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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이야기> 동물을 바라보는 철학과 사상들 (상) 

동성애자 여성들의 인터뷰 기록 “Over the rainbow”의 필자 박김수진님이 “동물권 이야기” 칼럼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인 ‘동물권’에 대해 깊이 살펴보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적 삶을 모색해봅니다. www.ildaro.com 

 
우리는 왜 동물을 죄의식 없이 이용하는가
 
영향력이 있는 철학자의 철학이나 사상가의 사상은 그 철학과 사상이 탄생하던 시기에는 물론 그 이후 시대를 사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철학과 사상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남성중심 이데올로기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정당화해온 것이나, 자본주의 사상의 오랜 위력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사회구성원들이 특정한 대상이나 문제에 관해 갖는 “일반적인” 생각들은, 지배적인 힘을 행사해 온 앞선 철학과 사상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동물권 논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서양과 동양의 철학과 사상 속에서 드러난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식이 현대인들의 생각과 태도에 재현되고 있습니다.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을 ‘생명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기보다 ‘인간동물을 위해 죽어 마땅한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 배경에는, 비인간동물을 대상화하고 수단으로 본 철학과 사상들이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간동물의 인식은 ‘인간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동서양의 지적 전통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몇몇 사상가들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서양 철학자들이 구분한 ‘동물과 인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동물만이 이성을 가졌다는 전제 하에 비인간동물을 계급적으로 하위에 두고, 이성을 가진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을 자원으로 이용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의 중요한 차이로 “기호, 신호, 언어의 사용 능력”을 꼽으면서, 이성도 없고 언어 사용 능력도 없는 비인간동물을 차별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비인간동물이 내는 소리가 언어가 아닌 자연적인 동작이며, 하나의 기계적인 반응일 뿐이라고 주장했죠.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비인간동믈은 ‘영혼이 없는 기계’일 뿐이었으니, 그는 개를 테이블에 올리고 살아있는 채로 해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인간동물이 내는 비명은 시계의 태엽이나 톱니바퀴들이 분해될 때 나는 소리일 뿐이었죠.
 
데카르트를 따르던 자크 슈발리에는 비인간동물 안에는 ‘기계적인 무질서’라는 게 있다고 주장했어요. 이성을 가진 인간동물 안에는 ‘이성을 전제로 하는 질서’가 있다는 얘기지요. 슈발리에는 인간 내부의 질서와 이성을 부정하는 것은 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적인 상태에 있는 것은 ‘대재앙’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로크는 신이 오직 인간동물에게만 이성을 허락했다고 말했어요. 이성을 가진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동물이 모든 자연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다고 주장했지요. 로크에게 있어서 자연은 신이 인간동물에게만 허락한 정복의 대상이었고, 열등한 비인간동물이 인간동물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이성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는 회의주의자들이 득세하자,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다’며 죽어가던 이성을 복원하려 했던 칸트 역시 “우리는 동물과 관련해서 직접적 의무를 지지 않는다. 동물은 자의식적이지 못하므로,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 목적이란 인간이다.” 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된 현대에도… 

▲ 현대 사회에서 동물에 대한 착취와 폭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로크, 슈발리에, 칸트의 인식을 받아들일 경우, 비인간동물에 대한 착취와 학대는 정당화되겠지요.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간동물의 소유권과 지배권이 인정되는 상황 속에서, 인간동물은 자신들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비인간동물을 정복하고 활용하고 죽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비인간동물은 기계에 지나지 않은 존재이니만큼, 이들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죄책감과 같은 감정적 동요를 겪을 필요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성은 인간동물의 전유물이고, 이성이 없는 비인간동물들은 ‘자기 의식’이라는 것을 가질 리 만무하니까요.
 
이들 철학자들의 생각과 주장은 오늘날의 인간동물들이 자연과 비인간동물,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인간동물에게는 조금 더 무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과거엔 비인간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무지’의 상태였던 것에 반해, 오늘날의 철학자들과 많은 인간동물들은 비인간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 대한 착취와 폭력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보다 더 잔혹하게 보입니다.
 
‘동물적 인간’보다 무서운 ‘인간적 동물’
 
이쯤에서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서양 철학자들의 주장에서 이상한 점들을 발견했어요. 세상은 변화하여 인간동물들은 더이상 신에게 의존하는 채로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신이 인간동물에게만 이성을 선사하였다는 주장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리고 인간동물에게만 있다는 ‘이성’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세상사 돌아가는 일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인간동물에게 이성이라는 것이 내재해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거든요. 이성이 좋은 것이고 모든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수많은 성폭력과 가정폭력, 불공정한 노동 현안들, 장애인과 이주민과 동성애자 등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과 폭력의 역사를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슈발리에의 주장처럼 인간동물이 어떤 질서를 내재하고 있다면, 어찌하여 세상은 이토록 무질서한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달까요.
 
비인간동물을 계급적으로 하위에 동물도 인간동물이고, 비인간동물이 내는 소리를 언어가 아니라고 간주하는 이 또한 인간동물이지요.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을 분리하고, 자신과 다른 존재의 감정과 언어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여 “언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인간동물의 이기적인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누가 인간동물에게 동물을 계급적으로 상위인 것과 하위인 것으로 나누어 비인간동물을 마음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일까요?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처럼 되는 것이 대재앙이라고 하였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비인간동물이 인간동물처럼 되는 것이 더 큰 재앙이 아닐까요?
 
동물권에 관한 관심은, 이 모든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들을 꺼내어 다시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동성애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역발상이 필요한 상황과 유사하지요. 역사적으로 그간 ‘동성애의 원인’을 캐내려고 애써왔다면 이제는 ‘이성애의 원인’을 먼저 생각해본다거나, “동성애자들은 사랑과 우정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같은 질문을 이성애자들에게 바꾸어 되물어 보는 것이지요.
 
불교 철학에서 말하는 ‘평등한 생명’
 
그렇다면 동양 철학의 사정은 어떨까요? 생명사상을 중시하는 불교 철학을 예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불교 철학은 비인간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서구의 철학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불교 철학의 전통 속에서 강조하고 있는 ‘생명’은 인간동물만의 전유물이 아니죠. 생명은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을 초월하여 존귀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현상인 외형은 업이 만들어낸 껍데기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생명은 본성상 영원하고 자유 자재한 것으로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 간의 차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요.
 
불교의 절대 자유와 절대 평등 사상은 생명에 높고 낮음을 두지 않고 적용됩니다. 생명은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가치 실현의 목적입니다. 그 어떤 생명도 죽임을 당하거나 차별 받거나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불교 사상에서 ‘부처’는 석가모니를 이르기보다는 세상만물 모두가 부처인 ‘법신’으로 간주되는데요. 따라서 산과 들, 하늘과 바람,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 등 우주를 구성하는 만물이 부처이고 그들 간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동물을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로 분리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경계 짓기를 해서는 안 되는 ‘망상’으로 간주하지요. 이러한 불교 사상의 근본적인 생각과 태도를 보면, 불교 철학만큼 비인간동물을 대상화하지 않은 사상이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자비는 인간의 것, 미움은 동물의 것?
 
그러나 존재에 차별을 두지 않고자 했던 불교 사상이 현대의 인간동물들의 인식이나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많은 불자들과 불교사상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비인간동물은 대상화되거나 타자화된 범주 안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에요.
 
해탈을 강조하는 지도자들은 오직 인간동물의 해탈만을 가능한 것으로 보고, “동물적인 것”은 하등하고 저급한 차원으로 언급하곤 합니다. 불교서적들에서 사랑과 자비는 인간동물의 전유물이며, 미움과 질투 등 그릇된 마음은 “동물적인” 상태라는 식의 비유와 설명을 찾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또 비인간동물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불자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질문을 해보는 겁니다. 주체와 객체, 인간동물과 자연의 이분법을 해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해탈에 경계를 두려 하는 것인지, “(비인간)동물적인 것”이 하등하다고 판단하는 명확한 근거는 무엇인지, 무엇이 더 하등하다고 분별하는 그 경계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보다 그런 분별과 분리가 오히려 불자들의 해탈을 방해하는 망상의 일면이 아닐지 등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동서양의 지적 전통 속에 흐르는 ‘인간중심주의’ 개념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중심주의는 인간동물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신념이자 지배이데올로기이지요. 인간동물이 세상 만물의 중심이며 세상은 인간동물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전개된다는 신념입니다. 이러한 신념은 비인간동물에 대한 소유와 지배, 학대와 살생을 정당화하는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박김수진)

[참고문헌]
르네 데카르트. 2010. 『방법서설․성찰․데카르트 연구』. 최명관 역, 도서출판 창.
멜라니 조이. 2011.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노순옥 역. 모멘토.
에리카 퍼지. 2007. 『‘동물’에 반대한다』. 박상준 역, 사이언스북스.
조너선 사프란 포어. 2011.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송은주 역, 민음사.
조민환. 2006. 「피터싱어(Peter Singer)의 동물해방론과 전 지구적 윤리」. 연세대학교.
존 로크. 1996. 『통치론』. 강정인․문지영 역. 까치.
최훈. 2012. 「동물의 도적적 지위와 종 차별주의」. 『인간동물문화』. 한국학술정보.
피터 싱어 & 짐 메이슨. 2008. 『죽음의 밥상』. 함규진 역, 산책자.
현각. 2010. 『선의 나침반』. 김영사.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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