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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ODA’ 4대강 사업처럼 하면 어쩌나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 (끝) 지속가능한 적정기술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는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동 기획으로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 기사를 연재한다. 필자 필자 조보영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이다. - www.ildaro.com]
녹색 해외원조, 치적 쌓기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20대들이 취업을 위해 혹은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일명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느라 청춘을 받치게 된지 오래다. 하지만 막상 스펙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다는 뉴스를 가끔 접한다. 토익, 토플 점수가 높아도 외국인 앞에서 입 한번 못 열고, 컴퓨터 자격증이 있어도 일에서는 전혀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력서의 자격증이나 시험점수는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의미 없는 숫자와 글자의 조합이 되어버린다.
최근에는 청년들의 스펙 쌓기에 ‘해외봉사활동’ 경험이 옵션처럼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대학생 스펙 쌓기 카페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이나 몇몇 종교단체, NGO 등에서 운영하는 저개발국가, 제3세계로 나가는 해외원조나 봉사 프로그램 관련 정보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프리카 물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 기대했던 플레이 펌프. 그러나 몇년 후 무용지물이 되어, 지속가능성이 없으면 좋은 기술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려준 사례가 되었다. ©출처: guardian.co.uk
하지만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이해와 진지한 접근을 바탕으로 해야 하기에, 과연 스펙 한 줄을 생각하고 참여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 활동일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의 해외원조사업, 특히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 아래 확대되고 있는 녹색 ODA(Green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는 대통령이 자신의 치적에 한 줄을 넣기 위한 스펙 쌓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녹색 ODA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퇴치하고, 경제발전과 복지 향상을 위해 자금을 원조하는 공적개발원조의 개념에다가 21세기 가장 큰 위기로 대두되고 있는 기후, 환경문제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개발도상국들의 온실가스 배출을 완화하고 적응능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G8 확대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기후 파트너쉽’을 이야기하면서 물, 저탄소에너지, 저탄소도시, 산림, 폐기물 처리 5개 분야를 통해 녹색 공적개발원조를 하겠다고 공언 한 바 있다. 올해 6월 브라질에서 열린 유엔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리우+20) 개막식에서는 녹색 ODA를 2020년까지 50억 달러(약 5조7천5백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한국정부가 나서서 환경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해외원조를 늘린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문제는 현 정부가 가진 ‘환경’과 ‘녹색’이라는 정의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야기하면서 4대강 사업과 원자력이라는 두 악의 축을 전면에 내세운 모순적인 정부를 보아왔다. 그러기에 ‘녹색 ODA’ 역시 이름만 녹색인, 환경파괴적이고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대규모 건설사업으로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더 나아가 이것을 자신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의 홍보전략의 하나로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 지난 해 11월 말 부산에서 열린 세계개발원조총회(HLF-4)에서, 정부는 하천 유역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강을 파괴하는 사업을 녹색 ODA라고 포장하여 적극 홍보했다. 세계경제포럼(WEF) 환경이니셔티브 국장인 도미닉 워그레이는 “한국의 4대강 사업도 세계적인 물 부족 대응 노력의 일환”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한국의 4대강 사업과 같은 환경파괴적인 사업이 ‘녹색 ODA’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갈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모범답안인 줄 알았던 ‘플레이펌프’는 왜 실패했나
해외개발사업이 꼭 정부 간에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아직 한국은 그 규모나 활동 영역을 봤을 때 많이 뒤쳐진 후발주자이긴 하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종교단체나 NGO들이 직접 모금하거나 지원금을 받아 해외에 나가 빈곤 퇴치, 의료 보건, 교육 등 다양한 사업들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지원이 단순히 먹을 것, 입을 것을 주거나 집, 학교를 지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들이 지속가능 한 삶을 영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 중 한 예가 바로 ‘적정기술’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적정기술은, 보다 친환경적이면서도 그 지역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지속가능한 기술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사실 그 정의가 명확하지는 않다. 혹자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능적으로 동일한 기술에 비해 보다 환경 친화적인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또 ‘지역의 재료를 이용하고, 보통사람들이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에, 인간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해로움을 최소화시키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라고 정의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정의가 되었든 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정기술은 내가 다른 나라의, 다른 문화를 가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것 혹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고, 그들이 그 기술을 배워서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기술이 적정한지, 적정의 수준이 어디까지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우선 순위에 놓여야 한다.
▲<그 많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고장 난 플레이 펌프는 수리를 하려면 6개월 이상 걸렸고, 사람들은 플레이 펌프를 외면하고 떠나게 되었다. © 출처: The Co-operative good with food
그런 의미에서 플레이펌프의 사례는 아무리 좋은 의미를 가지고 친환경 기술을 보급한다 해도 그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실패사례이다. 플레이펌프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이것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돌리며 놀면, 그것이 동력이 되어 지하수를 끌어올려 물탱크에 저장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물 문제를 획기적으로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매일 몇 시간 동안 마실 물을 길으러 먼 길까지 가야 하는 아프리카 여성과 아이들의 수고를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깨끗한 물을 얻음으로써 보건위생 전반의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이었기에, 플레이펌프는 한동안 적정기술의 모범답안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2005년 한 방송을 통해 알려진 이 사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연예인과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소개하면서 아프리카 10여 개국으로 보급되었다.
하지만 그 후 3년이 지나자, 플레이펌프는 더 이상 아이들의 놀이공간이 아니었다. 버려진 플레이펌프 주변 모습은 을씨년스러웠고, 사람들은 플레이펌프를 외면했다. 플레이펌프를 돌리기 위해서는 아이 여럿이 필요했고, 노약자나 여성이 돌리기에는 매우 무거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플레이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고장도 잦았다. 고장이 나면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역사람들은 이 플레이펌프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단지 고장이 났으니 고쳐 달라는 요청 메일만 수십 차례 보내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고 한다.
이 유명한 실패사건은 적정기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 일깨워 준 사례로 남았다. 해외개발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필요를 충족시켜줄 적정한 기술을 찾고 그들 스스로가 완벽하게 조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상대방과의 소통과 질문 그리고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기술은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당신은 무엇이 필요한가요?”
적정기술, 그래도 불을 밝히는 사람들
▲ 두 개의 도기 사이에 모래와 물을 채워 야채와 과일을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고안 된 Pot-in-Pot cooler © 출처: 소외된 99%를 위한 공학 설계
한국이 해외개발사업에서 많이 뒤쳐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꾸준히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랜 시간 해외개발사업의 경험을 가진 NGO 중 하나는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의 대기오염의 심각성과, 저소득층의 주거 시설의 불충분한 난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로를 개발하여 보급하는 사업을 하였다. 더 나아가 몽골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여 저가에 보급하며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공장을 건설하였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와 학생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네팔 솔라 봉사단의 경우, 네팔의 작은 마을들에게 소규모 독립형 태양광 발전설비를 제공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 단순한 가정의 전력 지원을 넘어, 지역주민들이 숙박시설에 머무는 네팔 트레킹 여행자를 대상으로 태양광으로 발전된 전력을 이용해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을 충전하고 수입을 얻도록 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이들의 활동은 LED 조명을 이용해 버섯 재배장을 운영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까지 고려하여 확대되고 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적정기술’은 단순히 기술이라는 단품이 아니라, 한 지역사회 전반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술은 단순하고 낮은 수준의 기술부터 태양광과 같은 높은 기술을 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플레이펌프를 설치하기 전에 공동체를 지원하고 그들을 교육해서 지속적인 관리체계를 만들었다면, 처절한 실패를 맛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한국의 녹색 ODA를 돌아보자. 한국정부가 진정성 없이 치적 쌓기 용으로 녹색 ODA를 하게 된다면 플레이펌프처럼 실패하게 될 것이다. 녹색성장의 홍보가 아니라, 실제 저개발 국가와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그 지역사회 안에서 어떻게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조보영)
▲ Q-Drum은 물동이를 지는 대신 75리터의 물을 쉽게 굴려 운반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적정기술의 사례이다. © 출처: 소외된 99%를 위한 공학 설계 (design.walkerart.org)
* 여성 저널리스트들의 독립언론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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