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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시설을 나와 홀로서다> ① 오지우의 ‘사는 맛’ 나는 삶
2010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을 포함해 지역사회단체들이 함께 <시설거주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장애인주거복지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이 시설을 벗어나 자립생활을 하고자 할 경우, 시설로 방문해 상담을 하고 필요한 지원 내용들을 파악한 후 실제적인 자립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집을 구하고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일부터 시작해 사회적인 관계망을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해온 이 사업을 통해 자립한 16명의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최근 <나, 자립했다>라는 책으로 묶여져 나왔습니다. 인터뷰로 구성된 책 속에는 이들이 시설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 사회적인 이유와 함께 탈시설 이후의 삶이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섬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3년간 지원을 얻어 진행된 이 사업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오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느끼게 되는 실제적인 어려움이나 제도적 보완책 등을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 또한 있습니다. 시설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지역사회에 정착하며 살기까지 세밀한 지원 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적 지원이 많이 미비한 상황에서 ‘사람다운 삶’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용감하게 홀로 선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일다>에 옮겨 싣습니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홀로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우리 사회가 어떠한 지원체계를 갖추고 어떻게 인식을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로 바꾸는 사람, 오지우
▲ 오지우씨(32) 는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랐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상담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 오지우
“저는 제가 A형(혈액형)이라 A형이 싫어요. A형은 다른 사람에게 기분 나쁜 걸 이야기를 잘 못해요. 나는 먼저 말을 안 시키면 말을 잘 안 해요. 사람이 많은데 있으면 말을 잘 안하는 스타일이에요. 낯을 많이 가려서.”
스스로를 사람 대하기 어려워하는 소심한 A형이라고 밝히는 오지우 씨(32), 그러나 그녀의 꿈은 의외로 ‘상담가’이다. 세상에서 받은 상처로 마음을 다쳤거나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상담일. 어째서 ‘낯가리는’ 지우 씨가 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걸까.
“제가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랐잖아요. 그래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 상담을 해주고 싶어요. 저는 이야기 하는 것도 좋고 듣는 것도 좋아해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즐거워 해주고 기분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소심해서 A형이 싫다는 지우 씨가 가장 좋아하는 혈액형은 O형이다. “O형은 성격도 좋고 다른 사람이 해달라는 거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지우 씨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결국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에 대한 지우 씨의 가치관이다. 그리고 지우 씨는 그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녀의 방에는 유달리 분홍색이 눈에 띈다. 휴대폰도, 투박한 전동휠체어도 온통 분홍빛으로 장식되어 있다. 분홍색은 소녀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분홍색을 좋아하는 성인은 유치하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분홍은 공격적인 기운을 진정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색이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관계를 만드는 색이기에 ‘부드러움’과 ‘행복’을 뜻한다.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우리의 대화는 시작부터 별 어려움 없이 즐겁게 흘러갔다. 아마도는 지우 씨가 천성이 상냥한 사람이고, 그리고 나를 많이 배려했기 때문일 게다. 무엇보다 지우 씨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HOT를 좋아했던 17살, 첫 시설에 들어간 19살
▲ 선천성 뇌병변장애를 가진 오지우씨는 19살이 되던 해 첫 시설에 들어가 31살이 되던 지난해 주거복지사업을 통해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 오지우
오지우 씨는 시설에 들어가기 전까지 인천에서 살았다. 지우 씨는 선천성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다. 지우 씨가 어렸을 적, 어머니는 아무리 어려워도 학교를 꼭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부모님의 이혼으로 지우 씨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학교를 그만두고 처음 시설에 가게 된 19살 때까지, 지우 씨는 줄곧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당시, 친구이자 세상과의 소통 창구가 되어준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다른 수많은 또래친구들처럼 지우 씨도 텔레비전을 통해 만난 아이돌그룹 HOT의 팬이 되었다. 강타를 특히 좋아했던 지우 씨는 강타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지우 씨에게는 오빠와 두 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집에서 차별대우 받는 것에 속상한 적이 많다. “막내여동생과는 어렸을 때 많이 놀았어요. 형제들과는 지금도 막내여동생과만 연락해요. 서로 바쁘고 지금은 자주 못하지만. 시설에 있을 때도 맨날 연락하고. 시설에서는 식구들이 오려면 뭐라도 사와야 하니까 자주 못 왔는데,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은 만나는 것 같아요.”
19살 때 처음 가게 된 시설은 경기도 포천에 있었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있는 시설이었고 갓난아이들도 있었다. 성인들은 중증이 아닌 사람들이 많았고, 성인 여자 중 뇌병변 장애는 지우 씨가 유일했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나를 어려워했어요. 힘드니까 구박도 많이 했고. 왜냐면 저 같은 경우 케어하기가 힘들었거든요. 제가 19살까지 집에만 있었으니까 사회에 대한 게 없잖아요. 시설에 처음 들어갔는데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도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말 못하고 그냥 선생님만 쳐다봤어요. 선생님들이 빤히 쳐다본다고 모라고 그러는 거예요. 저는 그냥 화장실 가고 싶은데 이야길 못해서 빤히 쳐다본 건데.”
“함께 거주하는 정신지체 장애인 중 나랑 동갑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는 어린아이도 봐주고 하니까 선생들이 그 애를 예뻐했어요. 생활인 위주가 아니라 선생님들 위주의 시설이어서 생활인의 말을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았어요.”
선생님들은 지우 씨에게 밥 먹을 때 숟가락을 직접 이용하게 하거나 텔레비전 리모컨을 사용하도록 했다. 리모컨 버튼은 누른다 해도 숟가락은 밥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해야하니 팔이 올라가지 않는 지우 씨에게는 가혹한 강요였다.
“처음에 물리치료사가 같이 도와줬어요. 밥도 먹여주고. 물리치료사는 내 몸 상태를 알잖아요. 그런데 개인사정으로 그만두었어요. 물리치료사가 먹여줄 땐 괜찮았는데 관두니까 혼자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밥을 바닥에 흘릴 거 아니에요. 자꾸 바닥에 흘리니까 선생님들이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냐고 구박도 하고, 화장실에서 먹으라고 했어요. 그렇게 밥을 한 달인가 두 달을 굶으니까 어지러운 거예요. 나중에는 우유를 하나씩 줬어요. 그런데 다 오바이트를 하고. 어지러워 죽는 줄 알았어요.”
시설 안에서 학교에 다니다
그러다 지우 씨는 시설을 옮기게 된다. 새로운 시설은 경기도 이천에 있었는데, 허가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곳이었다. 이 시설에서 지우 씨는 학교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해서 대학가고 싶다고 계속 말했더니 공부를 시켜줬어요. 초등학교 나왔으니까 중학교 과정부터 시작했어요. 거기는 시설이잖아요. 그래서 왔다갔다는 못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선생님이 와서 몇 명을 같이 모아 공부했어요. 나만 가르치는 게 아니니까 전 과목은 다 못하고 필수과목 위주로.
중학교 선생님이 잘해줬었어요. 많이 가르쳐주려고 하셨고, 그나마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졸업할 때 표창장도 받고 상도 네 개나 받았어요. 고1까지는 시설에서 있다가 2학년 올라갈 무렵에 자립했어요.”
오지우 씨가 자립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은 2008년 시설에 성교육을 왔던 강사로부터 자립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게 되면서이다.
“언니들이 내가 있던 시설에 교육하러 왔어요. 성교육인가. 그걸 듣다가 자립생활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자립생활에 대해 듣기 전에도 시설에서 나가고 싶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더 나가고 싶어졌어요.”
꼭 ‘자립’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설’을 나가고 싶다는 소망은 계속 지우 씨의 마음속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설 안에서는 선생님도 자주 바뀌고, 시설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고, 자기가 싫어도 규칙에 따라야 하고 그런 게 싫었어요. 선생님들도 대부분 나를 안 좋아했고. 나를 예뻐했던 선생님이 있었지만 그만두고 계속 바뀌고 오해 받고 그런 것들이 싫었어요.”
이천의 시설은 지우 씨가 전에 머물던 시설과 달리 “선생님 위주가 아니라 생활인 위주”였고 이런 점이 처음엔 좋았다고 한다. 게다가 학교 공부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바뀌면서 문제가 생겼다. 새로 온 선생님들로부터 오해를 많이 받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선생님에 대해 다른 사람이 무어라 뒷말을 한 것이 지우 씨가 한 것으로 오인되어 미움을 받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시설을 나가고 싶었던 지우 씨에게 ‘자립’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가뭄에 만난 단비처럼 반가운 일이었다.
“시설 밖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들도 있었고. 나가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는데, 이제 방법을 찾게 되었던 거예요.”
하지만 시설을 나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시설에서는 지우 씨가 자립을 준비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 때 시설에서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는데, 누구랑 메시지 하는지 검사하고. 그래서 메시지를 바로바로 삭제하고. 언니들과 맨날 연락했어요. 그런데 시설에서 연락한 걸 알아서 못하게 해서 한동안 안하고 그랬어요.”
‘하늘을 날 것 같던’ 자립생활을 시작하고
▲ "하늘을 날 것 같았어요" 시설에서 나오던 날의 느낌을 지우 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자유로운 삶'을 찾았기 때문이다. ©일다
오지우 씨는 작년 3월 15일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 날짜를 정확히 외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 것 같았어요.”
달리 표현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지우 씨가 느낀 것은 말 그대로 ‘자유’였다. 그 날의 벅찬 기분은 아직도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지우 씨의 눈을 반짝이게 만든다.
“시설에서는 2월에 나와서 집에 며칠 있었어요. 원장님이 부모님께 전화해서 저를 집에 데리고 가라고 해서 그날 아빠 집에 갔어요. 아빠는 ‘그 좋은 시설 놔두고 왜 그러냐’고 자립을 반대했죠. 엄마도 반대했구요.”
처음에 반대하던 어머니는 자립을 지원하던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지우 씨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지우 씨는 자립생활을 시작한 후 시설에서 시작한 학교공부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마치고 자립한 지우 씨는 일반 고등학교에 2학년으로 입학해 지금은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지우 씨의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의 학교로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이 함께 있는 곳이다. 통학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 한다. 차로는 15분 거리이다.
“통학하려면 진짜 힘들어요. 아침에 7시에 나가야 하고. 처음 두 달은 걸어서 다녔는데, 그 때 어떻게 다녔나 싶어요.”
중학교 때 초등학교 과정을 듣다보니 고등학교 일반반의 수업은 솔직히 너무 어렵다. 담임선생님이 둘이라 “아파서 가끔 못갈 때 양쪽으로 전화해야 하”는 게 불편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학교생활은 정말 재미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친구들 때문이다.
“반 친구들이 되게 잘해줘요. 학교가기 전에 걱정했어요. 애들이 안 좋게 대할까봐. 생각 외로 애들이 잘해줬어요. 2학년 때 ‘굿프렌드’(비장애학생이 장애학생의 활동보조를 함께 해주는 또래도우미 제도)가 있었어요. 2명이 있었는데 3학년 올라가면서 그 중 1명이 같은 반이 되었어요. 3학년에는 ‘굿프렌드’가 세 명이 된 거죠.
전동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손을 고정시키고 가잖아요. 학교에 도착하면 애들이 그걸 풀어주고, 특수학급으로 이동할 때 전동휠체어 운전도 해줘요. 친구들끼리 ‘누가 운전 제일 잘 하냐’고 묻고 서로 내가 제일 잘한다고 그래요. 정말 웃겨요. 하하하!”
누가 전동휠체어 운전을 제일 잘하나 겨루는 지우 씨의 유쾌한 ‘굿프렌드’들처럼 지우 씨도 참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지우 씨에게 재미난 학교친구들이 생긴 게 왠지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자석처럼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이에게 끌리지만, 동시에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이들끼리 모인다.
특수반에서도 지우 씨는 ‘인기짱’이다. “특수반에 1, 2학년 애들이 나를 되게 좋아해요. 와서 꼭 인사해요.”
학교 친구들은 지우 씨가 서른두 살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학교에서 다른 애들은 내가 자기들보다 한두 살 많은 줄 알아요.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했대요.” 그래도 열한 살을 더 어리게 봐준다니! 지우 씨가 동안이라 그런가 봐요, 라고 하니 “열일곱까지 봐주기도 한다”며 웃는다. 지우 씨의 너스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작년에 초등학생까지 봐준 사람도 있어요.” 나와 지우 씨, 그리고 활동보조선생님까지 세 사람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방안가득 터져나간다.
▲ 올해 장애인 콜택시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서울대공원에 가는 행사에 초청이 되었다. © 오지우
요즘 지우 씨는 ‘커피가게’를 운영하는 휴대폰 게임에 푹 빠져 있다. 지우 씨의 커피 가게는 나날이 번창중이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안 나고 그래서 좋아요. 올 여름에 너무 더워서 에어콘 쐬러 극장에 갔는데 사주보는 사람이 있길래 사주를 봤어요. 저더러 나중에 사업가가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지금 빠져있는 게임도 커피 가게 운영인가보다, 농담을 던졌다. 지우 씨는 자기와 함께 일하는 활동보조가 4명이니, 이미 종업원 네 명을 둔 사장님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활동보조선생님께는 “사장님께 잘 하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또 다시 지우 씨의 방은 우리 세 사람의 웃음소리로 한 가득이 된다.
“내가 신기가 있는 것 같아요. 될 것 같은 예감이 들면 되요. 제가 장콜(장애인 콜택시)을 1년 넘게 탔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기사 아줌마가 있는데, 오늘 아침 그 기사분이 와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 분이 온 거에요. 장콜 기사분 삼백 몇 명 중에 그 기사분이 와준 거죠. 그리고 얼마 전에는 장콜 이용자가 십만 명인데 그 중에 스무 명을 뽑아서 10월 9일에 서울대공원에 가는 행사에 당첨되었어요. 내 생각에는 기사님들이 데리고 가고 싶은 사람을 뽑는 건데 그 기사님이 날 뽑아준 게 아닐까 해요.”
‘사는 맛’이 있는 삶을 살다
고등학교 3학년인 지우 씨는 한국복지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원서를 냈다. 원하던 심리학과는 나중에 공부를 더 해서 가려고 한다.
자립을 시작할 무렵 지우 씨는 자립이후의 계획과 소망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우선, 제대로 고등학교 전 과정을 배우고 싶고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어요. 대학에서 심리학을 배우고 싶고 17살 때부터 꿈이었던 심리학을 전공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계획한 대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준비하고 있으니, 한 과정 한 과정을 차근히 밝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자립생활은 즐겁고 보람차기만 하지 않다. 사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더 많다. 오지우 씨는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거의 5일 가량을 입원해야 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에 받힌 것이다. 사고가 난 이튿날 일어나보니 등과 허리가 아파왔다. 보험접수를 위해 사고 운전자에게 연락을 했는데, 연락을 받지 않았다.
몸이 아프니까 일단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일주일간 입원처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운전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경찰서로 전화했더니 직접 와서 신고해야 한다고 해, 지우씨는 활동보조와 함께 아픈 몸을 이끌고 경찰서로 향했다. 그런데 경찰서는 2층에 자리한데다가 엘리베이터마저도 없었다.
경찰서에서 전화하니 그제야 운전자와 연락이 되었다. 그러나 사고를 낸 운전자는 전동휠체어가 자동차가 아니고 보행자라고 우겼다. “결국에 그분이 경찰한테 자동차라고 접수는 해줬는데 접수번호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정말 접수번호만 찍어서 보냈더라구요. 어떤 회사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경찰에서 그 사람에게 전화했더니 운전자가 교회 목사인 거예요.”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의 왜곡된 인식만 힘든 건 아니다. 무엇보다 자립생활을 어렵게 하는 것은 사회적인 지원체계가 아직 많이 모자라다는 점이다.
“제가 수급자잖아요. 심사를 6개월에 한 번씩 하는데 이번에 쪽지가 날아왔어요. 부모님 때문에 수급자에서 탈락될 수가 있다고. 그것도 꼭 시험기간에만 일이 터져요. 일 년에 두 번이잖아요. 공부에도 방해받고. 의견서도 제출하고 아빠가 재산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간신히 탈락은 면했어요.”
지우 씨는 얼마 전에 활동보조와 함께 동해안의 정동진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렇게 멀리 여행간 건 거의 처음이다. “예전부터 해돋이가 보고 싶었어요. 그 전날 밤 11시 기차를 타고 갔는데, 내가 갔을 때 날씨도 되게 좋았고 해 뜨는 것도 잘 보였어요.”
▲ 자립생활 후 활동보조와 함께 떠났던 정동진 여행에서. © 오지우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소원도 빌었다. “예쁘고 좋은 일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고... 집도 생겼으면 좋겠고... 사람들에게 상담도 해주고.”
소원을 말하는 지우 씨의 얼굴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지우 씨에게 행복이란 뭘까요?”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곧 이런 답을 들려줬다.
“지금처럼 하고 싶은 거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는 거요”
‘행복’을 ‘지금’의 삶에서 찾고 있는 지우 씨에게 자립생활의 선배로서, 자립을 꿈꾸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자립생활에는 분명히 안 좋은 것도 있고, 힘든 것도 있어요. 시설에서 생각한 것보다 힘들겠지만, 나와서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고 그러면 그게 사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시설보다는 되게 만족감이 있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자립하면 만족감이 있으니까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박희정)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독립언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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