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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청소년 극단 뜀뛰기를 소개합니다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23. 십대들의 연극실험 <뜀뛰기>
※ [뛰다]는 2001년 ‘열린 연극’, ‘자연친화적인 연극’, ‘움직이는 연극’을 표방하며 창단한 극단입니다. 지난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20여 명 단원들이 폐교를 재활 공사하여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화천 최초의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들에 의한” 극단
▲ 화천 청소년 극단 <뜀뛰기>의 앰블럼. ©뛰다
2010년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강원도 화천으로 이사를 하고 이주의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신 화천 청소년수련관과 양해각서(MOU)를 맺었습니다. 화천에 청소년 극단을 만드는 것이 그 골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모집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 참 운이 좋게도 지금 뜀뛰기 1기들(이영경, 송현수, 김은재, 길은혜, 김정은)을 만났습니다. 만남은 시작이었고 말 그대로 시작이 반이었습니다. 2011년 여름캠프를 시작으로 청소년을 위한 연극교실은 물론 각 학교에 연극반도 없는 이곳 화천에 처음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들에 의한 극단이 창단되었습니다. 창단에는 뛰다의 의지도 컸지만 참여 하는 학생들의 의지 역시 컸습니다.
다섯 명의 고등학생으로 시작 된 뜀뛰기는 현재 화천중학교 3학년인 김규형, 함께하는 배움터 길학교 중3과정의 박종은, 화천고 2학년 길은혜, 김은재, 나현서, 김민지. 화천고 1학년 김수산, 최소담이 운영위원으로 화천고 3학년 이영경이 명예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번 공연에 특별히 참여한 집이 부산인 소혜와 정보산업고 2학년 주희, 고3이 되어 열심히 입시를 준비하는 뜀뛰기 1기 송현수, 이주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 고등학생들입니다. 여기 화천이라고 다를 것이 없어 학교를 가지 않는 방학이 고작 1주일 밖에 안 됩니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보충수업 시간에 정규 진도를 나간다고 하니 고2들은 꼼짝없이 보충수업에 참여해야 합니다. 뜀뛰기 지도를 맡고 있는 저는 내심 아이들이 그 황금 같은 일주일을 뜀뛰기에 쏟아 부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역시나 뛰다의 축제일정과 아이들의 방학 일정이 딱 겹치고 말았습니다.
올해에도 어쩔 수 없이 보충수업이 끝나는 저녁시간에 모이기로 합니다. 작년 겨울에도 이렇게 학교 수업이 끝나고 모였는데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 해서 진행에 조금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는 터라 걱정이 앞섭니다. 이번이 세 번째 공연 준비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공연을 만들어 내야 하니 캠프를 시작하기 전에는 늘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하지만 캠프가 끝나면 아이들과 저는 한층 가까워져 있겠지요. 연극 한편을 만든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조금씩 나눈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왕복 8시간 거리에서 참석하는 옥래의 열정
▲ 왼쪽이 옥래. 가운데에 있는 친구는 뒤에서 소개할 수산이. © 뛰다
다행히도 보충 수업이 없는 중학생 두 명이 있어서 올해엔 조금 긴 대사를 해야 하는 해설 역할을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그 중학생 중 한명의 이름이 박종은입니다. 우리는 그를 옥래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성도 바꿔서 김옥래라고 부릅니다. 신기하게도 왜 옥래가 되었는지 본인을 포함하여 정말 아무도 모릅니다. 옥래는 집이 경기도 부천입니다. 뜀뛰기 수업이 있는 날은 하루 8시간을 전철에서 보냅니다. 아무튼 대단한 열정입니다.
이번 캠프 때 옥래는 뛰다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말이 좋아 게스트 하우스지. 그냥 학교에 딸린 작은 관사를 개조한 숙소입니다. 실내에 화장실도 없고 도시인들에게는 많이 낯선 '생태화장실'을 써야 합니다.
하지만 옥래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일주일이 정말 외로웠을 겁니다. 컴퓨터도 없고 티브이도 없고 신문도 없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 할 수 있는 컴퓨터 게임도 못하는 생활을 잘 견딜지 걱정했지만 그는 외로운 시간을 잘 참아냈고 생에 처음 A4 한 페이지 불량의 대사를 거침없이 연기해냈습니다. 물론 그 대사는 거의 본인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짧은 토막 하나를 인용합니다.
“여러분들은 아직도 제 연기가 어색하다고 생각하시지요? (잠시 침묵) 전 외로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16살이 감당하기에 벅찬 일이에요. 전 도시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시골에서 혼자 지낸 적이 없어요. 아시겠어요? 벌레들과 닭 울음소리에 혼자 잠을 깨야했어요. 긴긴 밤을 혼자 보내며 지금 하고 있는 이 긴 대사들을 외우고 고치고 여러분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옥래의 꿈은 뛰다의 배우가 되는 겁니다. 그런 꿈이 있어서 그 생활을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중학교 3학년이 특정 극단의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배려심 많은 은재가 가르쳐준 것
▲ 동물을 좋아하고 배려심 많은 은재 © 뛰다
뜀뛰기의 또 다른 멤버 은재는 고 2입니다. 키도 크고 예쁜 얼굴에 성격도 좋습니다. 은재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조각가입니다. 화천에는 유달리 조각상이 많은데 대부분 은재 아버지가 만드신 것들입니다. 그런 환경 덕인지 재밌는 생각을 많이 하고 동물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배려심이 너무 깊어 종종 친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배려심이 저를 뒤돌아보게 만듭니다.
캠프가 끝나자마자 퇴근길에 우연히 은재와 단짝친구이자 뜀뛰기의 새로운 연기파 배우 민지를 만났습니다. 그날따라 퇴근길에 지나는 양방 2차선 다리에 자주 없는 교통체증이 있었습니다. 다리 한가운대에 여자아이 두 명이 보였고 그 중 한명이 어렴풋이 은재라고 느껴졌습니다. 차 막힘. 김은재. 로드킬이구나.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길 건너편에서 은재와 민지가 죽은 고양이를 흰 수건으로 덮어놓고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모른 척 하고 싶었지만 차창을 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곤 다리를 건너 유턴을 하여 돌아왔습니다.
얼굴을 모르는 잘생긴 남자아이의 도움을 받아 흰 수건에 쌓인 고양이를 비닐봉지에 담았습니다. 우리 셋은 고양이를 묻어 주기 위해 뛰다의 본거지인 '예술텃밭'으로 왔습니다. 넓고 깊이 땅을 파 고양이를 묻고 주위의 작은 돌들을 모아 고양이 발자국 모양의 묘비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 당한 고양이들을 묻어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늘 묻어 주고 싶었습니다. 바쁘다는 것은 핑계고 두려움입니다. 죽은 무언가를 만져야 하는 두려움이 측은지심을 누릅니다. 처음으로 묻어 준 고양이와 함께 저의 죄책감도 묻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다음 연극을 위한 멋진 여자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그 여자는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킬러입니다. 그러나 로드킬에 죽은 작은 짐승들을 위해 늘 흰 수건과 작은 삽을 들고 다닙니다.
적극적인 배우 수산이가 맺어 준 인연
수산이는 대안중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화천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수산이는 늘 아이디어가 번뜩이고 가장 적극적이며 능수능란하게 어른 역할을 해내는 배우입니다. 그런 수산이 아버지는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뛰다가 화천으로 처음 왔을 때 수산이 어머니는 화천청소년수련관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 수산이가 살고 있고 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에 놀러 갔습니다.
찾아가는 길을 설명 들었지만 못 찾으면 전화 하지 싶어 건성으로 들은 것이 화가 되었습니다. 한참을 해매고 해매 찾아간 곳은 근처에 인가라곤 할머니 댁 하나뿐인 전기와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 때문에 수산이 어머니와 자주 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수련관 휴관일인 월요일에는 도통 전화를 받질 않으셔서 쉬는 날에는 전화를 안 받으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냥 집에서는 전화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그 집 때문인데요. 그 집은 인공의 재료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방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집터를 닦을 때 배어낸 나무들이 기둥과 서까래가 되었고 파낸 흙으로 벽을 만든 집이었습니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언젠가 집을 허물어야 할 날이 오면 쓰레기장으로 갈 것들이 굉장히 적다는데 있습니다. 사람이 이런 집을 짓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크게 감동받고 놀랐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이번 공연 때 수산이 어머니가 일가친척과 이웃들을 데리고 공연을 보러 와 주셨습니다. 객석의 삼분의 일이 수산이 일가였는데 그분들 모두 수산이를 아끼는 사람들입니다. 그 분들은 수산이를 아끼는 마음에 오셔서 또 뛰다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수산이랑 간식을 사러 시장에 갔는데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수산이를 대번에 알아보시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도록 단돈 오천 원에 양손 가득 참외를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수산이 덕에 과일가게 아주머니와 더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엮어주고 만나게 해 줍니다.
날마다 조금씩 더 멀리 뜀뛰다
언젠가 아이들이 극단 이름을 뛰다로 바꾸자고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뜀뛰기라는 이름이 마치 제자리에서만 뛰는 것 같아 진취적인 느낌이 없다는 느낌이랍니다. 뛰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다른 이름을 찾아보자며 다 함께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렸지만 별 대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새 이름을 만들자는 의견은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1년이 지나 세 번의 공연을 마친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름 안 바꾸길 잘했습니다.
앞으로 이 친구들이 어떻게 자라날지 어떤 어른이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아이들. 제가 외면한 것을 돌아보는 아이들. 제가 겪지 못했던 것을 겪는 아이들입니다. 뜻도 정확히 몰랐던 이름을 붙인 우리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같은 자리에서 날마다 조금씩 도약하고 있습니다.
뜀뛰기[명사] <운동>
1.[같은 말] 도약 경기(육상의 필드 경기 가운데 하나).
2.[같은 말] 도약 운동(뜀을 뛰어 하는 온몸 운동의 하나).
도약 (跳躍)[도약][명사]
1.몸을 위로 솟구쳐 뛰는 일.
2.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유의어 :점프)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최재영/ <뛰다> 배우.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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