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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젠더’, ‘연구와 운동’이 만날 수 있길
여성이 건강할 권리, 여성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건강’을 바라보는 여성주의 시각이 필요합니다. <일다>는 “젠더와 건강”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해가는 활동가, 연구자, 의료인을 만나,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필자 박은지님은 사회건강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일다> www.ildaro.com
<건강과 대안: 젠더건강팀>의 문현아씨 인터뷰
창경궁이 보이는 종로의 한 구석에는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보건의료인뿐 아니라 인문학, 과학, 사회학, 여성학 등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건강마저 상품화하려는 현 사회를 폭넓은 관점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젠더건강팀’의 구성원이자 <건강과 대안> 연구위원이기도 한 문현아 선생님을 만나 ‘젠더’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여성학을 배우며 다양한 사회운동과 만나다
▲ 2007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한미 FTA를 반대하는 보건의료단체연합 피켓을 든 문현아씨.
“제가 건강 분야로 온 것은 최근이에요. 원래는 여성학 쪽에 먼저 관심을 가지게 됐죠. 공부만 열심히 하던 시절에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어떤 분이 페미니즘을 공부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었어요. 그때까지는 여성학에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재밌더라고요.”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어우, 여성문제가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활동하게 됐다. 그러던 중 2004년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에 참석하게 된다. 이 포럼은 매년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 대항해 만들어졌다.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구호를 걸고, 전 세계 다양한 이슈를 가진 사회운동가들이 모이는 자리다.
“상당히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모였어요. 같은 숙소를 썼는데, 거기엔 무영(현재 살림의료생협 주치의)도 있었고, 보건의료단체연합,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다함께, 아래로부터 세계화 등 여러 단체가 있었어요. 이들이 큰 건물에 와장창 다 있었죠.”
숙소 건물을 오가며 자연스레 이들과 어울리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건강’ 분야를 비롯한 많은 이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환경운동, 좌파운동, NGO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장애인운동,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뭄바이 포럼 이후에도 아프리카와 남미를 번갈아 가며 세계사회포럼이 열렸어요. 2007년에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포럼에는 NGA(Network for Glocal Activism, 현재 글로컬 페미니즘 학교)라는 단체를 만들기 위해 세계적인 운동의 흐름을 보자는 목적으로 참가했죠.”
케냐에서 다시 만난 보건의료단체연합과 함께 피켓을 만들고 행진도 참여하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보건의료’와 관련된 이슈를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 포럼은 ‘아래로부터의 저항, 저항의 세계화’라는 맥락에서 진행됐어요. 여기에서 저는 운동과 운동의 만남을 보게 됐어요.”
40대 지인들의 죽음, 삶을 되돌아보다
한국으로 돌아와 NGA 페미니즘 학교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환경운동 등이 만나 부문운동의 경계를 넘고, 활동가들이 공부도 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문현아 선생님 자신은 지쳐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절실히 휴식을 원하게 되었다.
“새로운 단체를 만드는 것에 집중해서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여러 가지 개인사정과 더불어 조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에너지도 별로 없는 사람이 너무 무리해 달렸는지…. 운동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면서 ‘나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그 동안은 책을 읽거나 나를 충전시킬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한국사회 특성상 활동가들이 쉴 시간이 워낙 없기도 하고요.”
마흔 살이 넘으며 ‘나와 밀착된 운동’, ‘나와 밀착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현아씨는 사회변화를 위한 운동을 하더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나 부채의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방식으로 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여기에는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죽음을 맞이한 것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작년에 제 주변에서 사십 대 네 명이 죽었어요.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격적이었어요. 40대가 갈 수 있구나…. 그리고 최근엔 저와 굉장히 친하게 지내던 분이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 분은 희귀질환을 가지고 있었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건강, 삶에 대한 대화를 하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네가 그렇게 바쁘냐. 날 만날 시간도 없냐’ 하셨는데, 제가 너무 바쁘다 보니 사람을 만날 시간이 정말로 없는 거에요.”
일하는 단체에 있는 사람들 말고는 누구를 만날 시간도, 책을 읽을 시간도 없이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삶에 몸도 소진되고, 그래서 모든 일에 화가 났다고 한다. 이건 아니다 싶어 다른 활동들은 잠시 내려놓고 작년에는 공부와 강의에 집중했다.
“운동 진영에 있다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갑자기 학생들, 보통사람들을 봤어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별 관심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성운동도 접근방법을 상당히 달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여성 판’에 있으면 기본적으로 의식이 있는 사람들끼리 있으니까, 의식이 없는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항상 대중들을 위해 기본을 같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은 됐다고 치니까. 이렇게 엘리트적인 것에서 벗어나 친절하게 같이 설명해줘야 되는데.”
또 주변 사람들에게 만나자고 했을 때 ‘너 또 나 만나면 나 욕하려고 그러지!’라는 말을 듣게 되거나, 책을 쓴다고 했을 때 ‘네가 비난 안 해도 나 다 알아. 페미니스트들이 맨날 나 잘못한다고 구박하잖아!’ 하는 반응을 접하면서, 기존의 페미니즘이 소위 ‘의식 없는’ 여성들을 의식화하려 하고 무시했던 것이 아닐까 성찰했다고 한다.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서 느낀 게 ‘아, 페미니즘 이미지 자체가 잘난 년들이 못난 년 구박하는 걸로 굳어져있구나. 세상이 많이 변했는데 이런 변화에 페미니즘 운동도 같이 발맞춰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건강’ 이슈로, 서로 다른 학제 간 소통하려는 노력
▲ 2010년 10월 30일 열린 제3회 보건복지연합학술대회 "한국 복지국가 담론의 지형과 과제"에 참여한 건강과 대안 활동가들과 함께.
문현아 선생님은 2008년 <건강과 대안>이 만들어지면서 ‘젠더건강팀’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 이슈와 건강 문제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건강 관련된 주제를 토론하며 많은 걸 배우고 시야가 넓어졌다.
“젠더건강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살림 여성주의 의료생협, 여성환경재단 사람들과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사람들, 성소수자 모임에서도 몇 명 결합했고, 물론 의사들도 있었죠. 같이 진행을 하면서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사용하는 용어도 달랐다. ‘메커니즘(mechanism)’이란 단어를 사회학에서는 ‘기제’라고 했고, 의학 분야에서는 이를 ‘(병에 걸리게 되는) 기전’이라고 했다. 같은 통계나 그래프를 보아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기도 했다.
“건강과 젠더는 이렇게 서로 소통하고, 배워가야 되는 분야라고 생각이 들어요. 서양에서는 이런(분야가 다른 사람들간의) 소통을 시도한 역사가 꽤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몇 년 안됐어요. 호주는 1974년부터 여성건강센터들이 있었고요. 특히 ‘여성건강’ 분야는 우리와 거의 삼 사십 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그랬다. 2008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젠더와 건강’이라는 분야는 굉장히 생소했다. 젠더 이슈를 다루는 쪽에서는 건강 이슈에 대해 단발적 대응을 하는 수준이었고, 건강 이슈를 다루는 쪽에서는 성인지적 관점을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 그런 까닭에 ‘젠더 건강’이라는 분야를 다루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젠더건강팀’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들의 노동환경과 여성 재소자들의 건강 문제, 독거노인과 비혼여성의 건강 등 의욕적으로 여러 주제를 다루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휴지기를 갖기도 했다.
“많은 주제를 다루다가 중간에 쉬게 된 것 중에는 ‘너무 비참해서 못 하겠다’ 이런 이유도 있었어요. 우리나라 여성의 건강을 들여다보니 다 불건강하고, 다 불쌍하고, 폭력 문제에…. 뭐, 신이 나는 일이 없으니 기운이 안 났죠. 이제 다시 해보려고 하는 게 한국의 미용 산업과 성형 산업, 여성의 몸에 관한 프로젝트에요. 이 프로젝트 전체를 통해 보면 ‘젠더와 건강’ 문제가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까 해요.”
페미니즘이 많은 분야로 퍼져나가 대중에게 닿길
▲ 문현아 선생님이 인터뷰 당일 입고 나온 "탈핵" 티셔츠 이미지
문현아 선생님은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 ‘젠더’라는 단어가 운동성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고 했다. ‘젠더’라고 하면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문제도 다루는데, 아직 여성문제도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은 여성학(women's study)이 없고, 젠더학(gender study)만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물 탔다, 물 탔어’ 이렇게 생각해요. 예전에는 저도 상당히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좀 바뀐 것 같아요.”
문현아 선생님이 2000년대 초반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칠 때만 해도 수강생 대부분이 여학생이었고, 남학생은 소수였다고 한다. 그때는 남학생들에게 거의 관심을 갖지 못했고, 그들에게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난감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남학생의 비율이 매우 높아졌다.
“올해 <젠더와 사회>라는 과목을 가르치는데 여학생과 남학생 비율이 6:4 정도예요. 너무 놀라운 것은 남학생들이 여성문제에 대해 더 모르긴 해도, 상당히 많은 수가 (여성주의) 감수성이 있어요. 그동안 한국에서 여성운동이 큰 역할을 해서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어떤 면에서는 ‘페미니즘 자체가 그 변화를 제대로 못 읽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제 여성학에서 어떻게 남성들의 문제를 같이 다룰지, 혹은 남성들에게 여성문제를 어떻게 전달할지 더 고민해야 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나의 활동이 일반 사람들과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저는 ‘젠더건강팀’이 그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연구를 한다는 것이 꼭 대중과 분리되어 따로 가는 건 아니에요. 이론을 파고드는 것도 물론 있어야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죠. 영국의 어떤 학자가 한국사람들을 향해 이런 얘기를 했대요. ‘너희는 주디스 버틀러가 그렇게 유행이라면서 왜 동성애 혐오와 무지는 그렇게 강한가?’라고. 버틀러를 읽으면 뭐해요, 옆에 있는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지! 그런 면에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이나 여성학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다른 분야로 더 넓게 퍼져나가 모든 사회가 ‘젠더’를 같이 고민했으면 한다고 문현아 선생님은 말한다. 자신도 당분간 건강 분야에서 이런 것을 모색하려고 하고, ‘젠더’와 관련된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모일 수 있길 바라고 있다고.
“건강이라는 분야에 무지몽매하게 뛰어들었지만, 다행히 이곳에서 여성건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시대별로 만나면서, 이제는 ‘연구’와 ‘운동’이 같이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보고 있어요.”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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