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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범죄 처벌 법안, ‘이의 있습니다!’

젠더와 입법포럼에서 피해자 보호 요구



한 여성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한다. 회사 동료들과 일주일에 한번 가는 맛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파스타를 먹는다. 퇴근 후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며 맥주를 한 잔 마시고, 혼자 귀가한다. 화면이 조금 옆으로 돌아가면, 이 모든 걸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남성이 보인다.


이런 장면을 ‘애절한 사랑’이나 ‘여자를 지켜주는 듬직한 남자’라고 포장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이게 썸도 데이트도 아닌 ‘스토킹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스토킹 범죄’는 현행법에 따르면 경범죄에 불과하다. 폭력, 추행, 주거침입 등 ‘진짜’ 범죄 행위가 동반되지 않는 한, 고소한다 해도 1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뿐이다. 멀리서 지켜보고 연락을 반복하는 등의 스토킹 행위가 언뜻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피해자는 굉장히 큰 고통과 공포를 느낀다. 또 이 범죄가 폭력, 심지어 살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한 여성운동계는 오랫동안 스토킹 범죄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동안 몇 번이나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요구해 왔던 이들 덕분에 마침내 올해 5월, 법무부는 “스토킹을 범죄로 명확히 규정하고 가해자 처벌 및 그 절차에 관한 특례와 스토킹 범죄 피해자에 대한 각종 보호 절차를 마련하여, 범죄 발생 초기 단계에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스토킹이 더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여 건강한 사회 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을 밝히며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 예고했다.


정부가 스토킹 범죄 처벌법안을 내놓은 상황을 축하할 만도 한데, 지난 3일 열린 제21차 젠더와 입법포럼은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이의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변호사회, 국회의원 남인순, 정춘숙, 김삼화 의원실이 공동 주최한 포럼에선 “이런 법안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논의를 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냉정한 비판이 쏟아졌다.


‘생활통제’에서 ‘살인’까지…스토킹 범죄의 특징


스토킹 범죄 피해자들을 상담하며 법안 제정에 목소리를 높여온 한국여성의전화 측에서 먼저 발표를 시작했다. 상담 통계를 토대로 스토킹 범죄의 특징을 분석하여, 지금의 법안이 얼마나 현실의 피해 실태를 반영하고 있는지 짚어냈다.


▶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 성별과 성별 피해 비율 (출처: 제21차 젠더와 입법포럼 중 ‘현장 사례를 통해 본 스토킹범죄 처벌법 입법 방향’ 발표 자료)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사례 분석 결과, 피해자의 절대 다수는 여성”이라고 밝히며 “스토킹은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과 같이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해자의 대부분은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 (전)애인이 51.9%이 가장 높았고 (전)배우자, 직장 관계자가 그 뒤를 이었다”고 보고하며, “가정폭력 가해자에 의한 스토킹 피해는 ‘가족’이기 때문에 ‘스토킹’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스토킹 범죄는 그 유형이 다양하다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으로 꼽았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감시, 미행, 반복적 연락, 공포감 조성 등을 비롯한 정서적 폭력, 갈취 및 지불 강요(데이트비용 청구 등)의 경제적 폭력, 불법 촬영, 성관계 강요 및 강간 등 성적 폭력, 신체적 폭력까지. 생활 통제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죄 유형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피해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 친구 등 주변인들까지도 피해를 입기도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①스토킹 행위와 피해자에 대한 ‘정의가 협소’하다


실제 상담 사례를 통해 스토킹 범죄의 특징을 파악한 것과 다르게 “이번 법안에서의 스토킹범죄 행위 및 피해자에 대한 정의가 협소하다”고, 송란희 사무처장은 비판했다.


▶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에서 정의하는 ‘스토킹범죄’ (출처: 법무부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사귄지 두 달 만에 헤어지고 전화번호를 차단했지만 알고 보니 전화가 계속 오고 있었고, 가해자의 SNS 계정에선 여전히 피해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두고 있어서 계속 사귀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경우”나, “예전 직장 동료인 가해자가 계속 좋다고 연락을 하며 하루에 200번도 문자를 보내고 선물을 보내고 여행을 예약하고 취소한 후 취소 수수료를 내어 놓으라고 하는 경우” 등 “스토킹 행위는 굉장히 ‘창의적’인데 몇 가지 행위로 제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스토킹 범죄를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 형성을 침해하는 일련의 행위로 규정하고 그 행위를 나열하되, 반드시 보충적 조항을 포함하여 정의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다양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피해자를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만 한정하고 있는 건, 주변인의 피해를 간과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정부 법안의 주요 내용과 쟁점을 해석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법안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라는 요건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피해자가 어떤 의사를 표하였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어 입증의 부담이 피해자 측으로 전가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가해자에게 (상대의) 동의를 얻었는지를 묻는 방식인 ‘상대방의 동의 없는’이라는 규정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②‘진행 중인’ 스토킹 범죄여야 보호받을 수 있다?


김정혜 연구위원이 설명한 스토킹 처벌법안의 피해자 보호 조치는 다음과 같다. 스토킹이 신고된 경우 경찰은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데 현장으로 출동해 스토킹 행위 제지 및 향후 스토킹 행위 중단을 통보하고, △스토킹 행위자와 피해자 분리 및 범죄 수사를 하면서 피해자에게 잠정 조치 요청 등의 절차 안내, △피해자의 동의가 있을 경우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로 인도 조치를 하게 된다. 김 연구위원은 “문제는 ‘진행 중인’ 스토킹 범죄의 신고를 받은 경우여야 응급조치가 가능하다는 점”을 한계로 짚었다.


▶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에서 피해자 보호 조치. (출처: 제21차 젠더와 입법포럼 중 ‘스토킹처벌 법안의 주요 내용 및 쟁점’ 발표 자료)


“어떤 스토킹은 행위가 지속되는 도중에 신고하기 어려울 수 있고,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말이나 음향의 도달과 같이 전송과 동시에 도달이 완료되는 경우는 ‘진행 중’에 신고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고려해 응급조치의 범위를 진행 중인 범죄로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토킹 범죄는 신고 이후 경찰의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스토킹이 오히려 강화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제정법안에서 서면 경고과 접근 금지만을 잠정 조치로 두고 있어 피해자 보호에 한계가 있으므로, (가해자를) ‘경찰관서의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유치’하는 방법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③반의사불벌, 피해자에게 부담 가중시켜


뿐만 아니라 김정혜 연구위원은 “제정법안에서 스토킹 범죄의 기본 조항을 반의사불벌죄, 즉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건 문제적”이라고 말했다.


“스토킹 범죄가 정의 상 이미 ‘상대방의 의사에 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처벌 단계에서 상대방의 의사를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처벌이 피해자의 선택에 좌우되는 게 피해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토킹 범죄의 특징 중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가해자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부분은 법안이 피해자의 심리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심할 뿐 아니라 스토킹 범죄가 어떻게 구성되고 행해지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난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도 “유독 ‘처벌’ 관련해서만 피해자의 의사를 묻는 건, 오히려 가해자의 처벌 여부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한 조항을 삭제하라고 주장했다.


▶ <제21차 젠더와 입법포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이의 있습니다”>가 진행 중인 현장. ⓒ일다(박주연)


실제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


패널들도 법안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김현아 변호사는 일본과 독일 사례를 언급하며 “스토킹에 대한 규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괴롭힘(Harassment)이나 쫓아다님(Pursuit)와 같이 개방적 개념을 사용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스토킹 범죄가 반복성과 지속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범죄보다도 재범 장비를 위한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교육 수강 및 이수명령을 ‘의무적 병과’로 규정하는 것”의 필요성을 말했다.


원민경 변호사는 “피해자 보호”를 강조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조치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또한 스토킹 범죄의 경우 특히 사법기관 신고가 행위자에게 모욕감이나 굴욕감을 일으켜 ‘보복’이 일어나는 빈도가 다른 범죄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하여, 피해자의 신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해자보호 명령제도(피해자가 수사 기관을 거치지 않고 범죄 행위자로부터의 보호 명령을 법원에 청구하는 것)를 마련해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토킹 범죄를 전담할 경찰 인력 마련과 교육”에 대한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란 상담팀장은 “성폭력이나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사법기관에서 피해자가 ‘2차피해’를 입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과 전담 인력을 어떻게 마련하고 배치할 예정인지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또한 “스토킹 범죄 또한 ‘위력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목적부터 수상한 법안’, ‘새로 만드는 게 낫다’


원민경 변호사는 “그동안 발의 된 법안과 논의들을 고려한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런 법안이라면 새로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부, 여성가족부, 경찰청에서 보도자료를 내며 “현장단체, 여성계 등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였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면피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선영 선임연구위원은 “이 법안의 목적을 보셨느냐? ‘범죄 발생 초기 단계에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스토킹이 더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여 건강한 사회 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한다’라고 나와 있는데 ‘건강한 사회 질서의 확립’이 과연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게 정말 목적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꼬집었다.


많은 여성들이 ‘나는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라며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높였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다. 스토킹범죄 처벌법안은 그런 요구들에 대한 응답이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들의 요구 사항은 명확하다. 많은 여성들이 “우리가 말한다. 이제 들어라”라고 외쳤다. 정부는 마지못해 법안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현장의 실태와 목소리를 반영하여 스토킹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대로 법안을 내어 놓아야 할 것이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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