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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신화를 통해 탐색한 인간의 성(性)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24. 인도 극단과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 뛰다는 2001년 ‘열린 연극’, ‘자연친화적인 연극’, ‘움직이는 연극’을 표방하며 창단한 극단입니다. 지난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20여 명 단원들이 폐교를 재활 공사하여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서로 다른 문화와 몸의 역사를 가진 예술가들의 만남
▲ 인도 극단 아디샥크티와의 레지던지 작업 중. 성(性)이 변화하는 연인들이 등장하는 인도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으로, Niran과 재영이 둘 다 남자가 된 주인공들의 새로운 사랑을 격렬한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다. © 뛰다
지난 1월 뛰다의 배우들은 인도의 남부 폰디체리에 있는 극단 아디샥크티를 방문하여 한달 동안 함께 훈련하고 서로의 방식을 배우고 이해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함께 머물며 창작하는 이런 방식의 작업을 레지던시(Artists in Residency를 줄여서 붙인 말)라고 합니다. 레지던시 작업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공간에 머물며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때로는 서로의 생활공간과 시간을 일부 공유함으로써 예술가들이 서로 깊이 소통할 수 있게 합니다.
9월 3일에는 인도에서 세 명의 배우와 무용수들이 화천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이 곳 화천에 머물면서 뛰다의 배우들과 함께 창작작업을 합니다. 화천에서의 이번 레지던시에는 이들과 더불어 인도와 한국의 음악가들, 설치미술가, 의상디자이너가 함께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1월과 9월에 하게 된 레지던시는 인도와 한국의 예술가들이 만나 어떤 작품을 만들어가는 중간단계의 연구작업에 해당됩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몸의 역사를 가진 예술가들이 만나 하나의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의 다름과 같음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고민해 봐야 했습니다.
지난 여름부터 우리는 인도의 신화와 문화, 예술분야에 대해 틈틈이 공부하고 연구해왔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 지는 것 같습니다. 두 문화가 만나는 그 틈새에서 뭔가 강렬한 영감이 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한동안 참 난감했습니다.
인도의 여신 바후차라 마타와 '히즈라 공동체'
인도의 신화를 공부하던 중, “바후차라 마타”라는 여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여신은 인도의 히즈라 공동체(Hijra community)들이 섬기는 신입니다, 남자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처럼 사랑할 수도 없고 정상적으로 대우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바로 ‘히즈라’입니다. 이들은 ‘바후차라 마타’라는 신이 이승에서 부족한 자신들의 삶을 채워줄 거라고 믿고 있고 이 여신은 히즈라 공동체의 아주 강력한 후원자가 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바후차라 마타의 신전을 지나가다가 그 옆에 연못에 빠진 한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일년 동안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호기심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이 여신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무엇인가, 또 남자는 무엇인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한다는 건 무엇인가. 두 남자가 사랑을 하는 것, 혹은 두 여자가 사랑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남자가 여자가 되고, 또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로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이 우리 작업의 첫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여자인 것, 사회적으로 여자인 것으로 나를 여자라고 말하기에 충분한가.
화천의 작은 연습실에 모인 십 여명의 예술가들은 그 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생각이 들었어도 그 누구와도 이야기해 보지 못했던 생각들을 나누었습니다. 남자로 살아왔지만 남자로 살아가기 힘들었던 고충, 여자로서 가장 충만했던 순간, 동성으로부터 유혹을 받았던 경험, 남자로서 강한 자부심을 느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들을 소재로 몸과 소리와 말로 표현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창작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성에 대해서 별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부분들이 참 많다는 것, 말하지 못하는 것들도 참 많고, 모르는 것도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개인의 모든 경험들은 무대 위 표현의 소재로 채택되고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들은 성(性)을 전환했을까
▲ 변환의 긴 여정뒤에 돌아온 주인공들은 다시 여자로서 삶을 살게 된다. Radhe와 모은은 시적 독백으로 새로운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 뛰다
일주일간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들을 찾아가는 작업이 끝나갈 무렵 인도의 배우인 니미 라펠(Nimmy Raphel)이 친구에게서 소개받은 신화 한 편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후차라 마타 여신이 배후로 등장하는 이 이야기의 제목은 “A Double Life(이중생활)” 입니다.
두 여자가 있었고, 두 여자는 부모님들에 의해 태어나기 전부터 결혼을 해야 되는 운명이었습니다. 한 여자는 하는 수 없이 남자로 키워졌고 결국 결혼식을 하게 됩니다. 그 둘은 첫날밤 서로가 같은 여자임을 알게 되고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두 여자의 사랑은 충분히 행복했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는 뭔가 불편함을 느끼고, 여신의 도움으로 남자가 됩니다. 그 둘은 남녀로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다시 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시 두 여인의 사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깁니다.
이 이야기는 다양하게 읽힐 수 있겠지만 우리는 성이 전환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무엇이 이들에게 전환의 절실함을 갖게 했던 것일까. 그들은 관계, 즉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을 전환하게 되는데, 그런 갈등와 불협은 어디서 어떻게 생기게 되는 것일까. 하는 질문들로 우리는 두 번째 주간을 채워나갔습니다. 임의로 짝 지워진 배우들은 가능한 모든 관계들(女女, 男女, 男男, 女男, 다시 女女 커플)을 만들어 보고, 그들이 맞게 되는 전환의 이유들, 근거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은 신체적인 표현으로 그려내었습니다. 배우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상투적인 편견이란 것을 곧 알게 되었고, 그들은 더 깊은 고민들을 해야 했습니다.
배우들은 설치미술가와 의상디자이너가 던져준 아이디어를 가지고 무대 위 다양한 표현들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게 됩니다.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두루마리 천들이 무대 위 설치된 여신의 빼대 위에 얹혀지는 과정이 다양한 몸짓으로 표현되고, 남자에서 여자로, 여자에서 남자로 전환되는 과정은 상징화된 의상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집니다. 옷은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인 성적 억압의 상징이 되고, 개인의 몸과 살은 태생적 성의 선입견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과연 몸과 정신, 사회적인 모든 관점을 관통하는 본질을 우리는 볼 수 있을까. 이 작품을 통해서 그런 질문과 의문들을 이해하게 될까. 그런 욕심을 부려보게 됩니다.
▲ 두루마리 휴지로 즉흥을 하는 배우들. 사물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무대위에서 오브제는 존재 이유를 찾게 된다. ©뛰다
우리가 만드는 예술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제 우리들은 전라도 광주로 내려왔습니다. 태풍이 남해안에 상륙하고, 비바람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배우들은 광주호 인근 펜션의 한 방에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가슴이 풍만하고, 여린 몸매를 좋아하는 이 상업주의 사회에 대해 떠들고 웃어댑니다. 그리고 우릴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 영화나 상품 광고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제 앞으로 일주일 동안 이 도시에 머물며 남은 창작의 과정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배우들이 만든 움직임들은 더 정교해지고 깊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야기가 완성되는 가운데 이 신화가 가지고 있는 은유의 힘은 더 분명해지고 구체화되어 드러나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레지던시는 3년간 창작과정의 중간지점으로서 앞으로 갈 길을 찾게 하는 아주 중요한 이 될 것 같습니다. 작품의 스타일을 발견하고, 발전시킬 이야기의 근거들을 확인하고, 참여한 예술가들과의 궁합을 살펴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마다 들게 되는 의문이 이번에도 다시 찾아옵니다. 우리의 이런 작업들이 이 사회에 대해 갖은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의 이런 움직임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게 될까. 우리들은 예술이 이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 그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들 말입니다. 저는 예술이 암울한 이 사회의 작은 한 줄기 빛이기를 바랍니다. 그 빛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그래서 어둠에 휘둘리지 말고 깨어 있기를. (배요섭 / 뛰다 연출가)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연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삶과 사람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주신 극단 뛰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2012 일다 "앙코르" <인터뷰 전문실습강좌> 소식!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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