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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 땀 흘리는 배우의 시간
<여성주의 저널 일다>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21. 고진감래(苦盡甘來)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진행하는 <텃밭예술축제> 두번째 프로그램, 苦盡甘來(고진감래)는 전문배우와 무용수들을 위한 워크숍입니다. 예술텃밭의 스물한 번째 이야기는 뛰다의 배우 김모은 씨가 소개하는 ‘고진감래’의 현장입니다. - 일다 www.ildaro.com
배우/무용수가 무대 위에서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훈련으로 몸을 다스려야 하는지요. ‘고진감래’ 워크숍은 그 고통의 과정을 나누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또 길을 찾는 시간입니다. 열하루 동안 진행되는 이 워크숍은 12년간 쌓아온 뛰다의 배우 훈련의 방법을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고진감래’를 통해 배우/무용수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되묻는, 용맹 정진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봄이 여름이 되듯, 낯선 이들이 섞이고
▲ 인도 전통무술 '깔라리파이야투'(KalariPayattu) © kalaripayattu.org
시골마을 예술 텃밭에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뛰다의 공연을 보고 뛰다가 궁금해져서, 무뎌진 자신의 심장을 다시 두근거리게 하고 싶어서, 혹은 선배 예술가들의 눈빛이 궁금해서 화천을 찾았습니다. 총 14명의 고진감래 참가자 분들을 다 만나 겪어보니 좋은 연기란 무엇인지, 이 시대 연극의 기능과 연극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는 마음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더군요.
저는 그들의 고민이 참 맑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낯설고 어색했던 첫 만남을 시작으로 하루하루 함께 섞여 훈련을 하고 청소를 하고 불가능할 것 같은 미션을 무대 위에서 훌륭하게 해내는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고 실컷 웃습니다. 봄이 여름이 되듯, 우리의 섞임은 자연스럽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자연스러운 섞임은 우리가 지금 함께 대 자연 안에서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새벽 7시, 뛰다의 배우 최재영이 이끄는 '깔라리 파이야투' 수업을 시작으로 고진감래의 스케줄이 시작됩니다. '깔라리'는 지난겨울 뛰다 배우의 반이 인도에서 배워온 인도의 전통 무술이자 배우 신체 훈련입니다. 워낙 이른 시간에 격하게 몸을 쓰는 수업이라 참여자 분들께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아직까지 참여자 전원이 이 수업을 듣습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이렇게 참여자 분들이나 재영님께 물으면 그들은 하나같이 “힘들지만 아침에 깔라리를 하니 참 좋다”는 말로 저의 염려를 내려놓게 합니다.
깔라리 수업이 끝나면 한 시간 정도 쉰 뒤에 9시부터 정규 일정이 시작 됩니다.
첫 번째 일정은 '울력'입니다. 30분 정도 ‘고진감래’ 참여자들은 함께 풀도 베고 쓰레기도 치우고 생태 화장실 청소도 합니다. 저와 함께 여자 화장실 및 스튜디오1을 맡은 혜련과 이 산 님께서 어찌나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빠는지, 설렁설렁 청소를 하던 저도 바짝 성실하게 청소를 합니다.
오전 수업: 몸과 소리를 다스리고, 움직임을 탐구하다
▲ '고진감래' 수업 중.
울력 시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반을 나누어서 배우 훈련을 시작합니다. 경력이 조금 적은 배우는 '고진' 반으로 경력이 조금 많은 배우는 '감래' 반으로 갑니다.
첫 번째 수업의 이름은 '몸 다스름'입니다. 뛰다 배우들이 매일 매일 하는 신체훈련을 참여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팔 굽혀 펴기를 하고 복근을 단련하고 버티기 어려운 자세를 하고 가만히 몇 분을 버텨냅니다. 첫 수업 만에 티셔츠가 모두 땀으로 젖어버리고 맙니다. 몸은 힘들지만 오늘은 몇 분을 버텼네, 팔굽혀 펴기가 어제 보다 한 개 더 되었네 하면서 훈련이 거듭될수록 얻어지는 소박한 성취에 대해 즐겁게 수다를 떱니다.
이 수업이 끝나면 '소리 다스름'과 '움직임 명상1' 수업이 이어집니다.
소리 다스름은 소리를 조금 더 신체적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수업입니다. 이 시간에는 소리의 에너지가 되는 호흡을 잘 통제하여 다루는 법과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야 하는 바른 자세를 배웁니다. 또 실제로 소리를 내기 위해 쓰이는 신체기관의 움직임을 해부도를 보면서 공부하고 해부도를 토대로 소리를 내기 위해 필요한 신체기관의 움직임을 조금 더 세밀하게 인식하여 소리를 내어 봅니다. 그리고 좋은 소리가 잘 전달되는 것을 방해하는 긴장을 없애는 법을 배우고, 서로의 소리를 들어보고 그 소리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좋은 소리에 대한 토의도 합니다.
움직임 명상은 선배님들께서 12년의 세월을 통해 만들어 낸 배우 훈련법입니다. 움직임을 시작하게 하는 충동을 관찰하고 그것을 예리하게 인식하게끔 하여 내가 표현하는 나의 움직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훈련입니다. 참여자들의 새로운 몸에서 나오는 새로운 에너지가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뛰다는 그들 덕분에 익숙한 자신의 움직임을 버리고 그들의 새로움을 맘껏 받아들이며 움직입니다. 공간 여기저기에서 몸들이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조형물이 되기도 하고, 물처럼 흐르기도 하며, 공기처럼 떠다니기도 하고, 불처럼 뜨겁게 퍼져 나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오전 수업이 끝나면 출근 때부터 기다려온 점심시간이 됩니다. 마을 부녀회장님과 회장님께서 손수 가꾸시고 거두들인 신선한 야채들로 맛난 밥을 정성스럽게 차려주십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 같은 밥이 몸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합니다.
오후 수업: 즉흥연기를 통한 심층 탐구
▲ '고진감래' 수업 중 © 뛰다
맛있는 밥을 먹고 조금 쉬다가 오후 수업을 시작합니다. 오후 수업은 움직임 명상2와 가면 그리고 광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움직임 명상2는 움직임 명상1에 이어 조금 심층적으로 몸과 소리를 탐구해 보는 시간입니다. 움직임 명상1이 자신의 움직임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이었다면 움직임 명상2는 공간과 공간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몸과 소리에 관계를 맺고 그곳에서 오는 충동을 탐구하고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또한 즉흥훈련을 하는데 배요섭 연출님이 던져 준 몇 가지 제안이나 제약에 따라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말해보기도 하고 세 사람이 한 사람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움직이기만 하고 누군가는 소리를 내거나 말만 하면서 서로가 주는 자극과 충동을 열린 몸과 마음으로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흥미로운 상황을 만들기 위해 예민하게 노력합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어렵고 이상하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일단 무대에 나가면 최선을 다해 낯선 상황에 몸을 맡기려고 노력합니다. 엉뚱하게 튀어나오는 말과 몸이 채우는 무대를 보면서 우리는 이상한 사람들처럼 박수를 치며 감탄하고 웃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일반 사람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집니다.
움직임 명상2 수업을 마치면 '고진'반은 가면수업을 받고 '감래'반은 광대 수업을 받습니다. 저는 '고진'반 친구들과 가면 수업을 듣는데 이 수업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수업이 진행되는 스튜디오에 8개의 강렬한 얼굴표정이 있는 가면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배우들은 15초 이상을 고민하지 않고 가면을 선택하여 씁니다. 그리고 막 뒤에 있는 거울을 보며 가면이 명령하는 몸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만들어 냅니다. 그 몸과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거나 소품을 들고 무대로 나오기도 합니다. 가면을 쓴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가면 반 수업 담당인 뛰다의 황혜란 배우가 주는 제안과 제약에 복종하여 즉흥연기를 선보입니다.
수업을 시작한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벌써 가면 반에 스타가 탄생했습니다. 참여자인 '최수진' 양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이 친구가 가면을 쓰면 아주 용감하고 유쾌한 어떤 사람으로 변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그 친구를 움직이게 합니다. 입이 조금 튀어나온 못생긴 가면을 선택한 그녀는 그 가면을 쓰고 꽃무늬 몸빼 바지를 입고 화려한 깃털을 두르고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최마담'으로 변합니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녀의 섹시하고 유쾌한 자태와 걸음걸이에 매료당해 소리를 지르거나 그녀를 향해 심지어 손을 뻗기도 합니다. 수업에서 나온 모든 것들이 분명 이번 주 토요일 공연으로 이어질 텐데요, 이 상태로 라면 도대체 얼마나 엉뚱한 공연이 만들어 지게 될지 공연을 하게 될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 가면과 광대 수업을 끝으로 하루의 수업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
우리가 흘리는 땀은 무엇으로 돌아올까
▲ 여름한철만 하는 야외 카페 위로 별이 흐른다. 서울은 어딜 가나 시끄러운데 이곳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을 해도 이상하게 시끄럽지 않다. © 촬영-윤석진
수업을 마친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마을 식당으로 달려갑니다. 기름진 식단이 아니라서 고기를 즐겨 먹었던 사람들 몇몇은 기름진 고기와 소주한잔이 그립나 봅니다. 저녁으로 나온 짜장 밥이 맛있어서 몇 그릇씩 가져다 먹으면서도 치킨과 삼겹살과 닭발에 대한 수다가 오고 갑니다. 아예 저녁을 먹고 읍내로 나가 고기를 먹자는 움직임이 일었었는데 그들은 과연 원하던 고기를 맛있게 먹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는 저녁시간에 즉흥놀이터를 하기도 하고 함께 화천영상센터의 지원으로 야외에 극장을 설치해서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여름한철만 하는 야외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며 오늘 했던 수업과 예술과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울은 어딜 가나 시끄러운데 이곳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을 해도 이상하게 시끄럽지가 않습니다. 우리 얘기인지 빗소리인지 벌레 소리인지 바람 소리인지 구별이 안가는 소리가 찾아오는 어둠에 살짝 묻혀갈 쯤 우리들은 피곤한 몸을 일으켜 각자의 잠자리로 향합니다. 내일 또 힘차게 '깔라리'를 해야 하니까요. 춤추는 여자인 참여자 '은율'은 학교 이후로 이렇게 '빡센'일정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분명 힘은 들지만 우리는 내일도 세상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떤 순간을 함께 만들어 내며 그 순간을 만나는 것을 분명 재밌어 하고 신기해 할 것입니다.
화천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예술텃밭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예술텃밭은 죽은 텃밭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을 위해 무더운 여름날 뛰다는 땀을 흘리며, 한껏 살을 태우며 공간의 묵은 때를 거두어 내지 않았겠습니까!
하루하루 지날수록 저는 찾아온 이들이 더 궁금해집니다. 그들은 왜 여기 이 시골의 작은 마을까지 찾아와서 땀을 흘리고 있을까요? 시골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일들은 모두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짙어집니다. 이 생각이 짙어질수록 현재에 그리고 현재 주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 또한 짙어집니다. 여기에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앞으로 어떤 미래를 가져다주게 될까요?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뛰다는 여기 화천에서 열흘 동안 땀을 흘리며 하나의 공연을 함께 만들어 낼 것입니다. 신나고, 두렵고, 설렙니다. 만약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서 함께 신나고 싶고 두렵고 싶고 설레고 싶으시다면 부디 요번 주 토요일, 화천 시골마을 예술텃밭 야외극장을 찾아 주십시오. (김모은)
※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카페 cafe.naver.com/tuida
2012 텃밭예술축제 Festival Ⅲ 안내
- 일시 및 장소: 7월 21일(토) 저녁 7시, 시골마을 예술텃밭
- 행사 내용: <타니모션>, <극단 터>, '고진감래' 발표
- 문의 및 안내: 033-441-3881/0505-388-9654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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