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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스무살 여연의 공상밥상 (9) 꿀을 이용한 요리 

 
홈스쿨링과 농사일로 십대를 보낸, 채식하는 청년 여연의 특별한 음식이야기. 갓 상경하여 대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스무살 청년의 음식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좌충우돌 실험 속에서 터득한 ‘여연표’ 요리법을 소개합니다. www.ildaro.com

봄이면 꽃꿀을 따 먹던 기억

▲ 벌은 꽃에서 꿀을 얻고, 식물은 가루받이를 한다. ©서울시

얼마 전에 오랜 지인이자 든든한 후원자이신 어떤 분이 멀리 경상북도에서 소포를 보내주셨다. 자잘한 간식거리들로 가득 찬 소포 맨 밑바닥에서 조그만 꿀 한 병을 발견했다.
 
집에 있을 땐 꿀을 자주 먹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온갖 음식에서 풍기는 단내에 살짝 질려서, 꿀을 사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집에서 보내주는 매실엑기스 정도면 내가 만드는 음식들에서 단맛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눅진한 달콤함과 벌꿀 고유의 향기를 느끼니 반가운 맘이 든다.
 
어렸을 때 봄이면 꽃에서 꿀을 빨아먹으면서 놀곤 했다. ‘꿀꽃’이라고 부르던 광대나물의 조그만 코끼리 코처럼 생긴 보라 분홍색 꽃을 살짝 뽑아내서 좁은 부분에 입술을 대고 쪽 빨면, 아주 연하고 아쉬운 단맛이 거의 향기처럼 혀에 닿는다.
 
비슷한 모양의 남보라색 꽃은 이름이 정말 ‘꿀풀’이었다. 꿀풀은 꽃송이가 훨씬 크고 꿀도 많았지만 왠지 부담스러운 향이 나서 그렇게 즐겨 먹지는 않았었다. 벌이 이미 꿀을 가져간 꽃은 아무리 빨아도 단맛이 나지 않았다. 동글동글한 동백 꽃봉오리 안에 풍성한 꿀이 감춰져 있다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꽃꿀은 달콤하지만 어느 누구의 코에도 붙이지 못할 만큼 양이 적다. 단맛이 살짝 느껴질 뿐, 사실 향기 나는 이슬방울이나 다름없다. 벌은 이런 꽃꿀을 도대체 어떻게 찐득찐득한 벌꿀로 탈바꿈시키는 걸까?
 
나는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 중 ‘꿀벌이 되다’편에서 학생들과 프리즐 선생님이 벌집 체험을 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탐독했기 때문에, 대충 원리는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요즘 자꾸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느니 어쩌니 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잖아? 좋아! 이번 주에는 꿀벌에 대한 책이나 읽어 봐야지. 
 
‘집단지성’ 꿀벌의 매력에 빠지다 
 
그렇게 어느 화창한 월요일에 가벼운 마음으로 ‘꿀벌’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세계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정말 훨씬 넓고도 깊은 세계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으니! 분명히 심심풀이로 지식검색을 하고 있었던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도서관에 처박혀서 일주일 내내 꿀벌에 관한 책들을 읽어대고 있었다.
 
꿀벌, 이 작은 생물은 아무래도 사람을 반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 놀라운 생물을 어디서부터 소개하면 좋을까?
 
먼저, 여왕벌과 일벌, 수벌로 이루어진 꿀벌 무리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만한 분업체제를 갖춘 ‘초개체’ 혹은 ‘집단지성’이다. 이들은 식물과 계약을 맺어서 꿀과 꽃가루 그리고 집수리에 쓰이는 수지를 얻는 것을 빼고는 필요한 물질을 대부분 자급자족한다. 여왕벌의 평생 양식인 ‘로열젤리’도, 꿀벌들의 정보 전달에 꼭 필요한 다양한 페로몬도, 건축 재료인 밀랍조차도 몸에 있는 샘에서 분비해낸다.
 
식물에게서 얻은 물질들도 일단 먹은 다음에 소화효소를 이용해서 성분을 바꿔놓는다. 벌꿀이 바로 그런 물질이다. 일벌이 자신의 몸속에서 꽃꿀의 다당류를 대부분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시켜 놓은 덕분에, 벌꿀의 영양분은 장벽에 직접 흡수되고 소화가 빠르다. 벌의 입을 거쳐 나온 꿀은 해로운 바이러스를 죽이는 항생 효과까지 얻는다. 그래서 감기에 걸렸을 때 꿀차를 마시면 효과가 좋은 것이다.
 
꿀을 벌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오래 보관하려면 날갯짓으로 수분을 증발시켜서 농축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이때 꿀의 부피가 절반쯤 줄어들면서 비로소 끈적끈적한 벌꿀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카를 폰 프리슈’는 새로운 꽃을 발견한 일벌이 원무와 섬세한 8자형 엉덩이춤을 추면서 동료 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벌집 안에서 태양 대신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을 기준으로 삼으면, 어둠 속에서도 꽃의 위치정보를 춤으로 전달할 수 있다. 꽃을 처음 찾아냈던 벌이 빠르고 생기 넘치는 춤을 추면 주변에 있던 다른 일벌들도 춤동작을 따라하게 된다. 춤이 활발할수록 그 꽃에 질 좋은 꿀과 꽃가루가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가장 성공적인 8자형 엉덩이춤은 독무로 시작해서 단체 춤 강습으로 끝나는 것이다.
 
엄격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벌이 힘들게 일해서 만든 양식을 인간이 마음대로 가져오는 건 약탈행위다’라면서 꿀 먹는 걸 피한다. 사실 벌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일벌이 한 번 비행해서 모을 수 있는 꽃꿀을 자기 몸무게의 절반쯤 되는 40mg 정도이다. 1kg의 꽃꿀을 수집하기 위해서는 지구를 한 바퀴 돌 만큼의 거리를 비행하면서 560만 송이의 꽃을 방문해야 한다. 인간의 기준에서는 거의 무게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꽃가루도 무려 30kg 정도나 수집한다.
 
살충제, 전자파, 기후변화…벌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꿀벌은 놀라울 만큼 자신의 몸과 주변 환경을 잘 이용한다. 하지만 그만큼 환경의 변화에 취약하기도 하다.
 
벌집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만한 요소들은 수없이 많다. 영양분을 빨아먹어 꿀벌을 약하게 만드는 빨간 꿀벌응애와 그 응애를 퇴치하기 위해 사용되는 살충제, 애벌레와 성충을 괴롭히는 온갖 만성적인 질병들, 인간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 고당도 설탕물 사료 때문에 일어나는 영양실조, 과수원과 농장에 뿌리는 농약, 휴대폰 사용량과 함께 훌쩍 늘어난 전자파, 기후변화로 인해 혹독해지는 겨울날씨 등등.
 
특히 농약과 영양실조 그리고 이동식 양봉업으로 인해 꿀벌이 받는 새로운 종류의 스트레스는 2006년~2007년 사이에 미국의 양봉 농가에서 벌집군집붕괴현상(CCD)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으로 조심스럽게 지목받고 있다.
 
미국에서 전문 양봉업자들이 기르는 꿀벌 대부분은 야생 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일보다는 공장식 대량 농업을 지탱시키는데 투입된다. 특히 전 세계 아몬드의 80%를 생산하는, 6억 7000만km가 훌쩍 넘는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아몬드 농장에서 벌들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아몬드는 가루받이를 할 때 반드시 곤충이 필요한 식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바람의 도움을 받기에는 아몬드의 꽃가루가 너무 무겁다.
 
최근 몇 십 년간 꿀벌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시장이 크고 수익성이 높은 아몬드농업은 지금도 계속 규모를 늘리고 있다. 아몬드농장주가 벌통 하나당 지불하는 돈은 많을 때는 200달러에 이르기 때문에(2011년), 아몬드 가루받이 철이 되면 미국 전역의 양봉업자들이 겨울잠을 자는 벌들을 깨워서 차에 싣고 캘리포니아로 모여든다. 이제 그들은 꿀을 팔아서가 아니라 가루받이를 해서 수익 대부분을 얻는다.
 
덕분에 벌들은 “몇 주 만에 트럭에 실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며 고과당 옥수수 시럽만 공급받고 살충제와 항생제를 투여 받는다. 그런데도 기생충의 공격에 시달릴 뿐 아니라 외래 병원균에 노출되어 있어서 요즘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2009, 에코리브르)
 
지금처럼 농산물이 지구 곳곳으로 운송되는 세상에서는 아무래도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아몬드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견과류 중에 하나다.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 공급원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의 사랑도 듬뿍 받는다. 시중에 유통되는 아몬드는 중국산도 있지만 대부분 캘리포니아 산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아몬드에 붙던 관세가 없어지면서 가격이 내려가자, 아몬드 매출량은 1년 만에 129.5%늘어났다.
 
벌과 함께 사는 서울, 상상해보자

▲ 서울시에서 도시양봉을 하기 위해 설치한 벌통.     © 서울시 
 
서울에도 봄이면 꽃들이 피어난다. 하지만 그 꽃들에서 나는 꿀벌을 거의 보지 못했다. 벚꽃 꿀을 모으며 새끼손가락만한 바이올린 수만 대를 한꺼번에 연주하는 것처럼 윙윙대던 행복한 일벌들의 소리를 도심의 꽃들에선 듣기 힘들다. 어느 옛이야기에 나오는 아름답지만 향기 없는 그림 속 모란처럼 말이다. 꿀벌 없는 꽃은 여전히 우아하고 조용하지만 사실 부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도시에도 꿀벌이 필요하지 않을까?
 
‘도시양봉’은 말 그대로 도시에서 꿀벌을 키우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도시양봉이 대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시 차원에서 운영하는 양봉장이다. 2012년 4월, 서울시는 시청 옥상에 벌통 5개를 놓고 벌을 키우기 시작했다.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수확량은 계획에 못 미쳤고, 가을이 오고 관리하기가 어려워지자 벌통은 슬쩍 경기도로 옮겨졌다. 서울시는 올해 다시 시청 옥상에 벌통을 설치했고,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는 ‘공원양봉’을 시험적으로 운영하는 중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조금 더 작지만 흥미로운 모습이다. 젊은 조합원 5명이 주축이 된 ‘도시양봉협동조합’은 지금 서울에서 대대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도시텃밭’과 결합해서 꿀벌을 키운다. 연신내역 갈현텃밭, 노들섬 노들텃밭 등에 이미 벌통을 설치해놓았다. 또 그들은 친환경 농산물 계약재배 서비스를 제공하는 ‘슬로펀드’와 함께 초심자들을 위한 ‘도시양봉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신청자를 받고 있다. 프로그램 수강생은 3개월 동안 벌통 설치부터 장마철 꿀벌 관리와 허니 양초 만들기까지 도시에서 벌을 키우는 법을 하나하나 교육받게 된다.     
 
이런 작은 시도들을 보면서 상상을 하나 해보았다. 서울에서 주택 뒷마당이나 아파트 옥상에서 꿀벌을 기르는 일이 유행해서, 여름이면 각 가정마다 꿀을 따서 저장해놓는 일이 일상이 된다면 어떨까? 벌과 함께 사는 일이 당연해진다면, 꽃과 나무는 지금보다 훨씬 더 풍성해지고 아이들은 과학 시간에 배우는 것보다 꿀벌이라는 곤충을 훨씬 더 잘 알게 될 텐데. ‘손으로 하나하나 조립해서 만든 명품 수제벌통’ 같은 물건이 불티나게 팔리고, 벌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소송을 거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혼자 피식 웃어가면서 계피와 꿀로 살얼음이 씹히는 계피차를 만들어 보았다. 만드는 건 간단한데 꼭 수정과 같은 맛이 난다. 통계피는 집에 내려갔을 때 요리에 넣을 거라고 호기롭게 얻어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계피를 사용할 일이 별로 없어서 찬장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이제야 썼다. 통계피가 없으면 계피가루 1~2스푼을 대신 넣고 끓인 다음 걸러서 마셔도 좋을 것 같다. 계피는 침을 분비시키고, 혈액순환을 돕고, 위장을 활성화시켜서 소화불량일 때 먹으면 좋다. 꿀과 계피는 서로 무척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한다. 

▲ 살얼음이 아삭아삭 씹히는 꿀 계피차와 벌꿀두부소스 미나리 샐러드     © 여연

 • 살얼음이 아삭아삭 씹히는 꿀 계피차
 
-재료: 생수, 통계피 10조각, 벌꿀 서너 숟가락, 땅콩이나 호두 약간.
 
생수에 통계피를 넣고 한 번 끓어오를 때까지 끓이다가, 불을 약하게 줄여서 20분쯤 더 우려낸다. 물이 진한 갈색이 되면 불을 끄고 조금 식힌다. 준비해놓은 벌꿀을 섞은 다음 냉동실에서 서너 시간 얼린다. 혹 마음이 내킨다면 1시간마다 한 번씩 살얼음을 깨고 휘저어준다. 땅콩이나 호두를 찧어서 위에 올린다.
 
마지막으로 꿀과 잘 어울리는 향을 가진 미나리와 으깬 두부로 만든 간단하지만 상큼한 샐러드 한 가지를 더 소개한다. 알칼리성 식품인 미나리는 해독 작용이 뛰어나서 몸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싱싱한 미나리 잎은 연하지만 줄기는 질기기 때문에 줄기만 먼저 살짝 데쳤서 소스에 버무렸다. 오래 놓아두면 물이 생기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먹는 게 좋다.
 
 • 벌꿀두부소스 미나리 샐러드
 
-샐러드 재료: 미나리, 방울토마토.
-소스 재료: 벌꿀, 식초, 볶은 참깨, 들기름, 소금, 두부.
 
미나리 반 단을 깨끗이 씻어서 이파리 부분과 줄기를 분리한다. 이파리는 먹기 좋게 잘라서 다듬고, 줄기는 2등분해서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친 다음 물기가 남아있지 않게 꼭 짠다.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갈라놓는다. 두부 1/3모를 으깬 다음 꿀 3스푼, 소금, 들기름 2스푼, 식초 몇 방울과 참깨를 함께 넣고 섞는다. 볼에 미나리 이파리와 데친 줄기, 반 자른 방울토마토, 소스를 넣고 버무리면서 덩어리 진 두부가 있으면 마저 으깬다. 차갑게 해서 가능한 한 빨리 먹는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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