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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www.ildaro.com 두 여성주의 감독이 진실에 접근하는 법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김일란, 홍지유 감독
2009년 1월 19일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3년 전 묻혀버린 진실을 찾아가려는, 독립다큐멘터리 한 편이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만 명을 넘기 어려운 독립영화 관객 수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4만을 훌쩍 넘었고, 이미 ‘사법적 재판’에서는 결론 내려진 용산참사에 대한 ‘사회적 재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은 그만큼 힘이 있는 기록이다.
▲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스틸 컷 © 연분홍치마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기록자의 시선’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화재참사가 일어났던 바로 그 현장에서는 철거민과 경찰특공대가 대치하고 있었지만, <두 개의 문>은 양 측 중 어느 편에 설 것이냐를 묻지 않는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특공대원들의 진술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따라가며, 철거민과 특공대원의 죽음과 고통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있다.
진실을 찾는 문을 열기 위해 새로운 구도를 제시하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가 여성주의 미디어공동체인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연분홍치마’는 첫 작품 <마마상>(2005)에서 기지촌 성매매 여성이면서 포주가 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일다>에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2004) 기획 기사를 연재한 바 있다. 이후 ‘커밍아웃 3부작’으로 불리는 <3XFTM>(2008),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2009), <종로의 기적>(2010)을 통해 남/녀 이분법에 기반을 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2012년, 화제작 <두 개의 문>을 내놓은 것이다.
분야와 형식은 다르지만 미디어활동가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서, 김일란 홍지유 두 감독을 만나 <두 개의 문>에 담긴 문제의식과 기대에 대해, 그리고 용산참사를 기록하는 저널리스트로서 취한 태도와 방법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두 개의 문>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영화를 보면 ‘두 개의 문’은 얼마나 무리한 진압작전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인데, 철거민과 경찰특공대의 서로 다른 입장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용산참사를 기록한 영화에 이러한 제목을 붙이게 된 경위를 설명해달라.
“2009년 ‘레아’(용산참사 이후 미디어활동가들이 만든 촛불방송국) 활동을 하면서 재판을 방청했다. 경찰특공대원들의 증언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하고 느끼는 감정이 달랐다. 처음부터 우리가 경찰특공대에 대해 취한 태도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특공대원들이 착륙과 동시에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 사전정보가 없어 출입문이 어디인지 몰라서, 두 개의 문 중에 어느 것이 망루로 통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망루 안에서는 바깥의 정황을 파악할 수 없었고, 누가 밀려들어오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문을 뜯느라 십분 가량을 지체했고, (철거민이나 특공대원이나) 위험하고 당황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두 개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담고자 했다.”
- 경찰특공대원들의 증언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지?
“이를 테면 고 김남훈 경사(당시 31세)의 죽음의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 부대원이 ‘농성자에게 있다’고 답했을 때, 방청객들은 그 말이 얼마나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지 알기 때문에 거짓을 말한다고 화가 날 수 있었던 것이고, 실제로 불리하게 작동한 것이 맞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침묵에 꽂혔다. 그 대답을 한 사람이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거기에 좀더 신경이 쓰였다.”
▲ <두 개의 문>을 만든 김일란, 홍지유 감독 © 촬영- 박희정
-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건을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인가.
“그 때는 다큐멘터리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재판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고 변호인단이 반대 심문에 필요한 속기록을 받아야 하는데 잘 넘어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레아’ 활동가들에게 녹음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1심 판결이 나고 나서였다. 경찰특공대원들이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거나, 진압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증거로 채택되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진 않았을 텐데, 법리적으로 봤을 때도 어이 없는 판결이었다. 이걸 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 <두 개의 문>을 보며 ‘연분홍치마’의 작품에 어떤 흐름이 있다고 느꼈다. 두 개의 문은 경찰특공대원의 증언과 입장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용산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영화다. 첫 작품인 <마마상>도 굉장히 다루기 힘든 주제를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기지촌 여성이면서 포주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이어진 커밍아웃 3부작도 배제된 사람들,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줬다는 점에서 연결고리가 보인다.
“우리도 몰랐는데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가면서 우리가 주목해왔던 사고의 방식이나 드러내고자 하는 것에 어떤 흐름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마마상>은 포주이기도 하고 성매매 여성이기도 했던 여성의 삶을 통해 성매매 구조의 다른 측면을 보려 했지만, 첫 다큐이다보니 그 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미숙함이 많았던 것 같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런 시각을 드러내고자 했을 때, 선정적이지 않고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어떤 표현을 해야 하는지 나름의 경험이 쌓인 것 같다. 가끔 그런 시각을 읽어주는 분들을 만났을 때 반갑다.”
- 이 작품을 통해 용산참사는 ‘철거민 vs. 경찰특공대’ 구도를 벗어나, 철거민과 특공대원들이 비슷한 위치에 놓이면서 과연 이들의 희생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게 만든다. 이처럼 적과 아군,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대상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제시하며 사건을 입체적으로 보아 실체에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 여성주의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경찰특공대 자체를 (명령을 내린 자와) 분리해내고, 대원들을 상급자와 분리해내고, 그렇게 철거민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동참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탑 트윈스>(The Topp Twins: Untouchable Girls, 린 풀리, 뉴질랜드, 2009)라는 쌍둥이 레즈비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촌극을 하며 사회문제를 알리고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거기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운동을 하는 것은 진짜 어려운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여 입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도 저렇게 운동하려고 노력하는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 죽 계속 고민해온 것 같다.”
- 또 하나 중요하게 다가온 것이, 현장을 담은 칼라TV와 사자후TV의 기록에 관한 것이다. 칼라TV 박성훈 PD를 인터뷰한 것도 ‘기록자를 기록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깊다고 보았다.
▲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스틸 컷 © 연분홍치마
“재판 과정에서 그 영상들이 증거로 반복해서 틀어졌다. 그러나 박성훈씨도 말하듯이, 그 영상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진실을 다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영상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게 분명 있다. 그것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있었던 1인 미디어와 대안언론들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있는 거다. 그게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라고 생각한다.
현장을 지킨다는 것은 갈등이 벌어지는 것을 촬영한다기보다, 만에 하나 어떤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의 목격자로서 그 자리에 있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촬영했던 많은 분들이 그 날 그렇게 있었던 것이다. 영화 첫 장면에 박성훈씨가 사람들이 특종 잡았다고 칭찬하는데 자신은 비참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그 자리에 있는지, 그 마음을 다시 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의 표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2009년 사건 당시 영상을 보았을 때는, 그 상황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불똥이 튀고 불길이 번지는 화면을 보며 너무나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 영상을 다시 보기가 두려웠다. 그런데 다큐를 보면서는 분명 그 영상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도 조금은 거리 두기를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영화를 보았다. 제작 과정에서 그런 부분에 신경을 썼는지.
“그건 굉장히 오랫동안 훈련된 것이다. 어떤 이슈를 다룰 때 그 의미 자체가 주는 강렬함은 유지하지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감정은 한 이미지 자체에서 발생한다기보다는 배치나 편집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감정이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그런 컷의 길이, 이 장면은 어떤 느낌을 만들게 될까, 그런 고민을 계속하면서 전체적인 느낌을 만들어갔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은 ‘윤리적 도발’이라는 것이다. 지난 작품들에 대해 ‘너희가 지나치게 조심하다 보니까 관객들이 눌리게 된다’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강박적 윤리’가 아니라 관객들이 좀더 편하게, 감정을 방어하지 않고 다가가게 하는 방식이 무엇일까 고민해왔다. 음악의 사용이나 스릴러 장르를 가져온다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이 다큐가 선정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적정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 음향의 사용을 드라마틱하게 한 것은 용의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 입장에서 좀더 편하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장치 같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편한 자세로 들어야 하는 게 있지 않나. 익숙한 내러티브 진행이라든가. 관객들이 어떤 메시지에 강요되지 않고 생각의 공간으로 들어오길 바랬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그 고민을 하려면 어쨌든 영화적 익숙함이나 이끌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주사 놓을 때 안 아프게 하려고 탁 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건 자체가 갖고 있는 참담함에 눌리면 ‘같이 고민해볼까요?’ 하는 부분이 잘 전달되지 않을 수 있어서, 이것을 중화시킨다고 해야 하나. 감정적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 영화에는 철거민 당사자나 유가족들 인터뷰는 등장하지 않는다. 철거민들의 그 25시간 이전의 삶이나 이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감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부분을 배제하려고 한 것인가?
▲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포스터 © 연분홍치마
“철거민의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악다구니 하는 철거민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깨고 싶은 욕망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언사로 시작했을 때 모든 벽에 막힐 거라고 생각했다. 성폭력 문제도 피해여성의 순결함이나 무고함 이런 것에 기댈 때가 있지 않나. 하지만 그 여성이 어떤 여성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철거민들이 무리한 요구를 했든 불법 행위를 했든, 문제는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억울함을 호소하며 저항하는 국민에게 특공대를 투입시켜 진압한 것이 문제의 초점이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이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태도, 그들의 명예가 나의 명예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길 바랬다. 왜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갔고, 왜 요구를 했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걸 궁금해하려면 가장 필요한 태도가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했으면 좋겠다. 그 다음의 이야기는 이 전제 위에서 하자 라는 제안을 하고 싶었다.”
- 우리는 아직 진실을 모르지만, 법정에서는 이미 철거민들에게 징역 4-5년의 유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두 개의 문>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민주당이 철거민 석방특사를 추진하겠다고 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제철거는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 영화를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태도로 용산참사를 보아야 하는지, 이후에 진실규명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날 철거민들이 너무 많이 추락해서, 몸도 가누기 어려운 분들이 지금 항소심이 잡혀있다. 그 분들에게도 지금 감옥에 계신 분들과 같은 형이 내려질 수 있다. 이 분들을 또 다시 같은 이유로 감옥에 보내야 하는지, 탄원서를 작성해주시는 것을 부탁 드린다.
다큐 개봉을 준비하면서 여러 방식으로 관객들을 소환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나눴다. 영화에서 사법적 진실규명은 끝났다고 했지만, 사회적 재판은 다시 불붙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9월 국정조사와 연결시켜 관객들을 배심원으로 부르자는 제안도 있다. 사과해야 할 사람과 집단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활동들을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고, 정치권에도 감시와 압력이 되어주시면 좋겠다.”
<두 개의 문>을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800여명의 시민들이 배급위원으로 참여해 후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독립영화상영관이 극소수인 상황에서, 현재 많은 지역에서 관객들이 인원을 모집해 극장 1개 관을 직접 대관하는 방식으로 영화 상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이러한 대관상영이 새로운 관람문화로 자리잡기를 희망하고 있다.
김일란, 홍지유 감독은 인터뷰를 마치며 “용산참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만큼이나, 독립다큐멘터리의 제작 환경과 상영 조건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된 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5명의 미디어운동가들의 공동체 ‘연분홍치마’는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예비관객들의 후원인 신청 연락(ypinks@gmail.com)을 기다리고 있다. (조이여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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