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53) ‘죽어감’에 대한 두려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모습은 마치 별이 스러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평화로운 죽음’) 죽음의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평화롭고 존엄한 죽음이란 순간적인 사건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과 관련된다’고 했다. 우리가 병들어 죽어간다면 더더욱 죽음은 순간의 경험이기보다 진행과정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다 마침내 그 죽음을 끌어안기까지, 죽음의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죽어간다. 그리고 죽어가는 동안, 누구나 편안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대다수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죽어가는 과정이 죽는 순간보다 더 두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죽음의 수..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다섯째 이야기 ② 듬성듬성해진 텃밭을 한 바퀴 휘 돌며 고랑에 가득한 잡풀을 뽑다가, 나는 규모가 작은 감나무 아래 이랑에 쪽파 구근을 심기로 한다. 두 개의 두둑 중 한 곳엔 이미 지난여름에 심은 당근 20여 포기가 쌉쌀한 향기를 내뿜으며 연한 주홍색 어깨를 넓혀 가고 있다. 떨어지는 감 폭탄을 견뎌내면서도 놀랄 만큼 잘 자라준 당근을 곁눈질해 가며, 나는 그 옆 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쪽파를 심는다. 늦어도 일주일 후면 싹이 올라오고 늦가을이면 파란 줄기가 제법 뾰족해지다가 겨울을 넘기면서 마침내 달고 매운 제 맛을 내리라. 그러고 나면 뽑히고 다듬어져 밥상에 오르겠지. 그럼 그다음은? 이 자리엔 또 어떤 작물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게 될까? 오직 사람만 없는, 집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