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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비’가 아프리카 여성의 삶을 파괴한다면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⑦ 지구온난화와 제3세계 여성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는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동 기획으로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 기사를 연재한다. 필자 이진우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이다. –[일다] www.ildaro.com 
 
우리에게 아프리카란 다큐멘터리 속 광활한 초원을 뛰어다니는 동물들과 대자연으로 각인되어 있다. 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바닥에 떨어진 식량난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 아프리카의 자연자원과 이를 둘러싼 민족 간 분쟁, 선진국 간의 갈등까지 떠올린다면 정말 국제 이슈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우리의 관심은 거기까지다. 아프리카는 지리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우리에게 너무 먼 나라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원조단체 후원을 통해 한달 치 식사를 마련해주고, 그들의 사진을 거실에 전시해놓고서 ‘인간은 도와야 하는 거야’라며 슬퍼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아프리카의 빈곤이, 전쟁이, 민족간 원한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이 아프리카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집단강간이 발생한 다르푸르 분쟁과 ‘지구온난화’

▲  “다르푸르 분점(分點)” (Darfur Equinox)  아제르바이잔 작가인 Mr. AYDIN JAFAROV의 작품.  우리가 풍요로운 소비 생활을 즐기는 사이, 다르푸르 등 제3세계에서는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꼬집고 있다. 

2000년대 중후반, 수단 다르푸르(Darfur) 지역에서는 21세기 최악의 ‘인종청소’ 사건이 일어났다. 인종간 갈등과 대립이 원인이라는 아프리카 내 분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상이었지만 처음부터 수위는 낮지 않았다.
 
195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수단은 건국 초기부터 80% 정도를 차지하는 아랍계와 20% 정도인 아프리카계가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종교였다. 수단 정부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애니미즘의 간격을 메우지 못하고 오히려 특정 종교의 교리를 법으로 정하면서 갈등을 조장했다. 여기에 남북 간의 커다란 경제적 격차로 인해 수단은 이미 2차례의 내전을 거쳐야만 했다.
 
수단 정부가 본격적으로 아랍화 정책을 펼치자 다르푸르에서도 아프리카계가 반군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수단 정부는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Janjaweed, ‘말등에 탄 악마’라는 의미)를 통해 반군 활동을 견제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다르푸르 역시 분쟁상태로 접어들었다. 분쟁은 정부의 힘을 입은 잔자위드의 압도적인 우세 양상을 나타냈다. 이 와중에 끔찍하다 못해 입에 담기도 어려운 폭력이 자행됐다.
 
수단 정부는 다르푸르 분쟁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6천여 명이라고 밝혔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유엔조차도 2003년부터 4년 동안 최소 40만여 명이 숨지고 250여 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수백, 수천 명의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강간을 당했다. ‘잔자위드’가 남자를 잡으면 아이고 어른이고 무조건 사살하고 여성들은 무조건 강간을 해서 아프리카계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식의 인종청소를 자행한 것이다. 그래서 다르푸르 분쟁은 21세기 가장 반인륜적이고 더러운 분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 외에도 좀더 근본적인 원인 한 가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르푸르 지역은 1983년~2005년의 제2차 수단 내전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은 지역이었다. 다르푸르가 전화(戰火)에 빠져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오랜 가뭄과 사막화의 영향이었다. 가뭄이 심해지자 먼저 타격을 받기 시작한 건 목축이 중심이던 아랍계 바가라 족이었다. 바가라 족이 물과 초목을 찾아 농경이 중심이었던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물을 둘러싸고 아랍계와 아프리카계 민족이 첨예한 대립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이 종교적 차이와 인종적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다르푸르 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즉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현상이 수백만 명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다르푸르 사태의 결정적 원인의 한 장이 된 것이다.
 
국경 분쟁의 증폭제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
 
다르푸르 분쟁 외에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분쟁이 일어나거나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차별을 받고 인권을 유린당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아프리카의 모범국으로 불리는 케냐와 우간다 국경 지역에서도 오랜 가뭄으로 물이 말라버려 각 부족의 민병대 간에 총을 앞세운 분쟁이 왕왕 일어나고 있다.
 
에티오피아와 에티오피아에서 독립한 에리트리아 역시 국경선 분쟁이 전쟁으로 커지면서 수만 명이 사망한 일이 있었는데, 이 역시 강수량과 혹독한 가뭄으로 인해 촉발되기 시작한 갈등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와중에 여성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지구온난화가 없었더라면 그런 범죄가 과연 일어났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다. 선진국들이 지구가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그로 인해 기후변화 취약국들이 심대한 타격을 입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사태가 과연 일어났을까.
 
혹자는 너무 결과론적인 유추고, 다른 요인들도 있는데 기후변화 문제로 답을 몰아가는 건 옳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의견에 동감한다고 하더라도 기후변화가 갈등을 증폭시키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세계 9위 온실가스 배출량 기록한 우리의 책임
 
기후변화가 전쟁의 원인이 된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2009년 영국의 국제분쟁연구소(International Alert)은 기후변화로 인해 머지않아 46개국 27억 명의 사람들이 무력분쟁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엔개발계획(UNDP)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국제적 분쟁을 우려하면서, 기후변화 취약국 상당수가 군사적 갈등 고위험 지역이거나 정치적 갈등이 위험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기후변화가 지금 당장에는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나비효과처럼 전세계적인 참상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무섭지만 슬픈 경고의 목소리인 것이다.

▲ 국제분쟁연구소가 2009년에 발표한 ‘기후변화로 인한 국제 갈등 지역’.  빨간색이 군사적 갈등 고위험지역군, 주황색이 정치적 갈등 고위험지역군. 

특히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는 여성들에게 더욱 위협적이다. 다르푸르에서 아픔을 겪어야 했던 여성들은 단편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전기와 같이 현대적인 에너지원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나 인도 일부 등은 여성들이 요리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 점점 더 먼 길을 걸어 물과 땔감을 구해와야 한다. 그 길은 짐승들의 습격과 남성들의 성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안전하게 돌아온다 하더라도, 환기가 되지 않는 집에서 수 시간 동안 나무를 지피며 유해가스에 노출되어 건강권을 위협받는다.
 
온실가스 배출에 가장 책임이 없는 제3세계 여성들이 가장 큰 위험과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를 단순히 환경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실가스 배출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부지불식의 가해자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 기후변화가 발생하는 이유나 피해는 사회구조적 문제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듣는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진단이지만, 그래도 기후변화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케냐에 갔을 때 길거리 휴지통 여기저기에 나붙은 “No, more rape”라고 적힌 포스터를 본 것만으로 함뿍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생각이 난다. 명확한 인과관계? 적어도 세계 9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록하고 있고,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을 넘어선 우리라면 그에 걸맞은 책임이 있다는 건 인간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아프리카 고통과 그 전화 속 여성들의 삶이 난도질 당하는 상황을 한 달 3만원의 후원과 맞바꾸는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할 때다. 물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후원하는 게 매우 어렵고 훌륭한 결정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러나 후원자가 되기 이전에 가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시급히.   (이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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