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4) 빗물의 진실을 아시나요?
언젠가부터 난 더 이상 비를 맞지 않는다. 갑작스레 비가 쏟아진다고 해도, 마침 근처에 우산을 팔고 있다면, 얼른 우산부터 구입한다.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을 알려오면, 길을 나설 때 비가 오지 않더라도 일단 접이우산을 가방에 꼭 챙긴다.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면 한여름이 아닌 한, 우산을 물론이요, 비옷까지 챙겨 입고 길을 나선다. 그리고 난 생각한다. ‘난 젖는 게 싫어.’
산성비의 공포
비에 젖어 축축해진 옷이 납처럼 무거워지고, 신발 속으로 스며든 물 때문에 양말이 질척거릴 때... 젖는 것은 정말 불쾌한 일이다. 그런데 사실 먼 과거 속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항상 비에 젖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많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다고 해서, 학교까지 우산을 가지고 달려오신 적은 없었다. 그때마다 좋건 싫건 비를 잔뜩 맞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폭우가 내린 날이라면,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 그대로였다. 젖는 게 싫었지만, 속옷까지 물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 비를 맞는 일이 꼭 나쁘지만도 않았다. 날씨가 춥지만 않다면, 옷 입은 채 물 속에 풍덩 뛰어든 듯한 색다른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으니까.
가끔은 손에 우산을 쥔 채로도 그냥 비를 맞기도 했다. 친구들이 곁에 있을 때는 비 맞는 일이 무슨 즐거운 놀이 같았다. 깔깔깔 웃으며, 입고 있는 옷을 내리는 비에 내맡기며 내달리는 일이 재미나기까지 했다. 그랬다.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즐거움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은, 잘 생각해 보면, 분명 ‘산성비’ 때문이었다. ‘대기오염이 심해 비가 산성이니 맞아서는 안 된다. 그냥 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져.’ 누가 언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비에 젖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난 비에 젖는 것을 싫어하지’ 하는 생각으로 굳어 버렸다. ‘비에 젖기 싫어함’이 어느덧 나의 강력한 자기정체성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누가 물어 보아도 비에 젖는 걸 싫어한다. 절대로 비에 젖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 바로 나다.
땅에 닿기 전 빗물,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물
올 봄처럼 비가 자주 내리게 되면 외출하기가 괴롭다. 우산, 비옷, 모자 등 미리 챙겨 다녀야 할 물건이 많아져서 가방도 몸도 무거워지니까. 도서관 가는 발걸음도 무겁기만 하다. 빗속을 뚫고 밖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담이 된다. 불과 5,6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도서관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게 비를 새롭게, 아니 제대로 보도록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 있다. 바로 한무영씨의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그물코, 2009)이다. ‘산성비로 대머리된 사람을 찾습니다’란 소제목이 내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산성비로 대머리된 사람을 본 적은 없지, 하지만 머리가 많이 빠지게 되면 그것도 문제 아닌가?’하는 의문이 뒤따랐다.
아무튼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산성비를 오해해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샴푸나 린스도 산도가 3.5이고, 흔히 마시는 주스는 ph 3.0, 그리고 청량음료인 콜라는 심지어 ph 2.5인데, 대기 오염된 빗물의 산도는 3에서 4정도이니, 비 맞아 대머리 될까봐, 머리 빠질까봐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샴푸나 린스부터 던져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처럼 주스도 콜라도 안마시고, 샴푸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주장은 그다지 나를 사로잡지 못한다. 어쨌거나 대기오염물질을 안고 있는 비는 산도가 높지 않은가.
깨끗한 빗물도 ph 5.6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의하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 바로 땅에 닫기 전의 빗물이다.
“자연계에서 물의 순환을 살펴보면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것은 빗물입니다. 그렇다면 이 빗물을 아무런 처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마실 수 있는 걸까요? 정답부터 말하자면, 맞습니다. 그냥 마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빗물은 태양에 의해 증발한 순수한 증류수이기 때문입니다.” (한무영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빗물은 태어날 때부터 착하다’ 중에서)
그는 당당히 주장한다. ‘빗물은 태어날 때부터 착하다’고. 오염된 대기 속의 빗물이 미심쩍으면, 비가 20분 동안 내린 후의 빗물을 이용하면 된다고 친절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때는 대기오염물질도 씻겨 내려간 상태이고, 빗물의 산도도 약해진다면서. 그리고 빗물 산도를 너무 염려하지 말란다.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을 받으면, 이미 알칼리화되어 ph 7에서 8.5로 변해있으니까. 산도를 떨어뜨리는 데는 빗물을 받아 2,3일 두는 방법도 있다고 덧붙인다. 그때 산도는 7에서 7.5가 된다나.
한 마디로 빗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는 것이다. 마실 물로도 쓰고, 생활용수로도 쓰고. 수돗물만 해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빗물은 게다가 공짜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된 말도 있는데, 빗물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 착한 물이기까지 하니 빗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바보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빗물, 어떻게 받지?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물을 그냥 쳐다만 보면서 내버리고 있는 셈이다.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빗물을 받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당장 아파트에 빗물탱크를 설치하자고 해 보았자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주민들의 동의 얻기도 쉬운 일은 아닐 테고.’ 그래도 내 고민에 대한 답에 근접해 가는 듯하다. 아파트 베란다에 빗물탱크를 설치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 귀가 솔깃해졌다.
나도 빗물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일까? 이제부터라도 정보를 구해봐야겠다.
무엇보다도 그 전에 착한 빗물에 대한 오해부터 떨쳐내야겠다. 그동안 나쁜 물이라면서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본 비. 역시나 편견은 충분하지 못한 정보, 잘못된 정보로부터 빚어지는 것이 맞다. 가끔 비를 맞더라도 몸을 움츠릴 필요도 없고, 어쩌면 어린 시절처럼 비를 맞는 낭만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비에 젖는 것이 싫다’는 이미 굳어진 나의 정체성이 쉽사리 바뀌진 않겠지만 말이다. (이경신) ⓒ일다 www.ildaro.com 바로가기
(일다 핫이슈) [4대강 르포] “강이 사라지고 있다” | 다문화가정 자녀만 교육하면 '다문화교육'?
언젠가부터 난 더 이상 비를 맞지 않는다. 갑작스레 비가 쏟아진다고 해도, 마침 근처에 우산을 팔고 있다면, 얼른 우산부터 구입한다.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을 알려오면, 길을 나설 때 비가 오지 않더라도 일단 접이우산을 가방에 꼭 챙긴다.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면 한여름이 아닌 한, 우산을 물론이요, 비옷까지 챙겨 입고 길을 나선다. 그리고 난 생각한다. ‘난 젖는 게 싫어.’
산성비의 공포
유엔 물의 날 로고 ©www.unwater.org
아이들이 많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다고 해서, 학교까지 우산을 가지고 달려오신 적은 없었다. 그때마다 좋건 싫건 비를 잔뜩 맞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폭우가 내린 날이라면,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 그대로였다. 젖는 게 싫었지만, 속옷까지 물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 비를 맞는 일이 꼭 나쁘지만도 않았다. 날씨가 춥지만 않다면, 옷 입은 채 물 속에 풍덩 뛰어든 듯한 색다른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으니까.
가끔은 손에 우산을 쥔 채로도 그냥 비를 맞기도 했다. 친구들이 곁에 있을 때는 비 맞는 일이 무슨 즐거운 놀이 같았다. 깔깔깔 웃으며, 입고 있는 옷을 내리는 비에 내맡기며 내달리는 일이 재미나기까지 했다. 그랬다.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즐거움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은, 잘 생각해 보면, 분명 ‘산성비’ 때문이었다. ‘대기오염이 심해 비가 산성이니 맞아서는 안 된다. 그냥 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져.’ 누가 언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비에 젖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난 비에 젖는 것을 싫어하지’ 하는 생각으로 굳어 버렸다. ‘비에 젖기 싫어함’이 어느덧 나의 강력한 자기정체성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누가 물어 보아도 비에 젖는 걸 싫어한다. 절대로 비에 젖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 바로 나다.
땅에 닿기 전 빗물,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물
올 봄처럼 비가 자주 내리게 되면 외출하기가 괴롭다. 우산, 비옷, 모자 등 미리 챙겨 다녀야 할 물건이 많아져서 가방도 몸도 무거워지니까. 도서관 가는 발걸음도 무겁기만 하다. 빗속을 뚫고 밖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담이 된다. 불과 5,6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도서관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게 비를 새롭게, 아니 제대로 보도록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 있다. 바로 한무영씨의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그물코, 2009)이다. ‘산성비로 대머리된 사람을 찾습니다’란 소제목이 내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산성비로 대머리된 사람을 본 적은 없지, 하지만 머리가 많이 빠지게 되면 그것도 문제 아닌가?’하는 의문이 뒤따랐다.
아무튼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산성비를 오해해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샴푸나 린스도 산도가 3.5이고, 흔히 마시는 주스는 ph 3.0, 그리고 청량음료인 콜라는 심지어 ph 2.5인데, 대기 오염된 빗물의 산도는 3에서 4정도이니, 비 맞아 대머리 될까봐, 머리 빠질까봐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샴푸나 린스부터 던져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처럼 주스도 콜라도 안마시고, 샴푸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주장은 그다지 나를 사로잡지 못한다. 어쨌거나 대기오염물질을 안고 있는 비는 산도가 높지 않은가.
깨끗한 빗물도 ph 5.6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의하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 바로 땅에 닫기 전의 빗물이다.
“자연계에서 물의 순환을 살펴보면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것은 빗물입니다. 그렇다면 이 빗물을 아무런 처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마실 수 있는 걸까요? 정답부터 말하자면, 맞습니다. 그냥 마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빗물은 태양에 의해 증발한 순수한 증류수이기 때문입니다.” (한무영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빗물은 태어날 때부터 착하다’ 중에서)
그는 당당히 주장한다. ‘빗물은 태어날 때부터 착하다’고. 오염된 대기 속의 빗물이 미심쩍으면, 비가 20분 동안 내린 후의 빗물을 이용하면 된다고 친절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때는 대기오염물질도 씻겨 내려간 상태이고, 빗물의 산도도 약해진다면서. 그리고 빗물 산도를 너무 염려하지 말란다.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을 받으면, 이미 알칼리화되어 ph 7에서 8.5로 변해있으니까. 산도를 떨어뜨리는 데는 빗물을 받아 2,3일 두는 방법도 있다고 덧붙인다. 그때 산도는 7에서 7.5가 된다나.
한 마디로 빗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는 것이다. 마실 물로도 쓰고, 생활용수로도 쓰고. 수돗물만 해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빗물은 게다가 공짜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된 말도 있는데, 빗물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 착한 물이기까지 하니 빗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바보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빗물, 어떻게 받지?
물을 저장하는 소녀 ©un.org
나도 빗물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일까? 이제부터라도 정보를 구해봐야겠다.
무엇보다도 그 전에 착한 빗물에 대한 오해부터 떨쳐내야겠다. 그동안 나쁜 물이라면서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본 비. 역시나 편견은 충분하지 못한 정보, 잘못된 정보로부터 빚어지는 것이 맞다. 가끔 비를 맞더라도 몸을 움츠릴 필요도 없고, 어쩌면 어린 시절처럼 비를 맞는 낭만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비에 젖는 것이 싫다’는 이미 굳어진 나의 정체성이 쉽사리 바뀌진 않겠지만 말이다. (이경신) ⓒ일다 www.ildaro.com 바로가기
(일다 핫이슈) [4대강 르포] “강이 사라지고 있다” | 다문화가정 자녀만 교육하면 '다문화교육'?
'경험으로 말하다 > 이경신의 죽음연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립적인 여성을 키우는 자연 (0) | 2010.05.13 |
---|---|
도시 나무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며 (0) | 2010.05.05 |
따사로운 봄날, 야생초 즐기기 (0) | 2010.05.02 |
부자 되세요? 나누는 사람이 되세요 (1) | 2010.04.13 |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 (0) | 2010.04.12 |
‘일’이 나를 만든다 (0) | 2010.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