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본 재난영화 속의 두 장면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터져 나오는 용암이 불비로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희열로 가득 차 죽음을 맞는 광인과, 거대한 산도 거침없이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해일이 밀려오는 중에도 담담히 생을 접는 노승. 두 사람은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도취되어, 또 다른 사람은 초월한 듯 죽음을 받아들인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의 죽음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는 없다. 다만 실감하지 못하며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뒤로 미루길 바랄 따름이다. 생명체인 이상 그 생명을 보전하려는 욕구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사고로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 부고를 받았다. 물놀이 사고로 50일 동안 뇌사에 가까운 상태로 있던 청소년이 결국 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누구나 그렇듯 그를 아끼던 사람들도 그런 갑작스런 죽음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할머니가 내 곁을 떠나갔던 20여 년 전 그날의 일을 아직도 내가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는 것도, 사고사의 충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죽은 자가 ‘사고로 죽는 과정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오기도 하고, 또 그 동안 죽은 자와 맺어온 친밀한 관계의 단절에서 생겨나기도 하는 것 같다. 다른 죽음도 마찬가지겠지만, 불의의 사고로 가까운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