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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로, 타국으로 이주해야 하는 ‘기후난민’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⑤  
 
기후변화로 인류는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동 기획으로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 기사를 연재한다. 필자 조보영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이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실제 체감하는 한국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기에 자신의 삶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더더욱 없다. 사실 그렇게 연관 짓기에는 기후변화는 너무 크고 개인 삶의 영역은 너무 작다. 우리는 그저 예전보다 조금 더 안 들어맞는 기상청의 일기 예보가 불편할 뿐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눈감아선 안 된다. 가뭄, 홍수, 태풍 등과 같은 천재지변과,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등의 이유로 땅을 잃는 경우는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피해이다. 그런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선진국들의 일련의 잘못된 해결책으로 인해, 오랜 조상의 땅을 떠나야 하는 가난한 나라의 이주민들도 있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삶과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지만, 어머니 지구 안에서 자원과 환경을 공유하며 사는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지금까지 고맙게도 그 상황을 피해왔고, 아직까지는 우리 삶의 문제로 닥치지 않았을 뿐이다.
 
방글라데시 등 국토 침수로 대규모 난민 발생
 
독일 환경단체 게르만와치(Germanwatch)는 지난 20년간 기후변화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국가로 방글라데시를 꼽았다. 방글라데시는 국토의 60%가 해발고도 5m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벵골만 연안의 쿠툽디아 섬은 해수면 상승으로 지난 100년 사이 무려 85% 면적이 줄었다. 또 벵골 만의 수온이 오르면서 방글라데시를 덮치는 사이클론의 횟수가 잦아졌다. 2007년에는 대홍수와 사이클론 시드르로 인해 농경지와 삼림이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그뿐 아니라 강가 주변 지역이 바닷물에 침식되어 주민들이 인근 도시로 이주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 기후변화에 관련한 과학적, 기술적 사실을 평가하고 국제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유엔 산하 정부간 협의체)는 2050년까지 방글라데시의 국토의 17%가 침수돼 약 2천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가 방글라데시 한 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올해 3월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발표한 <아태 지역 기후변화와 이주에 관한 대처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수백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보고서는 지난 2년 동안 자연재해로 거주지를 옮긴 아시아인은 4천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2010년 파키스탄에서는 대홍수로 3천180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 지금 세계는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출처- guardian.co.uk/environment/2011/sep/19/climate-migrants-asia-2010  
 

기후변화로 인해 직접적이고 심각한 피해를 받는 것이 섬나라들이다. 2001년 ‘국토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른 투발루의 경우, 해수면 상승으로 해발 2m의 국토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9개의 산호섬으로 이뤄진 투발루 국토 중 수도였던 푸나푸티섬과 사빌리빌리섬 등 현재 2개 섬이 침수된 상황이다. 투발루 정부는 1만2천명에 이르는 국민 전부를 인접 국가로 이주시키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신혼여행지로 익숙한 휴양지 몰디브 역시 해마다 해수면이 상승하여 이제는 1천3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몰디브 주민 38만6천여 명이 모두 ‘기후난민’이 될 상황에 처해 있다.
 
급증하는 기후난민, 누가 책임져줄 것인가
 

문제는 기후변화 피해로 인해 생겨난 난민들이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난민처럼 지원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투발루의 경우 호주 정부는 투발루 국민의 집단 이주를 거부했다. 뉴질랜드만 매년 75명씩, 뉴질랜드에 직장을 둔 건강한 45세 미만의 영어 사용자 이주를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점점 심각해지면서 이에 대한 지구적 행동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답을 찾는 노력은 미미한 상태이다.
 
매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대표단이 모이는 UN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열리는 시기에는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한 경고가 발표되고 있다.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15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는 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IOM)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자연재해로 2008년 2천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했고, 2050년 최대 10억 명 이상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이러 대규모 기후난민 발생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세계이주그룹(Global Migration Group, GMG)은 성명을 통해,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극심한 가뭄에 따른 이주민 발생을 우려하며, 각국 정부에 현행 법 체계와 정책 틀을 검토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각 국가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후변화를 막는다며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제안된 새로운 기술과 정책을 통해 끊임없이 또 다른 피해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기후-에너지 활동가이자 연구원으로 일해온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몇몇 아시아 지역을 다니며 기후변화가 어떻게 사회적 약자에게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지 목도하게 되었다. 그 중 가장 나를 아프게 했던 기억은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한 여성노동자였다. 그녀는 기후변화로 인한 천재지변이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의 터전은 다국적기업에게 넘어갔고, 그녀는 원치 않는 이주민이 되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각광을 받는 것이 화석연료 사용저감을 위한 바이오에너지 확대다. 유럽 국가들을 필두로, 각국은 화석연료 저감 목표를 달성하려고 바이오 연료를 확대하여 석유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바이오디젤의 대표적 원료인 팜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유럽의 다국적기업들은 무차별적으로 이 두 나라에 들어가 농민과 원주민들의 땅을 인수하고, 땅에 기대어 살던 소농들을 열악한 환경의 임노동자로 전락시켰다.
 
내가 만난 여성노동자의 이름은 ‘조’였고, 삶의 터전을 잃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그녀의 눈은 허공을 맴돌았다. 그녀와의 대화는 영어에서 인도네시아어로, 인도네시아어에서 다시 그 지역 말로 옮기고 옮겨졌다. 그녀의 말이 나에게 닿기도 전에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그녀에게서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이 감돌았다. 하지만 울 수는 없었다.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왠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낯선 연구원이 함부로 그녀의 고통을 공감한다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나는 어느새 한국에 돌아와 조금의 성찰의 시간을 점처럼 남긴 채 다시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문득문득 나의 삶과 그녀의 삶을 생각해본다. 나의 풍요로운 삶의 기반을 위해 그녀는 얼마나 아파야 하는가? 지구촌에서 분명 우리의 삶과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를 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나는 기후변화의 상당한 부분이 ‘인재’(人災)라는 말에 동의한다. 기후변화를 지금 당장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다. 다만 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고 새로운 터전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천재지변으로 일어나는 비참한 일들을 최소화 시켜주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다. 그리고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도 있는 ‘인재’를 더 이상 만들어내지 않도록 결의하고, 다른 선택을 찾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조보영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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