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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8) <야생초 편지>가 안겨 준 생각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면, 도서관 종합열람실의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어본다. ‘이곳에는 어떤 책이 살고 있나?’하며 책 하나하나에 눈길을 준다.
이렇게 서가에서 직접 책을 살펴보는 일은 인터넷 도서검색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후자는 원하는 책을 손쉽게 찾도록 도와주지만, 전자는 그야말로 숨겨진 보물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과 같다. 미처 알지 못해 읽지 못했지만, 눈에만 들어오면 반드시 펼쳐들고 싶을 책이 빽빽한 서가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좋은 책과의 우연한 만남,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요즘 나는 일기, 여행기, 서간문 등이 잔뜩 모여 있는 곳을 배회하는 중이다. 마침 <야생초 편지>(황대권 글그림, 도솔. 2002)라는 책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책 제목이다. 똑같은 책이 두 권씩이나 꽂혀있는 데다 책 표면이 낡은 걸 보니, 많은 사람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책인가 보다, 하며 책을 꺼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느낌표 도서’란다.
단아한 책표지도 마음에 들고, 책장을 가볍게 훑어보다 간간이 눈에 띄는 야생초 삽화들, 게다가 교도소에서 보낸 편지라니 흥미가 발동한다. 무엇보다도 간첩누명에 억울한 옥살이 13년을 살았는데, 그곳에서 야생초 전문가가 되었다는 저자의 이력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난 보물을 건져 올린 모양이다. 뒷북일 수도 있지만, 아무려면 어떠리. 뒤늦게라도 보물찾기 행렬에 끼어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운이 좋은가.
어디서나 야생초는 자란다
강제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폐쇄된 공간 속에 갇힌다는 것, 감히 상상조차하기 어렵다. 저자는 감옥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야생초를 만나 몸과 마음을 살리고 또 다른 세계, 생명의 세계로 자신을 열어놓는다. 나는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면서, 그가 어렵사리 야생초를 구해다 놓고 밭을 만들어 심고 돌보고 먹고, 그리고 사색하는 과정을 천천히 뒤따라간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주어진 자연의 혜택을 느긋하게 즐기는 데 시간을 더 쏟았을 것이다. 물론 풍요로운 생활환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귀중한 '옥중동지'가 아닐 수 없다.> (“안동교소도에서 II” 1994년 6월 1일자 편지)
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지척에 풀이 넘쳐나는 하천과 산이 있다. 그곳에 가면 온갖 야생초들이 군락을 이루며 어우러져 살아간다. 하지만 계절마다 피고 지는 야생화들, 겨울에는 누렇게 시들다가도 봄만 오면 다시 생생하게 땅을 뚫고 자라나는 풀들을 경탄하며 바라볼 따름이다. 무심히 그 곁을 지나가기도 일쑤다. 그리고 보니 우리 동네 아파트 화단에도, 도서관을 오가는 길에도 조금만 고개를 땅으로 돌리면 어김없이 야생초를 만나게 된다. 그토록 제초제와 농약을 뿌려대는데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풀들은 또 빳빳하게 고개를 내민다. 정말 대단하다.
강인한 생명력에 감동하고 작고 어여쁜 꽃들을 넋 놓고 바라보긴 하지만, 사실 야생초를 캐먹을 생각은 않는다. 아니,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는 동네에서 쑥을 캔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市에)서 맹독성 농약을 뿌려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화들짝 놀라 봄나물 캐기는 완전히 접었다. 하지만 봄만 되면 어김없이 동네길이나 공원에서 쑥을 캐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띤다. 그들도 나처럼 농약범벅인 도시의 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농약의 위험성을 깨닫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봄날을 즐기면서 습관적으로 나물을 캐는 것일까?
야생초 맛을 아시나요?
얼마 전 시골에 정착한 이들을 만나러 갔을 때였다. 이웃 주민도 포함해서 다함께 동네 주변 풀밭과 동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 달래, 냉이, 뽀리뱅이, 지칭개, 질경이, 민들레, 벼룩나물, 머위, 쇠별꽃, 갈퀴나물 등. 그날 저녁, 우리가 캔 나물 가운데, 생으로 먹기에 부담 없는 것들, 민들레, 질경이, 벼룩나물, 쇠별꽃, 달래가 샐러드로 식탁에 올랐다.
벼룩나물과 쇠별꽃의 흰 꽃들과 마침 산에 만발해 있어 몇 송이 채취해 온 진달래꽃을 곁들이니, 눈에는 아름답고 코에는 향긋한, 그리고 혀에는 상큼한, 지금껏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기막힌 샐러드가 탄생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듯하다. 확실히 야생초는 일반채소와 달리 그 맛과 향이 강렬했다. 게다가 영양까지 풍부하니, 훌륭한 먹을거리임에 틀림없다.
<...... 문명이란 그 풀 냄새를 점차로 지워 없앤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야채가 그것이지. 야생의 풀냄새를 제거하고 인간의 미각-작위로서의 문명의 변천에 따라 함께 변하여 온-에 맞추어 특정한 맛만을 선택하여 육종, 발전시킨 것이 오늘의 야채이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얄팍한 입맛을 위하여 원래의 야채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영양소와 맛을 제거해 버리고 특정의 맛과 영양소만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래 놓고 요리할 땐 그 위에 갖은 양념을 다 뿌리고 또 영양을 보충한다고 각종 비타민제를 따로 먹고 있다. 우습지도 않니? 이것이 문명이다.> (“안동교도소에서 III” 1994년 9월 26일자 편지)
야생초를 처음 만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린 시절 동네의 고랑 근처나 빈터에서였다. 강아지풀, 토끼풀을 포함한 모든 야생초가 내게는 오직 ‘풀’이었다. 무료한 어린 시절 그토록 즐거운 놀이감이 되어준 풀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 도시여서인지, 안타깝게도 그 풀이 무엇인지 내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풀이 무성한 곳은 도로나 건물터로 도시적 외관을 갖추기 전 방치된 공간이었고, 언젠가 개발이 시작되면 풀은 마땅히 모두 내쫓기고 제거되어야 하는 불법거주 ‘잡초’였을 뿐이었다.
아무튼 풀을 꺾어 반지, 우산, 빗자루 등을 만들며 놀이에 빠져 있는 동안, 바로 옆 큰 고랑에서는 염색공장이 쉴 새 없이 토해내는 노랑, 빨강, 갖가지 알록달록한 색깔의 폐수가 당당하고 거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풀색보다 현란한 물 색깔이 더더욱 풀숲을 초라해 보이게 했다.
야생초의 존재가치를 무시해온 도시에서 살아온 탓일 것이다. 내게도 야생초는 그다지 쓸모없는 무엇으로 은연중에 내면화되었나 보다. 난 오래도록 잡초는 야채와는 명백히 달라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산나물이나 들나물이 밥상에 오를 때도 있었지만, 그것과 잡초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쑥, 냉이, 달래, 씀바귀도 잡초이고, 취나물, 곰취도 잡초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다시 말해서 도시의 길바닥에서 자라는 잡초나 우리가 나물이라고 부르면서 먹는 들나물, 산나물이 모두 야생초 가족이라는 정리된 생각을 갖는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가 들나물, 산나물과 구분해 놓는 야채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이런 잡초를 우리 입맛에 맞게 먹기 좋게 개량한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것 중에 먹을 수 있는 풀이 상상 이상으로 넘쳐난다는 것을 안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입 안에 쌉쌀한 맛을 그득하게 채워주던 씀바귀와 뽀리뱅이는 올 봄에야 처음 맛보았다. 그 쓴 맛이 지금껏 먹어 본 그 어떤 야채의 맛보다 생생해서 한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공짜로 주는 것을 대하는 자세
아직도 난 야생초들을 세세하게 잘 구분하지는 못한다. 잘 아는 사람들이 알려준 풀, 책을 붙잡고 눈길을 맞추면서 공부해서 알게 된 풀 이외에는 이것이 저것인지, 저것이 이것인지 내 눈에는 어찌나 닮게들 생겼는지 마구 혼동하고 있다. 여전히 내게는 이름 모를 풀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그리고 여전히 먹을거리 보다는 볼거리, 연구거리로 즐긴다.
콘크리트 바닥 갈라진 틈새에 가냘픈 잎사귀를 내밀고 있는 쑥에게 감탄하고, 해마다 봄이면 잊지 않고 파랗고 노랗고 하아얀, 작고 귀여운 꽃들을 안겨다주는 야생초에 감격한다. 도시에도 풀은 자란다. 농약이 두려워 맛보지는 못하더라도 감상의 기쁨과 발견의 즐거움까지 빼앗길 수는 없다.
그나마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높은 산의 야생초는 상업적인 전문꾼들의 싹쓸이로 오히려 씨가 말라가고 있다니, 안타깝다. 자연이 우리에게 공짜로 주는 것은 자연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금 취하되, 다른 이들과 조금씩 함께 나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본다. 공짜라는 이유로 돈벌이를 삼는 전문꾼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몸 수고 없이, 또 그것이 어떤 경로로 얻어진 것이건 돈만 주면 뭐든 취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경박한 도시소비자들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야생초들을 알아가면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생명을 오염, 파괴시키고 있는지 절절히 깨닫는다.
오랜만에 낮 시간에 실내를 벗어나 하천가로 바람을 쐬러갔다. 곳곳에 야생화들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봄까치와 꽃마리의 파아란 꽃들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찬찬히 살펴보면 너무 작아 눈에 띌 듯 말 듯 꽃봉오리들이 풀밭 곳곳에 숨어 있다. 변덕스럽고 서늘한 봄날에도 꽃들은 피고, 또 피고 있었다.
적어도 갇혀 있지 않는 우리는 이 봄날 따사로운 햇살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야생초를 즐길 자유가 있지 않겠나. 난 봄까치 한 뿌리를 캐서 베란다 화분에 옮겨놓았다. 짬이 나면 한번 수채물감으로 그려 볼 생각이다. [필자의 다른 글] 빗물의 진실을 아시나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면, 도서관 종합열람실의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어본다. ‘이곳에는 어떤 책이 살고 있나?’하며 책 하나하나에 눈길을 준다.
이렇게 서가에서 직접 책을 살펴보는 일은 인터넷 도서검색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후자는 원하는 책을 손쉽게 찾도록 도와주지만, 전자는 그야말로 숨겨진 보물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과 같다. 미처 알지 못해 읽지 못했지만, 눈에만 들어오면 반드시 펼쳐들고 싶을 책이 빽빽한 서가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좋은 책과의 우연한 만남,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요즘 나는 일기, 여행기, 서간문 등이 잔뜩 모여 있는 곳을 배회하는 중이다. 마침 <야생초 편지>(황대권 글그림, 도솔. 2002)라는 책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책 제목이다. 똑같은 책이 두 권씩이나 꽂혀있는 데다 책 표면이 낡은 걸 보니, 많은 사람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책인가 보다, 하며 책을 꺼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느낌표 도서’란다.
단아한 책표지도 마음에 들고, 책장을 가볍게 훑어보다 간간이 눈에 띄는 야생초 삽화들, 게다가 교도소에서 보낸 편지라니 흥미가 발동한다. 무엇보다도 간첩누명에 억울한 옥살이 13년을 살았는데, 그곳에서 야생초 전문가가 되었다는 저자의 이력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난 보물을 건져 올린 모양이다. 뒷북일 수도 있지만, 아무려면 어떠리. 뒤늦게라도 보물찾기 행렬에 끼어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운이 좋은가.
어디서나 야생초는 자란다
강제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폐쇄된 공간 속에 갇힌다는 것, 감히 상상조차하기 어렵다. 저자는 감옥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야생초를 만나 몸과 마음을 살리고 또 다른 세계, 생명의 세계로 자신을 열어놓는다. 나는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면서, 그가 어렵사리 야생초를 구해다 놓고 밭을 만들어 심고 돌보고 먹고, 그리고 사색하는 과정을 천천히 뒤따라간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주어진 자연의 혜택을 느긋하게 즐기는 데 시간을 더 쏟았을 것이다. 물론 풍요로운 생활환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귀중한 '옥중동지'가 아닐 수 없다.> (“안동교소도에서 II” 1994년 6월 1일자 편지)
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지척에 풀이 넘쳐나는 하천과 산이 있다. 그곳에 가면 온갖 야생초들이 군락을 이루며 어우러져 살아간다. 하지만 계절마다 피고 지는 야생화들, 겨울에는 누렇게 시들다가도 봄만 오면 다시 생생하게 땅을 뚫고 자라나는 풀들을 경탄하며 바라볼 따름이다. 무심히 그 곁을 지나가기도 일쑤다. 그리고 보니 우리 동네 아파트 화단에도, 도서관을 오가는 길에도 조금만 고개를 땅으로 돌리면 어김없이 야생초를 만나게 된다. 그토록 제초제와 농약을 뿌려대는데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풀들은 또 빳빳하게 고개를 내민다. 정말 대단하다.
강인한 생명력에 감동하고 작고 어여쁜 꽃들을 넋 놓고 바라보긴 하지만, 사실 야생초를 캐먹을 생각은 않는다. 아니,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는 동네에서 쑥을 캔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市에)서 맹독성 농약을 뿌려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화들짝 놀라 봄나물 캐기는 완전히 접었다. 하지만 봄만 되면 어김없이 동네길이나 공원에서 쑥을 캐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띤다. 그들도 나처럼 농약범벅인 도시의 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농약의 위험성을 깨닫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봄날을 즐기면서 습관적으로 나물을 캐는 것일까?
야생초 맛을 아시나요?
얼마 전 시골에 정착한 이들을 만나러 갔을 때였다. 이웃 주민도 포함해서 다함께 동네 주변 풀밭과 동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 달래, 냉이, 뽀리뱅이, 지칭개, 질경이, 민들레, 벼룩나물, 머위, 쇠별꽃, 갈퀴나물 등. 그날 저녁, 우리가 캔 나물 가운데, 생으로 먹기에 부담 없는 것들, 민들레, 질경이, 벼룩나물, 쇠별꽃, 달래가 샐러드로 식탁에 올랐다.
벼룩나물과 쇠별꽃의 흰 꽃들과 마침 산에 만발해 있어 몇 송이 채취해 온 진달래꽃을 곁들이니, 눈에는 아름답고 코에는 향긋한, 그리고 혀에는 상큼한, 지금껏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기막힌 샐러드가 탄생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듯하다. 확실히 야생초는 일반채소와 달리 그 맛과 향이 강렬했다. 게다가 영양까지 풍부하니, 훌륭한 먹을거리임에 틀림없다.
<...... 문명이란 그 풀 냄새를 점차로 지워 없앤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야채가 그것이지. 야생의 풀냄새를 제거하고 인간의 미각-작위로서의 문명의 변천에 따라 함께 변하여 온-에 맞추어 특정한 맛만을 선택하여 육종, 발전시킨 것이 오늘의 야채이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얄팍한 입맛을 위하여 원래의 야채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영양소와 맛을 제거해 버리고 특정의 맛과 영양소만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래 놓고 요리할 땐 그 위에 갖은 양념을 다 뿌리고 또 영양을 보충한다고 각종 비타민제를 따로 먹고 있다. 우습지도 않니? 이것이 문명이다.> (“안동교도소에서 III” 1994년 9월 26일자 편지)
야생초를 처음 만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린 시절 동네의 고랑 근처나 빈터에서였다. 강아지풀, 토끼풀을 포함한 모든 야생초가 내게는 오직 ‘풀’이었다. 무료한 어린 시절 그토록 즐거운 놀이감이 되어준 풀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 도시여서인지, 안타깝게도 그 풀이 무엇인지 내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풀이 무성한 곳은 도로나 건물터로 도시적 외관을 갖추기 전 방치된 공간이었고, 언젠가 개발이 시작되면 풀은 마땅히 모두 내쫓기고 제거되어야 하는 불법거주 ‘잡초’였을 뿐이었다.
아무튼 풀을 꺾어 반지, 우산, 빗자루 등을 만들며 놀이에 빠져 있는 동안, 바로 옆 큰 고랑에서는 염색공장이 쉴 새 없이 토해내는 노랑, 빨강, 갖가지 알록달록한 색깔의 폐수가 당당하고 거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풀색보다 현란한 물 색깔이 더더욱 풀숲을 초라해 보이게 했다.
야생초의 존재가치를 무시해온 도시에서 살아온 탓일 것이다. 내게도 야생초는 그다지 쓸모없는 무엇으로 은연중에 내면화되었나 보다. 난 오래도록 잡초는 야채와는 명백히 달라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산나물이나 들나물이 밥상에 오를 때도 있었지만, 그것과 잡초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쑥, 냉이, 달래, 씀바귀도 잡초이고, 취나물, 곰취도 잡초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다시 말해서 도시의 길바닥에서 자라는 잡초나 우리가 나물이라고 부르면서 먹는 들나물, 산나물이 모두 야생초 가족이라는 정리된 생각을 갖는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가 들나물, 산나물과 구분해 놓는 야채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이런 잡초를 우리 입맛에 맞게 먹기 좋게 개량한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것 중에 먹을 수 있는 풀이 상상 이상으로 넘쳐난다는 것을 안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입 안에 쌉쌀한 맛을 그득하게 채워주던 씀바귀와 뽀리뱅이는 올 봄에야 처음 맛보았다. 그 쓴 맛이 지금껏 먹어 본 그 어떤 야채의 맛보다 생생해서 한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공짜로 주는 것을 대하는 자세
아직도 난 야생초들을 세세하게 잘 구분하지는 못한다. 잘 아는 사람들이 알려준 풀, 책을 붙잡고 눈길을 맞추면서 공부해서 알게 된 풀 이외에는 이것이 저것인지, 저것이 이것인지 내 눈에는 어찌나 닮게들 생겼는지 마구 혼동하고 있다. 여전히 내게는 이름 모를 풀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그리고 여전히 먹을거리 보다는 볼거리, 연구거리로 즐긴다.
콘크리트 바닥 갈라진 틈새에 가냘픈 잎사귀를 내밀고 있는 쑥에게 감탄하고, 해마다 봄이면 잊지 않고 파랗고 노랗고 하아얀, 작고 귀여운 꽃들을 안겨다주는 야생초에 감격한다. 도시에도 풀은 자란다. 농약이 두려워 맛보지는 못하더라도 감상의 기쁨과 발견의 즐거움까지 빼앗길 수는 없다.
그나마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높은 산의 야생초는 상업적인 전문꾼들의 싹쓸이로 오히려 씨가 말라가고 있다니, 안타깝다. 자연이 우리에게 공짜로 주는 것은 자연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금 취하되, 다른 이들과 조금씩 함께 나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본다. 공짜라는 이유로 돈벌이를 삼는 전문꾼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몸 수고 없이, 또 그것이 어떤 경로로 얻어진 것이건 돈만 주면 뭐든 취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경박한 도시소비자들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야생초들을 알아가면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생명을 오염, 파괴시키고 있는지 절절히 깨닫는다.
오랜만에 낮 시간에 실내를 벗어나 하천가로 바람을 쐬러갔다. 곳곳에 야생화들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봄까치와 꽃마리의 파아란 꽃들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찬찬히 살펴보면 너무 작아 눈에 띌 듯 말 듯 꽃봉오리들이 풀밭 곳곳에 숨어 있다. 변덕스럽고 서늘한 봄날에도 꽃들은 피고, 또 피고 있었다.
적어도 갇혀 있지 않는 우리는 이 봄날 따사로운 햇살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야생초를 즐길 자유가 있지 않겠나. 난 봄까치 한 뿌리를 캐서 베란다 화분에 옮겨놓았다. 짬이 나면 한번 수채물감으로 그려 볼 생각이다. [필자의 다른 글] 빗물의 진실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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