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꽃을 던지고 싶다> 24. 계층을 인식시켜준 ‘돈’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30회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www.ildaro.com
 
업소를 나오고, 술을 마시지 않고 몸을 파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나는 성실하게 그 운명을 수행하리라 다짐했다. 술 마시는 일은 오랜 시간 남자들과 함께 있어야 하고 너무도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술을 따르고 훈계를 듣고 시답지 않는 농담을 듣는 것은 몸을 파는 것보다 더 싫었다. 또 오랜 시간 얼굴을 마주보고 있어야 하므로, 혹시 길에서 만나면 어쩌지? 나를 아는 사람이 온다면? 모든 것이 두렵기만 했다.
 
생활정보지를 들여다보면서 아르바이트를 찾던 중 ‘이벤트’ 광고가 눈에 띄었다. ‘이벤트 행사 도우미’ 구함, ‘용모단정’, ‘출퇴근 자유’ 등의 문구가 어색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은 알 것도 같았다.
 
전화를 하고 약속 장소인 커피숍에 나가니 업체 대표인 여성과 친구인 남성이 앉아 있었다. 여성은 옆의 남성에게 여자의 외모를 판단하게 하는 듯했다. 남자가 나를 보며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라고 하자, 그 여자는 자신들의 일을 설명했다.
 
자신들이 고객과 약속 장소를 정하고 연락을 주면, 나는 그 장소에 가서 고객을 만나면 된다는 것이다. 고객에게 12~15만원을 받으면 금액에 따라 자신에게 2~3만원을 떼어 주면 된다고 했다. 남성들은 여성들을 소개받는 대가로 50만원을 회비로 납부하고 5명의 여자를 알선 받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여자와 고객에게 소개비를 받고 알선을 해주는 것이다.
 
자신들의 고객은 점잖고 괜찮은 사람들이니 염려하지 말라며 이야기를 했다. 그 여자는 자신의 남성손님들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나에게 ‘대학생인데 등록금이 없어서 이 일을 한다’고 말하라고 당부했다.
 
아무 말도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그새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나는 드디어 창녀가 되는 것이리라. 불행하고 억울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객이 강남의 어느 장소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전화를 받고 혼자 가야 하지만, 첫 날이니 사장이 태우고 다니겠다고 했다. 약속 시간에 약속 장소로 가니 외제차가 서 있었다. 그 차에 타고서 앞을 바라보았다. 차는 서서히 이동을 했지만 나는 운전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차는 강남의 한 호텔에 멈추어 섰다. 차문을 열어주는 남자의 안내로, 차에서 내려 앞장서 가는 고객 뒤로 따라 걸었다. 익숙한 듯이 체크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나를 먼저 타게 하고 문을 열어 주고 신사처럼 행동했다.
 
호텔방에 들어가자 그 남자의 얼굴을 처음으로 쳐다볼 수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5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만한 딸이 있다면서,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물어왔다.
 
지겨운 질문. 단란주점에서도 수없이 들었던 질문. 왜 당신들은 이곳에 와서 여성의 굴욕과 치욕을 사는가! 나는 한 번도 할 수 없었던 질문이다. 나는 고객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질문은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내 마음은 왜 돈을 쓰며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몸을 사면서 당신들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묻고 싶었다.
 
나는 사장이 알려준 대로, 대학생인데 학비가 없어서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을 했다. 첫 고객과의 만남은 30분. 너무도 길게 느껴졌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 아저씨는 앞으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자신의 연락처를 나에게 줬다. 앞으로 당신을 만나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택시비 20만원을 포함하여 등록금을 하라며 250만원을 주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액수였다. 대학등록금을 30분만에 벌었다. 그 손님은 지하철 역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고, 끝까지 매너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고맙지가 않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져본 가장 큰 돈이었지만, 그 사람의 친절을 친절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 사람도, 나도 선의를 가진 행동이나 배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사람을 사는 대가로 치른 그 많은 돈이 그의 삶에는 별로 큰 돈이 아니었을 뿐이고, 그것은 누군가가 30분만에 쓸 수 있는 돈을 갖지 못한, 창녀밖에 될 수 있는 것이 없는 나의 위치, 나의 계층을 명확하게 인식시켜 주는 일이었을 뿐이다. (너울)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블로그> ildaro.blogspot.kr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