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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몸 이야기⑨ 이중의 태도 갖기
<장애여성의 몸 이야기> 연재는 외면하기, 직면하기, 비교하기, 수용하기, 강점 찾기, 표현하기 등 장애여성이 자신의 몸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타자화된 장애여성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장애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데 의의가 있다. – 편집자 주
시덥지 않은 ‘연애’라는 테마 "연애를 하고 싶어하지만 귀찮아하기도 하며, 꿀릴 게 없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회적 시선이나 불편함을 겪게 하기는 싫다는 점에서 나는 이중적이다." 악녀평크 ©촬영-황태원
날 잘 모르는, 그리고 장애인과 얘기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는 비장애인들은, 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연애 경험이 없거나 동정녀일 거라고들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가 없어서 너무 외롭기 때문에 비장애인 남자가 꼬시면 쉽게 넘어갈 거라고 생각한다.
막상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서른 전에 연애 몇 번 해봤지만 이젠 감정이 잘 안 생긴다는 이유로, 또 솔로가 편하다는 이유로 꿋꿋이 건어물녀의 길을 가고 있는 ‘평범한’ 여성일 뿐인데.
물론 내가 장애인이라는 특수 상황(?)도,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영향을 미치긴 한다. 연애나 결혼이라는 테마가 즐겁지만은 않은 나이이지만, 장애'여성'으로서 나의 몸을 생각하면 빠뜨릴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연애하지 않는 이유
서른 줄 건어물녀로서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건 물론 아니다. 로즈데이에 사람 많은 거리에서 누가 보기에도 굉장히 설레는 얼굴로 상대방을 기다리는 남자를 볼 때면,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뛰는 봄바람을 맞을 때면, 다정하게 손잡고 가는 연인들이 예뻐보일 때면 나도 연애하고 싶다.
몸의 욕구도 있을 것이다. 여자는 이맘때부터 성욕이 올라간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었는데, 글쎄 난 원래 성욕이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성욕을 채우려고 연애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몸이 원한다고 해서 별로 마음에 안드는 상대와 섹스를 할 생각 역시 없다.
하지만 연애를 안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귀찮음이다. 다른 많은 건어물녀들이 그렇듯. “어디야? 뭐해?” 같은 일상적인 전화를 받는 것도 귀찮고, 혼자 영화 보고 밥 먹는 데도 이미 익숙해진 지금, 새삼 누군가와 일부러 시간을 맞추고 기다리고 만나는 건 상당히 귀찮은 프로세스다. 이쯤에서 자기분석 끝.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역시 다른 많은 건어물녀들이 그렇듯, 내가 연애를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 생각한다. 특히 내 경우에는 장애여성이니까 당연히 힘들 거라고들 생각한다.
나의 친한 친구들조차, 자기 입장에서도 좋아하는 상대가 장애인이라면 연애도, 결혼도 힘들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함께 거리를 걷고 지하철을 탈 때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이미 겪어 봤으니까. 그 모든 불편이 장애여성인 나의 탓은 당연히 아니지만, 장애여성이 내가 엄연히 감당해야 할 몫으로 눈앞에 버티고 있는 거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장애여성은 너그러울 것 같다?
그럼 이쯤에서 상대방인 남성(나는 이성애자다)들의 의향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연애시장에서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는 단계랄까. 어쨌든 연애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으니 '장애'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장애'여성'으로서, 내 편견에 갇혀 관찰한 남성들의 모습은 이렇다:
1. 무조건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2. 그렇다고 예쁘기만 한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3. 시중에 백만 종 이상의 자위기구가 나와 있는데도, 자위기구 쓰는 것을 부끄러워한다(이건 남녀 공통이다).
4. 자위기구보단, 기회만 있다면 되도록 많은 여성들과 섹스를 나누고 싶어 한다(여기서 남녀의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비장애인 기준에는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장애여성은, 장애남성들에게도, 비장애남성들에게도 1지망이 아니다. 이름난 결혼정보회사에 장애여성이 신상정보를 과연 등록이나 할 수는 있을까? 물론 여기서 내가 말하는 건, 누군가 어떤 여성에게 반했는데 그녀가 장애여성인 경우라면 모를까(결혼해서 잘 사는 장애여성도 많고, 재밌게 연애 잘하는 장애여성도 많다), '장애여성'으로 뭉뚱그려 묶어 놓으면 연애나 결혼상대로 그다지 매력적인 집단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에서, 혹은 성욕 때문에 잠깐의 성적 도구는 될 수 있는 모양이다. 이건 극단적인 예이지만, 혼자 사는 장애여성이나 지적장애여성, 정신장애여성이 얼마나 성폭력에 취약한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장애여성은 섹스에서 더욱 너그러울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남성이 섹스를 잘하지 못해도 웃으면서 덮어줄 것 같아서 장애여성과의 섹스가 궁금하다는 사람도 나는 몇 봤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중적 태도
그런가 하면 필자처럼 '곱게' 자란 것 같은 장애여성은 성욕이 없어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당연히 연애에도 관심 없을 거라고들 생각한다. 그래서 서른이 넘었는데도 여성이 아니라 어린애 대하듯 편하게 대한다. 알고 보면 나도 섬세한 감정이 있는 여성인데. 잘 생긴 남자가 잘 대해 주면 마음 설렌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날 그저 어린애처럼 생각해서 잘해 준 거라면… 그때 내가 받을 상처는?
그러고 보면, 장애여성을 보는 사회의(라고 쓰고 "남성의"라고 읽는다) 태도도 이중적이지만, 연애나 결혼에 대한 나의 태도 역시 이중적이다. 연애를 하고 싶어 하지만 귀찮아하기도 하며, 장애여성이라고 꿀릴 게 없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장애인과 함께 있을 때 감당해야 할 사회적 시선이나 불편함 등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겪게 하기는 싫다. 성욕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장애가 있는 내 몸을 다 보이고 싶진 않다.
결국, 내 연애와 결혼은 내가 선택하는 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내 또래 비장애여성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복잡한 문제이지만 실마리는 있을 거라 믿어 본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내 몸과 내 감정에 당당한 장애인으로서 사랑이자 연애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거다. 나는 아직 젊고, 매력적이니까. (악녀평크) ⓒ일다 www.ildaro.com
[장애여성의 몸 시리즈] 21살 은혜의 춤 | 약점을 왜 굳이 드러냈을까?| 아픔과 불편을 견뎌준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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