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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딸을 만나러 가는 길 (2)
지난 일기장
썰물처럼 머릿속에서 하루를 쓸어내고 나면
꽉 차게 안기는 딸아,
엄마는 길을 걸을 때도, 공부를 할 때도 네 생각을 하지.
그럴 때면 마치 돌부리에 채여 넘어질 때의 아픔과 당혹스러움처럼
가슴이 아파.
너에 대한 그리움은 나팔꽃처럼 자라
나의 상념 속에 꽃이 피고,
오늘도 네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우리 아가에게 작은 새가 되어 찾아갈까?
네 꿈속에라도 머물 수 있다면
너를 만날 수 있다면…….
일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일기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되어 있다. 아이를 보낸 바로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밤마다 일기를 썼다. 그렇게 5년 동안 쓴 일기장 보퉁이를 끌고 프랑스행 비행기를 탔고, 거기서도 한 일 년쯤은 더 썼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일기를 다시 보면 언제나 낯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그 일기들을 결국 참지 못하고 찢어버린 건 벌써 한참 전의 일이고, 그러면서도 나중에 딸에게 줄 거라고 일부는 파일로 정리를 해 놓았더랬다.
그러나 파일로 남긴 것들도 유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허접한 것을 왜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지 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버릴 수가 없었다. 이것을 간직하고 있었던 건 사실 변명 같은 것이다. 나는 이 속에서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딸에게 나는 널 잊지 않았다고, 이렇게 늘 너를 생각하고 있었노라고 보여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며칠 동안, 그 오랜 일기를 읽었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들춰보는데, 구질구질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더욱이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딸을 포기했다는 걸 변명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게 했다. 한참 전, 딸을 키우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을 때, 이미 끝난 관계였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런 느낌은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것이라 더욱 당혹스러웠다.
이제는 이것마저도 없애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것은 마치 결혼 전 남편과 번갈아가면서 썼던 일기장을 이혼 한참 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북북 찢어버렸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나는 컴퓨터와 이동식 디스크에 담아두었던 파일과 프린트 해둔 일기장을 모두 없앴다.
▲ 내가 끌고 다닌 건 미련들이었다. 더 이상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을 과거 속에서 찾지는 않겠다. ©일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일기는 처음부터 딸을 위해 쓴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구차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다행히, 이런 행위가 내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어느 순간, 딸에 대한 그리움마저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열심히 쓰던 일기를 더 이상 쓰지 않았다. 결국 나를 위해, 나의 심리적 위로를 위해 일기를 썼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걸 왜 없애지 못한 채 간직하고 있었던 걸까? 결국, 내가 끌고 다닌 건 일기장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끌고 다닌 건 미련들이었다. 나의 빛바랜 감정과 상투화된 그리움들이 화석처럼 존재하는. 아이에게 아무리 이런 것들을 들이밀며, 내가 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노라고 주장해 본 들, 그것은 지난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일기장을 다 없애고 나니 훨씬 마음이 가볍다. 아이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더 이상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을 과거 속에서 찾지는 않겠다고, 아이에게 너를 이렇게 생각했었노라고, 지난 감정을 내밀지는 않을 거라고 밤이 깊도록 되뇌고 있었다. (윤하)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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