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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장애인, 탈시설-자립의 조건③ 허술한 주거지원 정책  

 
[일다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과 함께 시설장애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탈시설” 기획 기사를 연재 중입니다. 이번 기사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여준민, 미소 상임활동가가 공동 집필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제도적 뒷받침 없이 장애인 주거복지활동에 뛰어들다 
 
▲ "시설은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집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아무한테도 방해 안 받고 편히 쉴 나만의 소중한 내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김미경)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2010년부터 <시설거주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장애인주거복지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이 자립생활을 희망할 경우, 시설에 방문해 상담을 하고 필요한 지원 내용들을 파악한 후 직접 집을 구해 주거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 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3년간 지원을 받으면서 시작하게 됐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희망하는 장애인들을 상담하는 것부터 시작해, 집을 구하고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관계망을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해왔다.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을 포함해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법안과 제도가 구축되지 않은 시점이다. 때문에 이 주거복지사업은 맨 땅에 헤딩하듯, 그야말로 활동가들이 발로 뛰어 만들어졌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장애인들이 실제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오는 과정을 면밀히 경험하고, 지역생활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을 통해 제도적 보완책 등을 생산해내기 위함이다. 시설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지역사회에 정착하며 살기까지 세밀한 지원 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위의 편견 깨고 자립생활 시작한 17인은 지금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기를 희망하는 분들은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을 때 사업 신청을 한 후 선정위원회 면담을 거쳐 선정이 되면, 이 주거복지사업의 주체가 된다. 이 과정을 거쳐 현재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총 17명이다. ‘에게? 겨우 17명?’ 이라며, 많지 않은 숫자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애인 주거복지사업은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활동가들은 먼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장애인시설을 찾아가 몇 차례에 걸쳐 면담을 한다. 신청자가 선정되면, 집을 구하고 주소지 이전을 한다. 그 후 기초수급대상자 신청을 하고 장애재심사를 받아 활동보조인 시간을 배정받고 나면, 학교를 다닐 것인지, 야학을 다닐 것인지, 병원은 어딜 다닐 것인지, 일상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등 한 사람을 둘러싼 관계망 형성과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세부적인 일들에 모두 관여하게 된다. 이 사업은 바로 ‘사람살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17명은 결코 적은 숫자라 할 수는 없다. 적은 예산과 활동가 몇 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실험적이고, 풍성하며, 집중도가 높고, 짬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들을 동반한다.
 
시설에 계신 분들을 상담할 때는 시설 측에서 이를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탈시설을 희망하는 거주인에게 협박(?)과 회유를 일삼기도 한다.
 
“걔네가 뭘 알겠어요?” “자립이요? 그게 가능해요?” “어휴~ 해볼 수 있으면 해봐요” “사회는 너무 위험해요. 여기가 안전한 곳이죠. 나가면 더 힘들어질 뿐이에요” “여기에 있으면 먹고 자고 도와주고 하는데 왜 힘들게 나가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라며, 주저 없이 시설생활자를 무능력하다고 말하는 시설 관계자들을 많이 보았다.
 
사람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는 그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들은 무슨 권리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일삼는 걸까? 도무지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조심스러움이란 보이지 않는다. 진심 어린 걱정인지, 아님 장애가 심하면 ‘자립’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지, 여하튼 시설 종사자와 운영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함께 자립을 고민하고 지원해주기는커녕, 기대와 희망에 초를 치기 일쑤였다.
 
이렇듯 첫 단계인 상담부터 어기적거리니, 주거복지사업은 항상 숨을 고르고 고르며 가야 한다. 그런데 이 사업은 계약에 따라 올 2012년 12월이면 종료될 예정이다. 어렵게 탈시설-자립한 17명의 사람들이 당장 거리로 나앉거나 시설로 돌아갈 위험에 맞닥뜨린 것이다.
 
“시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서울시에 대책 요구
 
▲ "저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사는 것이 한 인간으로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며 자립생활하는데 있어서 주거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송용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지난 해 12월 7일 <서울시 탈시설 장애인 주거권 대책>을 촉구하면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50명이 넘는 휠체어 군단이 참여해서, 기자회견인지 집회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그 만큼 많은 장애인들이 관심을 갖는 현안 중의 현안이다.
 
서울시는 현재 산하기구인 서울복지재단에 ‘장애인전환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면서 탈시설 지원정책을 만들었다. 2008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에서 8명이 한 달 넘게 천막노숙투쟁을 진행하면서 집을 달라 요구한 후, 시설이 아닌 자립생활을 선택한 이들에게 조금씩 기회를 주고자 마련된 것이다.
 
서울시는 아직 공적인 체계 속에 장애인 탈시설 지원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다. 산하 출연기관에서 수행하는 탈시설 지원정책은 법, 제도와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주거복지사업이 2012년 12월이면 만료가 되면서, 현재 보증금과 월세를 지원 받던 17명의 사람들은 갈 곳이 없게 되었다. 이들은 가족 관계도, 수중에 갖고 있는 돈도 없으니, 서울이라는 이 비싼 공간에서 내몰릴 처지가 됐다.
 
서울시는 체험홈과 자립생활가정을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대상자가 서울시 관할 생활시설 거주인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 생활시설 거주인들은 탈시설후 서울에 살고 있다 해도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현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주거복지사업으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17명중 50% 이상이 대상자에서 제외 되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주거복지사업 당사자들은 ‘서울시 탈시설 장애인 주거권쟁취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서울시에서 체험홈과 자립생활가정의 입주자격을 확대한다면, 시설에서 자립생활을 원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이후 12월 26일부터, 주거복지사업으로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서울시에 탈시설장애인의 주거대책을 촉구하며 시청 별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당장 올해 12월이면 길거리로 나 앉거나 지옥 같은 시설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어, 이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시위를 하며 시설로 가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를 알려냈다.
 
정부 차원에서 탈시설 자립지원정책 나와야 할 때
 
14일간 이어진 당사자들의 1인 시위와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활동 앞에, 예산 부족과 형평성을 이야기하며 완강했던 서울시가 조금 바뀐 입장을 표명했다. 면담을 통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우선 ‘서울시 관할시설 퇴소 1년 이내’로 한정된 체험홈 입주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다른 지자체 관할 장애인생활시설에서 탈시설한 장애인의 경우 실태조사를 통해 수요를 파악 한 뒤, 기준을 완화하는 등 2012년 말까지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2월까지 대책위원회와 협의를 통해 탈시설-자립생활에 대한 계획안을 수립하고, 이후 정책 마련과정에서 충분히 논의와 합의를 거치기로 했다.
 
서울시의 입장 변화는 환영할 만하다. 시설거주인의 탈시설-자립은 당장은 현실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가 지원되는 대도시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서울시에서 탈시설 -자립을 위한 지원정책을 잘 마련하는 것은 긍정적인 모델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시보다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탈시설-자립 지원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특히 주거권은 하루아침에 대책을 세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탈시설-자립은 주거뿐 아니라 다양한 문제를 아우르는 사회복지정책의 근본적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의 선택을 눈앞에 두고 사람이 받는 번뇌와 고통, 힘겨움, 상처, 설렘, 방황 그리고 존재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생각해보자. 자유를 빼앗긴 오랜 시설생활에서 벗어나 맞이하는 새로운 출발에 모두 기쁘게 지지하고 연대하면서 갈 수 있는 길을 희망해본다.

(여준민, 미소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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