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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10) ‘인터뷰칼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동성애자 여성의 기록을 담은 ‘Over the rainbow’ 코너를 통해, 필자 박김수진님이 가족, 친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레즈비언 정체성에 관하여

[인터뷰 칼럼]의 열 번째 손님은 오랜 동료 에림님입니다. 칼럼 제목을 “7년 만의 재회”라고 붙였는데요. 에림님과 7년 만에 만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다>를 통해 그녀를 두번째로 소개한다는 의미입니다.

 
7년 전 2003년 11월에 에림님을 인터뷰했었지요. “인생은 다양한 선택이다”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로, 다재다능한 ‘타로점을 보는 레즈비언’ 에림님을 소개해드렸죠. 즐거운 인터뷰였고, 유쾌한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7년의 시간이 흐른 2010년 오늘, 다시 에림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60번의 맞선을 보고, 60번의 퇴짜를 놓은 경험이 있는 레즈비언 에림님의 사연을 전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공식 첫 번째 질문을 하였습니다. "에림님은 왜 레즈비언이에요?"
 
"왜긴요. 살다보니 그냥 이렇게 된 거죠. 20대에는 항상 나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그렇지 않네요. 20대에는 정체성 자각을 위해서 관련한 자료도 찾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저녁 7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정체성에 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그냥' 레즈비언으로 살아 왔고, 레즈비언으로 살고 싶고, 앞으로도 레즈비언으로 그냥 이대로 살고 싶으니까 '나는 그냥' 레즈비언이다라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냥'이라는 에림님의 말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습니다. 레즈비언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그냥'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깊은 말이 또 어디 있겠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이 왜 깊은 말이냐고 묻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저는 정체성 문제와 같이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들을 직접 체험하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해답을 찾은 이들이 표현하는 저 '그냥'이라는 말 속에는 '진한 체험'과 '깊은 사색'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그냥'이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 거죠.
 
제가 물었어요. "'그냥' 레즈비언다라고 설명했지만, 충분히 고민하고 공부했던 20대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30대 중반이 된 지금, 정체성 문제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살 수 있는 것이겠죠? 그래, 어때요? 30대 중반인 지금, 레즈비언으로서 살만한 건가요?"
 
"20대에 했던 그와 같은 고민의 과정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그 고민을 놓지 않고 있었을 것 같아요. 이제 정체성과 관련한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지만 이것이 곧 30대가 된 지금, 레즈비언으로서 살기가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오히려 문제들은 여전하지만, 내가 알아서 포기하는 부분들이 많아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어요."
 
교사로 살아가기
 
에림님은 학교 교사인데요, '커밍아웃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사들이 동성애자를 조소할 때도 대응하지 않고 지나칠 수 있기 위해, 스스로 알아서 포기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교사 일을 하려면 커밍아웃 문제에 매우 신중해야 하니까요.
 
구조적으로 동성애자들이 솔직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에 순응하면서 침묵하는 것을 선택하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레즈비언들이 그러하듯, 에림님 역시 이 점에서 순응과 포기를 선택함과 동시에 이러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는 얘기죠. 그렇습니다. 긍정적인 정체화가 끝이 아니죠. 또 다른 무수히 많은 문제들 앞에서는 이제 시작인 셈이죠.
 
"내가 레즈비언인 것을 내세우지만 않는다면 남들이 가진 것들을 나도 가질 수 있잖아요. 정체성 문제에 있어서 내가 어떻게 해야 사회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머물 수 있을지 계산하는 거예요. 그저 '아. 여기까지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 이상의 가능성, 시도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20대와는 확실히 다른 사고방식이죠."
 
레즈비언 교사의 학교생활이 궁금했습니다. "학교 사회가 굉장히 보수적이잖아요? 학교생활은 어떤가요?"
 
"처음에는 학교 성원 간에 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알고, 서로에게 관심이 많은 학교 분위기가 견디기 어렵더라고요. 행동 조심을 해야 했죠. 항상 감시받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알아서 내가 먼저 조심하는 부분들이 많았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분위기에도 익숙해지고,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생각들이 정리되더라고요. 요새는 학생들에게까지 은근 슬쩍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던지기도 해요. 여성의 인권문제를 얘기하면서 함께 언급하는 정도로 시작하고 있지만, 예전 같으면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죠.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10년의 맞선 이야기
 
이제, 오늘의 주제인 '에림님과 맞선'에 관해 말씀 드릴 시간이 되었네요. 2003년 11월에 했던 에림님의 인터뷰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필자의 황당한 질문을 받은 에림씨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간 부모님이 제안한 ‘결혼을 위한 선’은 최선을 다해 봐드렸으니까 당분간은 조금 조용할 것 같아요."]
 
2003년에 스물여덟 살이었던 에림님은 "그간 부모님이 제안한 '결혼을 위한 선'은 최선을 다해 봐드렸으니까" 당분간은 부모님이 맞선 제안을 하지 않으실 거라고 말했었죠. 7년이 지난 2010년. 서른다섯 살이 된 에림님의 사정이 좀 나아졌는지 물었습니다.
 
"스물여섯 살부터 맞선을 보기 시작했으니까 맞선을 보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어가네요. 지금까지 약 60여 명 정도의 남자와 만나 선을 본 것 같아요. 기억 속에서 아예 멀어진 경우도 있으니까 더 될 수도 있고요. '아빠 라인'을 끝내고, '엄마 라인'을 끝내고, '친인척 라인' 등을 끝낸 후, 이제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맞선을 보러 다니고 있어요."
 
에림님의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네요. 에림님의 부모님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우리 부모님은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한 분들이에요. 스스로의 노력으로 많은 것들을 이루었고, 정말 성실하게 살아오셨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들의 노력으로 많은 것들을 이루어낸 분들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명예'도 굉장히 중시하는 분들이에요. 타인들로부터 '괜찮은 집안'으로 평가받기를 원하시죠. 이를테면, 부모님은 타인들에게 "우리 아들은 이런 회사에 다니고 있어", "우리 사위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거죠. 그런데 저의 선택과 저의 존재가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상황인 거예요. '가족의 명예'가 곧 '개인의 명예'인 상황에서 온갖 명예를 다 가지게 된 부모님들이 원하는 것은 제가 '좋은 집안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에요. 물론,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가지고 계시겠죠. 문제는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의 기준과 제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데에 있죠."
 
에림님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죠. 레즈비언들만이 겪는 특수한 경험도 아니고 말입니다. 결혼제도에 속하는 문제는 '이성애자들이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영원한 관계를 약속했다'는 정도로 정리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아요. 원치 않아도 해야 하는 것처럼 되어있는 현실이고, 결혼해서 살아야 '정상적인 삶'이라는 가치관은 여전히 팽배해 있죠. 우리네 부모님 세대에서는 더욱 그렇죠.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로 에림님은 무려 10년의 시간 동안 부모님의 뜻에 열심히 부응해 왔군요. 대체, 에림님은 어떤 생각으로 이 오랜 시간동안 그 많은 맞선 자리에 나가 앉아 있다가 돌아오고는 했던 걸까요?
 
"20대 중반이었던 초기에는요. 엄마가 제가 레즈비언일 수 있다는 사실을 대충 눈치 채고 있던 상황이어서, 엄마를 안심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군말 없이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 후에는 나는 이미 레즈비언이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그렇게라도 해서 부모님의 마음을 안심시켜 드리고, 기대에 부응하는 자식의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어요. 이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이 마음으로 맞선 자리에 나가고 있어요."
 
결국, 모든 것은 에림님의 마음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림님은 레즈비언이고,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긍정적으로 정체화한 사람입니다. 에림님은 결혼하지 않을 것이며, 에림님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게 될 겁니다. 그러니 종국에 에림님의 부모님은 큰 실망을 하게 되겠죠. 그럼에도 부모님이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날까지 에림님은 부모님의 뜻에 따르는 척이라도 하면서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군요.
 
제 기억에 3년 전쯤 결혼문제로 에림님의 스트레스는 극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은퇴를 앞 둔 아빠가 "은퇴 전에 네가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며 결혼압박을 최고치로 올렸고, 엄마는 거의 매일 눈물로 "네가 어디가 부족한 사람이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잘못하면서 살았기에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며 결혼을 하라 호소하셨죠. 당시에 에림님은 거의 패닉 상태였습니다. 그 시기가 떠올라 에림님에게 결혼과 관련한 스트레스들은 여전한지 물었어요.
 
"스트레스가 왜 없겠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스트레스까지도 무시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간혹 이런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해요. 이제는 대부분 농담으로 넘길 수 있게 되었어요. 나름대로 지혜가 생긴 거죠."
 
네. 나름대로의 지혜가 생긴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어차피 지나가야 할 과정이라면 그 과정 동안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해야 하고, 그 하나의 방법이 그냥 무시하고 마는 일일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버틸 수 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워낙에 에림님이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잘 드러내거나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사실 여전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서른다섯 살의 에림님.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맞선을 보게 될까요?
 
"모르겠어요. 서른여섯이나 서른일곱 살이 되면 덜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덜해진다는 것이지, 부모님이 포기하시지는 않을 것 같아요. 비슷한 환경의 아는 언니들의 말을 들어보면 계속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영원히 멈추지 않더라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이 이제 안 맞을 테니, 생각이 다소 바뀔 수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은 들어요. 마흔 살이 넘으면 두 번째 결혼, 세 번째 결혼을 하는 남자들과 맞선을 봐야 할 테니, 부모님의 자존심이 상하시지 않을까요?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니 계속 그러실 가능성이 높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런 에림님에게 ‘애인’이 있습니다. 에림님이야 본인 가족의 일이고, 본인의 일이고, 본인이 선택한 일이지만, 곁에 있는 애인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일이 쉬울 것 같지 않았어요. 저 역시 애인이 선을 보러 웬 호텔 커피숍에 다녀오고 하는 일을 목격해야 했는데, 기분이 정말 끔찍하더라고요. 에림님 애인의 상황이 궁금했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불안해하고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저도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애인 주변에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던 언니들이 많았어요. 애인이 힘들어하면 그 언니들이 '나도 겪었던 일이야'라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해주니, 그 말들에서 힘을 얻더라고요. '내 애인만 맞선을 보러 다니는 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도 다 그 과정을 거치는 것이구나', '우리 둘 사이에 믿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맞선을 보러 나가도 되는 거다'라고 생각을 정리하더라고요. 성격이 워낙에 무던한 편이라 성격 덕에 그렇게 잘 정리해 준 것인지도 몰라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은 에림님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 선택도 존중해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분들은 쓸쓸한 마음을 가질 테고, 일부는 불쾌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싸우지 않고, 왜 당당하게 거부하지 않고, 그 오랜 시간 동안을 부모에게 끌려 다니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줄 압니다. 이에 관해 에림님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네. 비판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이나 비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의 선택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10년 동안 맞선 자리에 나가는 것을 거부하고, 가족이 파탄 나는 꼴을 보더라도 그 싸움의 결과가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알아요. 우리 집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요. 저는 우리 부모님을 아주 잘 알아요. 물론 가능하다면 정공법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말이죠. 저의 경우, 정공법 보다는 천천히 익숙해지고 부모님이 받아들일 시간을 충분하게 드리고 싶어요. 저는 지금 제가 그 기회를 부모님에게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회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조금씩 풀려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인터뷰 칼럼] 제목을 “60번의 맞선, 60번의 퇴짜”라고 붙였는데, '퇴짜'에 관한 내용은 없었어요. 하지만 왜 제목을 이렇게 지어 붙였는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60번의 맞선을 보는 동안 에림님이 온전하게 홀로 직면하고 극복해야 했던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겁니다. 레즈비언인 에림님은 60번이 아니라, 600번의 맞선을 봤다고 하더라도 600번의 퇴짜를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녀는 실제로 그리하였죠. 쓸쓸하고 아픈 일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기본적으로 에림님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에림님이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내왔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려운 과정이지만 끝까지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에림님이 끝까지, 본인이 원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마음관리 잘 하면서 현실의 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뿐입니다.
 
글을 작성하면서 이렇게 많은 한숨을 쉰 적도 없는 것 같네요. 게이커플이 이성애자인 여성들과 계약결혼을 하는 일은 영화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횟수에 차이는 있겠지만, 맞선 자리에 끌려 나가거나 자발적으로 걸어 나가는 동성애자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커밍아웃 이후 부모님으로부터 갖은 협박과 폭력에 시달리다 강제결혼 당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네들의 '선택'이 그저 '또 하나의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온전한 선택일 수 있는 것인가' 반문도 필요합니다. 한편으로 현실에 순응하는 태도가 또 다른 구조적인 억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것은 이 모든 상황이 오늘을 살고 있는 어떤 동성애자들에게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죠.
 
그네들에게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인 양 위장하고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제도결혼을 공고화할 뿐이다", "맞선을 보는 등 부모 비위 맞추는 행위를 중단하고 당당히 맞서 싸워라"고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실제로 그와 같은 선택을 하는 인구는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이 사실, 바로 이 사실을 우리가 아는 데에서부터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결국 모든 것은 에림님의 뜻대로 될 거예요. 에림님은 레즈비언이고,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긍정적으로 정체화한 사람입니다. 에림님은 결혼하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게 될 겁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에림님과 함께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저 시절을 어떻게 살아냈나 몰라' 하며 하하하 웃을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안팎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이들이 애쓰고 있으니 말이에요. 무엇보다 에림님 자신이 이토록 애쓰며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 그리 될 것입니다.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 7년전, 에림님 인터뷰 기사-> 인생은 다양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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