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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된 고용관계, 특수고용노동 실상은?
‘노동자 아니다’ 잇단 판결이후 확대일로, 대책 마련 절실해 

 
특수고용이 확대되면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의 실태와 이를 둘러싼 법적 쟁점을 설명한다. - <일다> www.ildaro.com
 
‘배달 알바’ 십대 까지도…성행하는 특수고용노동
 
사장을 사장이라 부르지 못하고 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르지 못하는 기막힌 사정이 노동계 한편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미 이십 년도 더 전에 생겨난 것이지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조금씩 발생하다가 어느 순간 중심에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바로 우리가 흔히 특수고용노동자로 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상에서 특수고용노동자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택배서비스기사, 퀵서비스 배달원, 대리운전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간병인, 신문판매원, 생수기 관리원, 수도 및 가스검침원, 컴퓨터 프로그래머, 방송 작가, 학원 강사, 그래픽 디자이너, 야쿠르트 아주머니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특수고용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치킨, 피자 가게 등에서 배달 알바를 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특수고용노동이 성행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인 것처럼 취급받지만 사실 원래부터 ‘개인사업자’였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지금과 같은 사업체에서 같은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노동자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장으로 모셨던 사람이 위탁자로 변했고 ‘근로계약서’의 명칭은 ‘업무위탁계약서’, ‘도급계약서’로 바뀌었다.
 
“당신은 이제 직원이 아니에요. 당신은 ‘프리랜서’라고요. 그러니 4대 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금도 알아서 내세요.”
 
회사의 일방적인 조치에 따라 이들은 졸지에 노동자에서 개인사업자로 바뀌었다. 그러나 말이 좋아 ‘프리랜서’, ‘개인사업자’지 실상은 여전히 사장이라고 불려야 할 사람에게 종속되어 일을 한다.
 
개인사업자? ‘외근하는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

▲ 5월 7일 재능교육 본사 앞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촉구 1만인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    © 윤정은   
 
그동안 진행된 실태조사 결과들은 대부분의 특수고용노동자가 사업체에 인적, 경제적 종속 관계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1,600일 넘게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학습지 교사는 지국장이 정하는 근무 구역 안에서 지국장이 정하는 학습 일정에 따라 회원 가정을 방문한다. 업무에 필요한 가장 주요한 수단인 교재는 회사에서 제공한다. PDA를 자비로 부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회사와의 원활한 업무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학습지 교사의 수입은 학습지 회원들이 내는 회비 수금액에 회사에서 정한 수수료율을 곱한 금액이 되는데 회사는 실적을 올리도록 학습지 교사를 압박한다. 만약 마음대로 진도를 정하거나 출근일을 변경하면 학습지 교사는 계약 해지를 당하게 된다.
 
이쯤 되면 외근하는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학습지교사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은 학습지교사가 노동자가 아닌 이유로 ① 취업규칙 대신 관리규정이 적용된다는 점, ② 근로계약이 아닌 업무위탁계약이 체결된 점, ③ 회사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 점, ④ 임금 대신 회비의 수금 실적에 따라서 수수료를 받는 점, 그리고 ⑤ 관리규정에는 직원과는 달리 출·퇴근 시간이나 업무수행시간에 관하여 아무런 정함이 없는 점, ⑥ 학습지교사 개개인의 자율과 능력에 따라 업무 수행과정에서 이탈할 수 있고, 업무수행 장소도 회사의 지국 사무실 등의 사업장이 아닌 주로 학습지 회원의 주거 등으로 자유롭게 되어 있는 점, ⑦ 학습지교사 각자 사업자등록을 한 후 사업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을 뿐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지 않은 점, ⑧ 회사에 설립되어 있는 직장의료보험조합의 당연 피보험자로 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대법원 1996. 4. 26. 선고 95다20348 판결 등).
 
그러나 계약서 명칭 및 내용, 임금의 지급 방법, 근로소득세의 납부 방식, 직장의료보험조합에의 가입 여부는 회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다. 결과적으로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성과급을 받는 노동자, 외근을 주로 하는 노동자는 회사의 의지에 따라서 언제든지 개인사업자로 전환될 상태에 놓이게 된다.
 
특수고용자 권리 보호, 노동자성 인정이 핵심
 
이후에도 법원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이 문제 될 때마다 회사의 손을 들어 주었다. 회사가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근로관계를 위장(국제노동기구에서는 이를 ‘위장된 고용관계’라 명칭 한다)하는 데도 불구하고 법원은 실체를 보지 못하고 형식에 집착하였다. 그래서일까. 특수고용노동자에 관한 판결들이 쏟아져 나온 이후로 특수고용노동자의 범위는 더욱더 확대되었다. 개인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가 확대된 데에는 사법부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 일각에서는 사법부가 바뀌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법을 바꾸자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2004년 무렵에는 특수고용노동자도 노동자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반면 특수고용노동자가 처한 불이익한 상황은 하도급법이나 불공정거래로 규제하면 된다는, 즉 경제법적 원리에서 접근하면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주로 경총과 같은 사용자단체에서 나온 주장이다.
 
그러나 위장된 고용관계는 누가 뭐라 해도 노동관계다. 경제법적 접근으로 특수고용노동자가 받는 불이익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이상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노동자라는 지위에서 나오는 권리는 경제법적 접근으로는 보장받기 어렵다. 노동자임이 확인될 때에만 노동조합을 만들어 사용자에 대항할 수 있고,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모성보호, 성희롱 금지,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 산업안전보건 역시 노동자일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7년 11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조항이 생기면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확인하기 위한 싸움은 한풀 꺾였다.
 
특례 조항은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산재보험을 적용하겠다는 취지지만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노동자와 달리 특수고용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경우에는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 전체가 아니라 시행령으로 정하는 특정 직업군에서만 특례 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재택근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시간 노동이 확대되고 서비스 산업이 발달할수록 특수고용노동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나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어쩌면 대부분의 노동자가 특수고용노동자로 전환될지도 모른다. 근무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고 기본급을 없애는 대신 성과급만 주는 것으로 특수고용노동자의 외형은 절반 이상 갖추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문제를 외면하지 말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자. 벼랑 끝에서 싸우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와 연대하자.   (윤지영 /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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