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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시대, 우리의 일자리는?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⑨ 경제시스템의 정의로운 전환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는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동 기획으로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 기사를 연재한다. 필자 이강준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이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최근 정부는 전력부족을 핑계로 수명을 다한 고리 핵발전소1호기를 재가동했다. 사진은 2005년 1월 7일 환경운동가들이 인근 해상에서 신고리 핵발전소 건설 반대 시위를 진행하는 모습. ©녹색연합
따듯해진 울산 앞 바다까지 먹이를 좆아 온 수천마리의 돌고래떼, 한강과 낙동강을 뒤덮은 녹조, 극심한 가뭄과 폭염, 폭우 등 기후변화 문제는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난 6월의 극심한 가뭄은 104년만의 일이라 하고, 올 여름의 폭염으로 가축 100만 마리 이상이 폐사했으며, 고온으로 인한 일사병과 열사병 등으로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력피크와 정전사태에 대한 우려가 주요 뉴스를 장식하더니, 전력부족을 핑계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고리핵발전소 1호기를 은근슬쩍 재가동했다. 그렇게 끝없는 폭염이 지속될듯하더니 느닷없이 집중호우로 도로가 잠겼다는 뉴스로 바뀐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환경의 변화만이 아니라, 경제시스템과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가 생활패턴과 경제활동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는 시공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먹고사는 문제, 즉 일자리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일자리를 바꾼다
기후변화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우선 기후변화 자체가 고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기후의 변화로 인해 날씨에 의존적인 산업인 농·수산업과 관광업 분야에서의 고용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기후변화 대책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으로,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인한 발전산업이나 교통·물류 분야의 일자리 변화를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탄소세를 도입할 경우, 석탄과 석유 등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화력발전소의 비중이 줄어들거나, 자동차 이용의 둔화 등으로 이어져 그 분야의 일자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일례로 유럽노총은 EU의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반영한 시나리오를 이용하여 고용의 변화를 추정하였는데, 유럽의 철강산업에 고용된 35만 명의 노동자 중에서 7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적으로, 혹은 인위적 정책개입을 통해 일자리가 변화한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라지는 분야의 고용보장 문제와 기후 친화적이면서도 질 좋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문제일 것이다. 국제노동계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슬로건과 정책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환경친화적인 일자리로 고용을 전환하라'
기후변화 위기의 핵심적인 원인은 화석에너지의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에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석탄·석유와 같은 화석에너지에 기초한 생산과 소비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의 완전고용을 위한 충분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지만, 동시에 많은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전환의 과정에서 우리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기후친화적인 새로운 일자리로 전환하도록 지원할 집단적인 의무가 있다. 필요하다면 노동자에게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적합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생활수준을 보장해야 한다. 요컨대 ‘환경 친화적이면서도 친고용적인 산업재편’으로 가야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접근이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다.
캐나다 노동조합에 의해 만들어진 ‘정의로운 전환’ 전략은 이제 국제 노동계의 핵심 전략이 됐다. 지난 2009년 코펜하겐에서 국제노총은 비록 최종문안에 포함돼지 못했지만, '저탄소 경제로의 정의로운 전환과 이를 통한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 및 이해당사자'를 포함시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회색과거와 초록미래, 노동조합의 선택은?
▲ TUC(영국노동조합회의)의 ‘녹색 작업장(Green workplaces)’ 프로그램 가이드북 © TUC
지난 2009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공공운수연맹과 함께 진행한 조합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169명의 85.3%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으면 인류가 멸망할 것’이고, 65.3%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 경제성장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고용변화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73.2%가 반대의견이었고,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공감 비율은 80% 가량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요컨대 노동자들은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과 경제시스템의 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동시에 고용불안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조탄압 정책은 말할 것 없고, 소위 녹색성장정책에서도 위협받고 있는 고용에 대한 고려는 찾아 볼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자본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운다. 이 때 노동조합이 고용안정을 위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시스템 전환의 거부자로 남는다면, 출발부터 사회적 명분에 밀려 고전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의 시대, 이제 노동조합의 선제적이고 공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TUC(영국노동조합회의)의 ‘녹색 작업장(Green workplaces)’ 프로그램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TUC는 영국 에너지소비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작업장에서 직접 사용하는 에너지에 주목해, 작업장에서 에너지 이용을 절감하는 노조 주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결과로 TUC 본부 건물의 심야전력을 절반으로 줄이고, 대영박물관은 전력 이용을 7% 줄이는 성과를 보였다고 한다.
국내에도 주목할만한 사례들이 있다. 건강에 취약한 환자의 먹거리 안전을 위해 병원급식을 친환경급식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서울대병원노조, 에너지빈곤층이 밀집한 회사가 소재한 노원지역 내의 에너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한진도시가스노조 등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기후변화의 시대에 환경과 노동의 동맹을 모색한 노동조합의 시도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노동조합 스스로 기후변화 대응의 주요 행위자로 실천하면서 새로운 녹색일자리와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할 때, 사회적/정치적 명분과 고용안정이라는 실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시민사회가 가진 콘텐츠와 노동조합 조직의 결합은 한국 사회를 바꾸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용과 환경의 가치를 운동적 실천으로 묶어내는 창의적 연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강준 _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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