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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조로가 만난 사람] 장애인의 날에 만난 ‘작업치료사’ 서율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겨울이 꼬리를 감추고 꽃눈이 내리는 늦은 저녁. 작업치료사라는 조금은 생소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친구 서율을 만났다.
 
그녀는 처음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 손사래를 치며 ‘정말 별거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에 대해 말했다. 살아온 이야기와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 나누면 된다고 설득하자, “나보다 실력이 있고, 더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라며 부끄러운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업치료사가 하는 일은?
 
이렇게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어서 서율의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나 역시 작업치료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작업치료라는 것이 넓은 의미를 포함하는 거라서 딱 이거다 설명하기는 어려워. 내가 생각하는 작업치료는 어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나 불편을 해결해줘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예를 들어 뇌졸중에 걸려 편마비(몸의 한 쪽이 마비된 것)가 온 사람이 있으면, 마비된 쪽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거나, 아니면 마비가 되지 않은 쪽을 불편한 쪽을 대신해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나는 주로 여러 원인들로 인해 발달이 늦은 아이들을 치료하는 일을 해. 그 아이들의 늦춰진 부분들이 발달될 수 있도록 돕는 거지.”
 
서율은 갸우뚱하고 있는 내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줄넘기를 못하는 아이가 있다고 치자. 그 아이가 줄넘기를 못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야. 하체근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균형 감각이 떨어지거나 몸의 양측이 통합 또는 분리가 되지 않아서 못할 수도 있어. 그럼 나는 이런 여러 추측 중에 진짜 원인을 찾아내서, 그 아이가 줄넘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야. 줄넘기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구르기나 달리기, 제자리 뛰기, 블록 넘기 등을 시켜보면서 종국에는 줄넘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지.”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 중에는 ‘아이가 손에 힘이 없어서 글씨를 못 써요, 그림을 못 그려요, 가위질을 못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말 아이가 손에 힘이 없어서 못할 수도 있지만, 많은 아이들이 손이 아니라 ‘시지각’(눈으로 보고 뇌로 인지할 수 있는 상태)에 문제가 있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아. 그 아이들이 가위로 네모를 정확하게 자르려면 시지각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지.”
 
시지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어떤 과제를 주느냐고 물었더니, 서율은 “그네를 많이 타야지!” 라고 답했다.
 
“그네타기 같이 전정감각과 고유수용성 감각들을 강화시키고 향상시키는 활동들을 많이 해야 돼. 블록 넘기, 스쿠터 보드 타기, 이런 것들 말이야.”
 
“시립병원인데, 민간으로 전환한다는 얘기가 있어”
 
특히 오늘은 서율이 마음속으로 많이 예뻐하는 아이가 온 날이라고 했다. 그 아이에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달라고 청했더니, 얘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서율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친구는 개별 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집단치료를 하기 때문에, 6명 아이들이 있는 집단이면 이 친구에게 신경 쓸 수 있는 부분이 6분의 1로 줄어들 수도 있잖아. 그래서 만난 시간이나 관계 형성을 하는 시간은 짧은 편이야. 하지만 그 친구가 굉장히 귀엽기 때문에 마냥 사랑스러워.”
 
이어서 서율은 사랑스럽다는 그 아이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저번에 스쿠터 보드를 타고 목표지점까지 갔다오는 것을 시켰는데, 보통 애들은 잘한다, 잘한다, 박수치고 이름 부르면서 응원해주면 좋아하잖아. 그런데 이 친구는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서 자기가 할 차례가 되면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응원하지 마, 응원 안 해요, 응원하지 마’ 이 말을 돌아올 때까지 계속 반복해. 끝나고 골인 지점에 들어오면 선생님한테 달려와 얼굴을 파묻고 진정을 한 다음에 자기 자리로 가. 부끄러워서.”
 
이 부끄럼 많은 귀여운 아이는 2시간 반씩 일주일에 두 번 서율이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화장실 가는 법이나 순서를 지키는 법 같은 일상생활을 배우고, 언어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감각통합치료도 함께 받는데, 서율은 그중 감각통합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 병원에서는 이렇게 통합치료를 할 수 있어서 좋아. 게다가 시립이라서 치료비가 다른 사설기관의 절반도 안 돼. 주변 병원이나 기관에서 치료비 좀 올리라며 불평을 내놓기도 하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치료를 받는 사람들 대부분 만족스러워해.”
 
서율은 이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요즘 시(市)에서 우리 병원을 민간으로 전환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어. 그렇게 되면 저소득층에 돌아가는 혜택이 없어져. 민간으로 전환한다는 건 수익창출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잖아. 그럼 치료비가 오를 테고, 가난한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질 거야. 물론 바우처 같은 제도가 있긴 하지만, 통합적인 치료를 받는 것과는 다르니까. 내 생각엔 정부가 복지 차원에서 끌어안고 가야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끊임없이 민간으로 바꾸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안타까워.”
 
운동을 하면 엔돌핀이 솟아나!
 
만약 이 병원을 그만두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떤 일을 할 거냐는 질문에, 서율은 작업치료와 특수체육을 접목한 통합치료를 제공하는 센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태권도 유단자에 운동처방사 자격증 소지자이기도 하다.

 
“난 운동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굉장히 높이 평가해. 몸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개선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둬. 비만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질병도 운동으로 어느 정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잖아. 일단 나부터도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헐떡거려도 마음이 즐거워져. 또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태권도뿐 아니라 검도도 4년 이상 수련했다는 그녀는, 요즘에는 자전거 타기나 등산 같이 혼자 할 수 있는 운동도 하고 싶다고 했다.
 
“전에는 여러 사람들과 같이 하는 운동이 재밌었는데, 지금은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은 시기인가봐.”
 
얼마 전 서율을 만났을 때, 집에서 결혼하라는 압박이 심하다는 얘기를 잠깐 들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부터 결혼압력을 받았다는 서율의 지금 상황이 어떤지 궁금했다.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녀에게 물어봤다.
 
“결혼? 난 극단적인 표현을 싫어해서 ‘결혼하지 않겠어요’ 라고 말하지는 않을래. 정말 내가 사랑하고 ‘이 사람이다!’ 싶으면 결혼할 수도 있어. 하지만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등 떠밀리듯 결혼하는 건 싫은 거야. 그리고 결혼제도에 문제점이 많다는 생각도 해. 혼인신고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혜택도 많고. 누가 얼마 전에 나한테 물어봤어. 요즘 왜 이렇게 낙태에 대해 난리냐고. 그래서 내가 ‘잘은 모르겠지만 국가가 돈이 없어서’ 일거라고 했지. ‘세금을 걷어야 되는데 애가 없잖아!’ 그랬더니 그 친구가 ‘엇, 새로운 시각이다!’ 이러더라고.”
 
서율은 자기가 생각하는 결혼에 대해서 말을 이어갔다.
 
“나는 내가 아닌 타인과 ‘부부’가 돼서 모든 일에 같이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부담스럽고 어려워. 그런데 결혼을 하면 타인에 대해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하고, 또 책임을 요구하게 되잖아. 솔직히 나는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누군가에 대해 의무감을 느껴야하는 것이 겁나.”
 
“내가 아픈 것은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아프면 나는 참 힘들어.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를 하게 되면 안 그러려고 해도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생기게 되고. 특히 어느 날 갑자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 사람을 잃게 된다면 그 상실감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뭐, 한 마디로 겁쟁이라는 거지.”
 
서율은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하지만, 사실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나부터도 서율이 하는 말에 공감이 되는데. 거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수록 복잡하고 고민만 늘어가는 결혼을 왜 자꾸 하라고만 할까?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렇다면 결혼의 압박에 대처하는 그녀만의 자세, 이런 게 있을까? 서율은 의지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독립할 수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듯하다고 말했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나이가 들면 ‘주관’이라는 것이 생겨서 정치적 견해도 달라지고, 삶의 방식도 달라지니까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독립이 참 중요한 것 같아. 잘은 모르겠지만 서른셋에서 서른다섯 살 사이에는 독립을 하지 않을까? 아직은 막연한 생각이지만 말이야.”
 
인터뷰 내내 부끄럼 많다던 그 예쁜 아이처럼 수줍게 웃기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나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짝 빛나는 눈에 열정이 보였던 서율. 그녀는 겸손하면서도 뚝심이 보이는 사람이다.
 
내가 서율을 처음 만났던 날, 내 눈에 비친 그녀는 ‘젠틀’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매너 좋고 센스 있는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자리가 춥지 않느냐며 실내 자리를 맡아주기도 하고, 망가진 샤프를 낑낑대며 고치거나 팔이 아프다고 쉬었다 하자는 나를 웃으면서 기다려주기도 했던 서율은 역시 친절한 사람이었다. 실력이 뛰어한 작업치료사는 아니지만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서율, 그녀의 성장이 기대된다.
 
인터뷰를 하고 며칠이 지난 뒤, 서율은 내 미니홈피에 우리가 인터뷰를 한 날이 ‘장애인의 날’이었다고 하며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단지 다를 뿐, 조금 다르고 조금 느린 것뿐입니다. 하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조금 느리다고 생각해주세요. 장애아를 가진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 그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고 말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치지 마시고 늘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데조로가 만난 사람]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스물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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