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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꽃을 던지고 싶다> 21. "외도의 상대 따위는 되지 않을 거야"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www.ildaro.com

여성들은 그 남자를 한 번이라도 보았거나 그와 데이트한 적이 있거나 같이 잤거나 결혼했다면, 자신들이 야하게 옷을 입었거나 아마도 숫처녀가 아니라면, 자신들이 창녀라면, 자신들이 성교를 그냥 참았거나 그냥 이겨내려고 했다면, 혹은 수년간 강제로 성행위를 당해왔다면, 자신들이 ‘진짜로’ 강간당한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음으로써 강간과 성적 폭행의 경험들을 구분한다. - <캐서린 맥키넌>

학원장으로부터 당한 성폭력
 

1999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기 전, 세기말은 온통 사회를 불안과 흥분으로 달뜨게 했다. 세기말은 암울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했다. IMF 직후라서 인지 온통 세기말에 대한 진단과 불안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나는 세기말과 상관없이 불안하고 우울했다. 대학을 마치기 위해 지나치게 성실하게 일을 했던 내 몸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40키로가 간단히 넘던 나의 몸은 지쳐있었다. 무엇보다도 일을 하면서 경험했던 지속적인 성추행에, 나는 더 이상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일을 쉴 수는 없는 가난한 삶이어서 그래도 내가 잘했고, 재미있었던 학원 강사 일을 직업으로 삼고자 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선배의 소개로 수학강사를 하던 나는 적어도 꼰대 같지 않았고, 아이들과 눈높이가 잘 맞는 편이였다. 아이들을 성적으로 평가하지도 않았고 이것만으로도 나는 인기 있는 선생님의 축에 들어갔다.
 
수학강사를 모집하는 학원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합격을 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시강을 앞두고 원장이 회식이 있다면서 다른 선생님들과 인사도 할 겸 나오라고 했다. 회식자리라고 갔던 자리엔 다른 강사들은 나오지 않았다.
 
원장은 시험이 곧 있어서 보강을 하고 있다면서 보강이 끝나는 대로 올 것이라고 했다. 우선 한 잔 하자며 양주를 주문했고, 나는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나는 이 일이 필요했고, 원장은 고용주이므로 최대한 얌전하지만 똑똑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원장은 집요하게 술을 권했고, 나는 어느 정도 주량이 있는지라 첫 잔을 기분 좋게 마셨다. 술 잔이 몇 잔 더 오고 갔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호텔방이었다. 이상했다. 그 정도의 술에 취하는 나도 아니었고, 이렇게 기억이 아무것도 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리가 아팠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백지처럼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벗겨진 옷들 그리고 내가 있는 장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지만 내가 왜 이 공간에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잘 들어갔느냐, 나는 학원에 나왔다. 학원을 하나 더 개업하는데 네가 그곳 원장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원장의 문자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잘못한 것이고, 술을 마신 내가 잘못한 것이니, 아무 일도 없었듯이 대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든 것이 어렵기만 했다.
 
술에 취한 것인지 약에 취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상대방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성관계를 하는 것은 ‘준강간’이라는 법률적 개념과 상관없이, 상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여성이 비난 받는 일이 흔하기에 나에게 일어난 것은 나의 잘못이라 치부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일자리가 필요했고, 일하지 않으면 고시원 비도 당장에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개업하는 학원을 가보자는 원장의 말에,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원장은 운전을 하면서 나를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조용히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모텔에 차를 세우는 원장에게 들어가지 않겠다고, 일도 하지 않겠다며 그만 가보겠다고 했다. 그 사람은 차 문을 열려는 나를 붙잡고 잠시 이야기만 하자고 했다.
 
한참을 실랑이를 하고 30분의 시간만 달라는 말에, 지친 나는 그 사람 말에 응하기로 했다. 모텔 앞에서 실랑이하는 것도 창피한 일이고, 또한 나만 정신차리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야기만 하겠다는 그 사람을 믿고 방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이야기만 하자는 그 사람을 믿은 것은 분명히 어리석었다. 그 어리석음의 대가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원장은 맥주를 주문했고, 혼자 술을 마시면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참을 설명했다. 함께 이민이라도 가서 살자고 이야기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화가 났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화를 내고 나오는 순간 원장은 갑자기 돌변했다.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뺨에 주먹이 날라오고, 참기 어려운 욕설이 쏟아졌다.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주먹이 복부에 강타하는 순간 숨이 막혀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나가고자 했으나 나갈 수가 없었다. 나의 저항이 폭력 앞에서 무너지고 그 사람은 승리자가 되었다. 원장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그 방을 나왔다.
 
할 수만 있다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무기력했지만 상대적으로 그 사람은 모든 것이 너무도 익숙해 보였다. 며칠이 지나고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문자가 계속적으로 날라왔다.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심했다. 고소를 하기로 했다. 경찰서에 갔다. 폭력이 있었고, 나는 저항했으므로 강간을 당한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강간을 당해서 고소하러 왔다고 하자, 젊은 형사에게 안내되었다.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어렵게 꺼낸 나에게 형사는 ‘어떤 관계이냐? 어떻게 모텔에 가게 되었느냐?’ 물었다. 모든 질문이 나에게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왜 죽기로 저항하지 못했는지, 나에게 저항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를 시키는 것은 가능할까? 어릴 적 성폭력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면 믿어줄까?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토하고 싶었다.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다시 오겠다며 일어나 나왔다.
 
처음 연락이 왔었던 학원으로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런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거니 어떤 여자가 받았다. 가정집이라는 말에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학원 원장 이름을 말했다. 그 여자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부인이라고 했다. 내가 만나자는 말에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다. 약속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고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잘하는 짓일까? 그 여자를 만나 뭐라고 하지? 당신의 남편이 나를 강간했다고 하면 그 여자는 믿어줄까? 모든 것이 두렵고 무서웠다.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배에 시선이 갔다. 만삭이었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어느 정도 아는 듯 보였고, 너무 지쳐 보였다. 그냥 갈까? 이미 늦은 후회였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쓸쓸한 모습이 있을까? 그녀도 나도 너무 불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미지근하게 커피가 식을 무렵, 나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했다. ‘당신의 남편이 나를 강간했어요. 고소를 하고 싶어요. 사랑한다면서 같이 살자고 해요. 하지만 저는 그럴 생각 없어요. 저에게 연락이 오지 않도록 좀 해주셔요.’ 준비하고 연습했던 대사를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쏟아냈다.
 
나도 그녀도 한없이 눈물이 흘리고 있었다. 눈물로 인해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었다. 학원 원장을 하던 남편은 학원이 어려워지고 빚이 있어서 학원을 접었고, 자신은 만삭의 몸으로도 간호사 일을 하고 있다면서, 전에 있던 학원 강사와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이 임신을 하자 남편의 외도가 지속되었다고 했다. 그 여자도 나도 똑바로 서로를 마주볼 수도 울지 않고 말을 이을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자신의 남편에게 강간당한 여자가 아니라 외도의 상대일 뿐이었다.
 
피해자인 줄 알았던 내가 가해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무엇이 죄송한지 몰랐지만 그 여자의 눈물이 마음이 아팠다. 나 때문에 그 여자가 힘들게 지키던 가정이 깨지는 것 같았다.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결단코 나는 외도의 상대 따위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만큼은 가득했다. 평생을 아빠의 외도로 힘들어 했던 엄마를 가진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으니깐. 엄마를 평생 괴롭히던 여자들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경찰에 고소할 거냐고 물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워도 아이의 아빠이고, 아빠가 감옥에 있다고 말을 할 수 없다며 나에게 고소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자신이 이혼을 하겠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그 여자에게 알겠다며 다방을 나오는 순간 멀리서 학원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한동안 나는 그 여자의 꿈을 꾸었다. 죄의식이 들었다. 만삭의 몸으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을 그녀가 가여웠다. 그 여자의 가정을 내가 파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를 불행하게 한 것도 그 가정이 깨진 것도 모두 내가 아니라 그 남자의 탓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남자의 가정은 지켜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엄마를 괴롭혀온 것도 사실은 그녀들이 아닌 아빠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가혹하게 깨달았다.
 
가끔씩 그녀가 궁금하다. 여전히 그런 놈과 살고 있지는 않겠지? 나는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녀도 나도 그 남자의 희생자였을 뿐이다. (너울)
 
   * 여성 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독립언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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