.”(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22쪽) ▲ ‘살롱드마고’에 입고된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난다, 2021) ©달리 절망은 익숙하고, 희망은 불가능해 보였다. 죽음은 매혹적이고, 삶은 지긋지긋한 숙제 같았다. 우울했던 10대의 그늘을 안고 입학한 대학 신입생 시절, 공강 시간을 때우러 혼자 학교 도서관에서 죽치곤 했다. 볕도 잘 들지 않고 먼지가 쌓여 퀴퀴한 시집 코너에서 최승자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다. 우연히 펼친 그의 시는 첫 장 첫 구절을 읽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동..
[만만찮은 그녀들의 이야기] 손 없는 색시 옛이야기에는 여성이 일생 동안 겪을 수 있는 가부장제 폭력의 수많은 사례가 있다. 는 부모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겪고 살아남은 여성의 생존기다. 아버지가 딸의 손목을 작두로 댕강 자르는 대목에서는 몸이 오그라든다. 이렇게 피가 철철 흐르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가족제도의 폭력성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잔혹한 이야기 속에는 세 명의 어머니가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 1983년 대구 김음전의 이야기) 처음 등장하는 어머니는 주인공의 계모다. 옛이야기에서 계모는 생모가 아니라기보다 모성의 다른 면을 나타낼 때가 많다. 어머니는 체액인 젖을 주고, 똥오줌을 비롯한 가장 내밀한 몸의 비밀을 공유하는 최초의 타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첫사랑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