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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동물권 이야기> 낯선 시선을 독려하며 
 
동성애자 여성들의 인터뷰 기록 “Over the rainbow”의 필자 박김수진님이 “동물권 이야기” 칼럼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인 ‘동물권’에 대해 깊이 살펴보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적 삶을 모색해봅니다. www.ildaro.com 
 
11년 전 강아지 ‘투투’를 만나 함께 살아오면서
 
어릴 때부터 작든 크든 사람을 제외한 살아있는 모든 동물을 무서워했고 그 어떤 동물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도 안 되는 작은 벌레들이 눈에 보이기만 해도 비명을 질러대며 도망쳤고, 동물원에 가서 본 동물들을 보면서도 참으로 무감하기만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무서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참으로 다양한 동물학대와 살해를 일삼아 오기도 했지요. 이를테면,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산으로 들로 잠자리를 잡아 일명 ‘대가리 떨어뜨리기 게임’이라는 것도 했고요, 엄마의 명령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던 쥐를 잡아 삽으로 내리 찍어 죽였던 적도 있어요. 36년 동안 별 생각 없이 닭, 돼지, 소, 오리를 먹어 왔고, 각종 동물들의 피부로 만들어진 지갑, 벨트, 운동화 등을 사용해왔지요. 지금도 일부 사용하고 있고요.
 
그랬던 제가 2002년 초에 갑자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 고민도 없이 그 마음 하나로 5만원에 강아지 한 마리를 샀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투투’이고, 현재 나이 11살로 저와 11년째 동거하고 있습니다.
 
투투와 함께 살면서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동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투투와 오랜 시간 생활을 하다 보니 그 동안 얼마나 동물의 감정과 생각, 습관, 행동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 깨닫게 되더군요. 저는 강아지 얼굴에 표정이 있다는 것을, 강아지들이 눈과 작은 행동으로 자신의 뜻과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아지도 매 끼니 같은 음식만 먹고 싶어 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강아지에게도 친구가 필요하고 가족이 필요하고 잦은 산책과 외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하나씩 하나씩 배워갔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대체 강아지인 투투와 사람인 나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일까?’, ‘투투에게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이 있다면 길고양이들에게도,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들에게도, 사람의 ‘행복한 식탁’을 위해 죽는 닭, 소, 돼지 같은 동물에게도, ‘대가리 떨어뜨리기 게임’으로 죽어갔던 잠자리들에게도 희로애락이 있지 않을까?’ 라고요.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아주 가끔 떠오를 뿐이었습니다. 더 깊이 생각해봤자 답이 안 나오는 얘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투투와 다른 동물들에 관해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미식가인 저는 맛있는 스테이크와 갈비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설명하기 어려운,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는 때가 점점 잦아졌습니다. 식당에서 주문하기 직전까지 불편한 마음에 잠시 괴로워했어요. 하지만 이내 붉은 고기 덩어리가 식탁 위 불판에 오르는 순간엔 모든 걸 잊고는 아주 맛있게 먹었지요.
 
인간에 의해 죽어가는 소를 보는 ‘인간미 넘치는 시선’
 

▲ 2010년 크리스마스 이브 경기도 파주에서 돼지 4천마리가 생매장되고 있다.  Ⓒ이미경 의원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던 지난 2010년 말, 구제역으로 인해 생매장 되는 돼지와 소에 관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구제역으로 생매장 되는 동물들에 관한 뉴스는 2011년 초까지도 이어졌지요. 그 시기에 약 380만여 마리의 농장동물들이 생매장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동물사랑실천협회가 잠입해서 촬영한 돼지 생매장 영상을 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참혹한 영상을 보았다고 해서 당장 ‘고기를 먹지 않겠어!’라고 결심하지는 않았어요. 충격은 충격일 뿐이고, 그 충격을 ‘고기를 먹는 나’와 연결시킬 줄 몰랐던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다음의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고기를 끊어보자! 끊는 게 어렵다면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소비를 줄여보자’고 말입니다.
 
<30초가 지나고 1분이 흘렀다. 안락사 주사를 맞으면 근육이 마비돼 호흡이 불가능해져 통상 1분 안에 숨을 거둔다. 하지만 어미 소의 모정은 죽음조차 늦췄다. 힘이 빠져 무릎이 꺾이면서도 계속 젖을 물렸다. 그렇게 2분이 지났다. 새끼가 입을 뗄 때까지 어미 소는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으려고 단말마의 고통을 이겨냈다. 새끼가 젖을 다 빨고 나서야 어미는 비로소 몸을 옆으로 뉘었다. 여전히 시선은 새끼를 향해 있었다. 엄마가 주는 마지막 식사를 마친 송아지는 쓰러진 어미 곁을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그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끼소도 이내 어미의 뒤를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방역요원들의 눈가가 젖어 들었다.> (서울신문 “안락사주사 맞고도 끝까지 젖 물린 어미 소 모정” 2011년 1월 19일자)
 
기사를 읽으면서 어떤 분노와 혼란을 느꼈습니다. 사람에 의해 이용만 당하다 죽어가는 동물들에 대한 동정심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 분노는 오히려 사람인 나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학살의 현장에서 눈물과 모정을 찾아 묘사하는, 학살의 주체이기도 한 인간의 그 ‘인간미 넘치는 시선’이 불쾌했던 모양입니다. 그 불쾌한 시선이 기사를 쓴 기자만이 아닌, 나 자신의 시선임을 부정하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미 소의 모정을 그린 기사를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나와, 소갈비를 찾아 전국을 유랑하는 나는 누군지, 동일한 대상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생각의 끝에 저는 진정 무서운 동물은 바퀴도, 지렁이도, 나방도 아닌 나, 사람인 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들여다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알아내려고 애쓰지 않았던 영역인 동물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동물사랑실천협회와 동물자유연대라는 동물권 단체에 회원가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청하려면 굉장한 인내심과 용기가 필요한, 동물학대의 참상이 담긴 동영상도 찾아보았고, 동물권에 관한 단행본과 논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SNS를 통해 만난 몇몇 분들과 함께 작은 책 읽기 모임도 운영하였고요.
 
하지만 지식과 경험이 일천하여 지금도 여전히 많은 고민을 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여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방법을 잘 알지 못해요. 그래서 저는 <일다>에 연재하는 칼럼을 통해, 동물권을 고민하는 초심자로서 저의 경험과 생각을 독자들과 나누면서 그 방법들을 구체화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장동물, 실험동물, 모피동물, 전시동물, 애완동물…

▲ 목축산업이 비대해지면서 생산량 증가를 위한 업자들의 노력은 생명체인 비인간동물을 단순 산업 소비재로 취급하는 ‘기업화된 축산업 구조’를 만들어 냈다.   © 동물자유연대 
 
어쩌면 ‘동물권 이야기’ 칼럼이 읽기 수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에서는 ‘인간’의 반대 혹은 대립하는 존재로서 ‘동물’을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시다시피 동물은 동물계로 분류되는 생물의 총칭이며, 인간은 원숭이와 함께 영장목에 속하는 포유동물이지요. 저는 ‘인간’을 ‘인간동물’로, ‘동물’을 ‘비인간동물’로 표기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가독성에 어려움이 생기겠지요.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이런 표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런 시도를 통해서 동물이라는 범주 안에 인간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인간중심의 정의와 해석에 익숙해져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대상화되고 도구화되어 왔는지 드러내려 합니다.
 
비인간동물은 인간동물에 의해 개성이 있는 개별 존재가 아닌, 인간동물의 하위 계급인 추상적 의미에서의 ‘동물’로 규정되었어요. 인간동물은 비인간동물을 농장동물, 실험동물, 모피동물, 전시동물, 오락동물, 애완동물 등 인간동물이 활용할 수 있는 범주로 나눠 착취해왔지요. 전 세계의 인간동물들은 인구의 약 10배인 600억 마리의 비인간동물을 먹기 위해 사육하고 있습니다. 한 해 3억 톤 이상 “고기”를 소비하고 있지요.
 
OECD(국제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인 우리 나라는 경제 규모가 확대되며 1인당 육류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목축산업은 비대해졌고, 생산량 증가를 위한 업자들의 노력은 생명체인 비인간동물을 단순 산업 소비재로 취급하는 ‘기업화된 축산업 구조’를 만들어 내었지요.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국내에서만 ‘실험동물’로 사육되고 활용되는 비인간동물의 수는 총 143만8천681 마리라고 합니다. 실험동물은 인간동물만의 생명 연장의 꿈을 위한 의약품, 미용을 위한 화장품, 대기업 주도의 생활용품, 학자들의 학문업적을 위해 사용되어 왔고요. 또 많은 비인간동물들이 인간동물이 사용하는 구두와 운동화, 벨트, 지갑, 핸드백, 가방, 의류를 만드는데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인간동물에 대한 학대와 착취는 비인간동물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대기업 독식의 공장식 축산업의 등장으로 인해 지역의 주민들이 생계와 건강을 위협받고, 공기와 물과 토양 등 자연환경과 생활환경도 오염되었지요. 공장식 축산업 노동자의 노동환경도 갈수록 열악해졌고, “고기”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곡식은 세계적인 식량위기를 부추기고 있어요.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간동물의 착취의 결과는 고스란히 인간동물에게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육하고 착취하는 동물 vs. 사랑하는 “동물친구들” 

▲ 식용으로 이용되기 위해 개장에 갇혀 있는 '누렁이'는 사랑하는 "동물친구들"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동물자유연대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간동물이 모든 비인간동물에 대해 학대와 착취만 일삼아 온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과 제도교육 내 교과서에도 수많은 “동물친구들”이 등장하고, “애완동물 산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지요.
 
인간동물은 낮에는 구제역으로 생매장 당하는 돼지들을 보며 눈물짓고, 저녁이 되면 직장동료들과 함께 황사로 칼칼해진 목 관리를 위해 삼겹살 집에 들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동물을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로 나누고, 비인간동물에 대해선 착취할 수 있는 동물과 사랑해 마지않는 동물로 나누어 놓았어요. 우리 사회는 똑같은 종인 개를 두고도 “반려동물”과 “식용견”으로 나누지요.
 
인간동물의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인식과 태도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인간동물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일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동물권 이야기’ 칼럼에서 이런 질문들을 저와 여러분들에게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아마 이 칼럼을 읽는 마음이 내내 불편한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글을 기획하고 쓰고 있는 제 마음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싶지만, 그 대안이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현실가능성은 얼마나 있는지 저 역시 아직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동물권’이라는 낯선 권리의 개념, 인간이 아닌 동물에 관한 작은 관심과 고민들을 확장해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의견과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박김수진)

[참고 문헌]
김옥진. 2012. 『최신 인간과 동물의 유대』. 동일출판사.
김진석. 2005. 『동물의 권리와 복지』. 건국대학교 출판부.
동물자유연대. 2012. 「동물보호지 함께 나누는 삶, 2012 가을호」.
멜라니 조이. 2011.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노순옥 역.  모멘토.
박상표. 2012.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개마고원.
우희종. 2009. “동물학대의 현황과 실태로 본 우리들의 탐진치”. 불교의 생명존중사상과 동물의 생명권. 한국불교학회.
제레미 리프킨. 2002. 『육식의 종말』. 신현승 역, 시공사.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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