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새로운 땅에 이식되는 타자성 네가 있어 내가 있다. 처음 이 문장을 내게 가르쳐준 사람은 케디였다. 늘 팔로산토 향이 나던 머리카락, 그 길이와 키가 거의 동일했던 인도네시아 여자. 자기 어머니의 긴 기도 속에 항상 등장했던 그 문장은 어머니인양 떠올리다가 어머니인양 도리질하게 되는 의미가 되었다고 했다. 케디는 이 모든 말을 영어로 하면서 어머니만 한국어로 발음했다. 내가 물었다. “엄마가 아니라 어머니?” “둘이 뭐가 달라요?”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잠깐 멍해졌다. 한국에 온 지 고작 3개월 된 외국인 여성이 단박에 알아들을 만한 예시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케디를 글쓰기 수업에 데려온 순심 씨가 끼어들었다. “네가 맨날 보고 싶다고 울잖아. 그 짝에 있는 사람은 엄마. 나는 어머..
나는 누드모델입니다 그녀는 누드모델이다. 스케치 룸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스케치 연필이나 목탄, 수채화 물감, 파스텔 등을 책상 위에 펼쳐놓는다. 그녀도 천천히 중앙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 가운을 벗는다. 전문 모델로서 그녀가 취하는 자세는 다양하다. 그때마다의 약속에 따라 그녀는 단 옆에 서 있거나 한쪽 무릎을 세우고 단 위에 앉아 있거나 혹은 다리 하나를 앞으로 내밀고 활처럼 등을 구부린 채 엎드려 있다. 두 다리를 길게 옆으로 모으고 2단으로 쌓은 쿠션에 팔 하나를 기댄 뒷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계를 맞춰놓고 사람들은 제각각의 표정으로 스케치에 몰두한다. 그들은 집중해서 오랫동안 그녀를 본다. 해부학적 탐색과 미학적 포착의 진지함이 눈에서 손으로, 다시 손에서 눈으로 흐르며 어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