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직시하는 건 늘 너무 힘들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40) 집에서 한 시간 남짓 걸어가면 큰 호수가 있다. 일주일 전부터 이 호수를 다니고 있다. 암수술을 받은 지 아무리 오래 되어도 안심하지 말고, 운동도 열심하고 음식도 신경 쓰자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나서 약을 끊고 병원도 자주 가지 않는 상황이 되니, 마음가짐이 느슨해지는 게 사실이다. 여전히 유기농 식재료로 식사를 하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지만, 밤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외식할 궁리를 하는 등, 나쁜 생활습관을 조금씩 늘리고 있었다. 하지만 암재발에 대한 경각심 때문에 운동을 더 하기로 결심한 건 아니다. 그보다 나쁜 습관으로 뱃살이 불어나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 ‘얼른 운동을 더 하자, 음식도 더 신경 쓰자’ 하면서 요란을..
추은혜의 페미니즘 책장(5) 주디스 버틀러「젠더 트러블」 언젠가부터 가장 어려워하는 글쓰기 중에 하나가 바로 ‘자기소개서’가 되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실로 엄청난 질문에 때로는 500자로, 때로는 A4용지 5매 이상으로 답해야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쭉 나열해 놓고 종합하면 그것이 ‘나’가 될까. 그래서 어떤 곳은 친절하게도 몇 가지 범주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그 항목들에 대한 답을 성실히 채워 가면 그가 ‘알고 싶어 하는 나’에 대해 알 수 있겠다,고 말하듯이.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정체성이라는 것도 실제의 나와는 또 별개로 사실상 여러 범주들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범주들 중에는 단 한 번도 질문을 제기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