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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 6. 루페 피아스코 “Bitch Bad”

음악칼럼 ‘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블럭(bluc)’님은 음악웹진 스캐터브레인의 편집자이자 흑인음악 매거진 힙합엘이의 운영진입니다. www.ildaro.com

저항의 음악인가, 나쁜 놈들의 장르인가

▲ 힙합의 저항정신을 보여주는 아티스트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 1982년 생.)  ©Photo Credit: Brian Moghadam [출처- 공식 사이트] 
 
보통 힙합 음악을 마음 편히 듣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으로 ‘지나친 남성성’을 꼽는다. 그도 그럴 것이 힙합 내에서는 여러 가지 마초적인 현상들이 끊임없이 발현되고 있다. 여성을 가지고 노는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관념을 당연하게 여기고,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자신들의 남성성을 과시하기 바쁘다. 힙합 안에서 펼쳐지는 갱스터 컨셉, 포주 컨셉 혹은 남성의 신체 과시나 재산 과시 등 대표적인 면모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이니 힙합 속에서 여성성은 당연히 찾기 힘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 래퍼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여성 래퍼의 수는 굉장히 많이 늘어났고, 이러한 현상은 후에 더 깊이 공부해볼 부분이다. 여성 래퍼가 증가하면서 좀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나 싶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명예남성’이 여전히 절대 다수를 보였다. 이들은 속된 말로 자기가 ‘난 년’이라고 하며, (소유와 판매의 대상인) 여성들 중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여성 래퍼들도 상당수 존재하지만,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곡들은 대개 이런 식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힙합이 굉장히 나쁜 놈들의 장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힙합의 시작은 거리의 파티였고, 힙합은 차별에 저항하는 음악이었다. 힙합은 끊임없이 거리에 사는 흑인들의 이야기를 뱉으며 그들을 대표하고 대변해왔다. 어느새 큰 트렌드는 ‘자기 자랑’이 되어버렸지만, 지금도 사회 비판적인 명맥은 유지되고 있다. 저항의식은 락 음악도 가지고 있지만, 힙합이 보여주는 사회 비판 정신 역시 음악을 읽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부분이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명맥을 잇는 아티스트 중 하나가 바로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이다. 범죄의 온상으로 꼽히는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에게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웠고, 세상에 반항하는 랩을 통해 커가며 많은 고민을 거친 끝에 지금의 위치에 오게 되었다. 그는 끊임없이 사회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면모는 가장 최근의 앨범인 [Food & Liquor II: The Great American Rap Album Pt. 1]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연결을 보여주면서, 미국 사회 안에서 흑인으로서 지니는 정체성과 고민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등 앨범은 다소 강렬한 화두를 많이 제시한다.
 
“Bitch Bad” 언어가 가지는 복잡한 의미
 
앨범 안에서도 두 번째 싱글로 발표했던 “Bitch Bad”는 더욱 강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bitch”라는 단어는 나쁘고 “woman”이라는 단어는 괜찮으며 “lady”라는 단어는 더 낫다는 훅을 지나, 첫 번째 가사에서는 가사 속 ‘bitch’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혼동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설명한다.
 
두 번째 가사에서는 힙합 뮤직비디오나 영상, 가사 전반에서 대부분의 여성이 특정 이미지로 표출되며 소비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불어 성장 중인 여성에게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지를 말한다. 가사 마지막은 앞에 언급한 혼돈과 무분별한 현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런 가사들이 여성뿐만 아니라 성장 중인 남성에게도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 힙합 속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비판한 루페 피아스코의 "Bitch Bad" 뮤직비디오.  
 
제 아무리 커뮤니티 안에서 통용되는, 그들끼리 합의를 본 단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이 더 큰 사회와 만날 때에는 은어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잡년행진”처럼 전복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특히 페미니즘 영역에서 많이 봐왔지만, 그런 경우는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반전의 효과를 주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단어가 사회에서 긍정적 의미로 굳혀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호모포비아들은 ‘게이(gay)’라는 단어를 동성애자 비하의 의미로 사용한다. 힙합 안에서 자주 쓰이는 ‘nigga’라는 단어는, 흑인을 비하하는 말을 흑인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그 어감을 다르게 주고 있긴 하지만, 이 역시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함을 지닌다.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뭔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단어의 의미 문제는 늘 복잡하다. 그런 만큼 뮤지션들처럼 좀더 공개적으로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심사 숙고할 필요가 있다.
 
루페 피아스코는 “Bitch Bad”를 통해 결국 힙합 문화가 가진 여성에 대한 인식을 꼬집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이 한번에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조금씩이라도 바뀔 것을 희망하며, 그는 그 부분에 있어 솔선수범을 보여준 셈이다. 뮤직비디오에서는 그 의미를 더욱 확실하게 담아낸다. 텍스트로 설명하기 힘든 힙합 영상의 스테레오 타입이나 문제점들을 비교적 간결하게 보여준다. (자막 있는 뮤직비디오 보기: http://vimeo.com/48035645)
 
사실 이 곡은 처음 얘기했던 CL의 “나쁜 기집애”를 설명하기 전에 선보였으면 좋았을 법도 하다. “나쁜 기집애”가 어떤 점에서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지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bitch”라는 단어 앞에 “bad”가 붙었을 때, 그 의미가 ‘좋은’과 ‘나쁜’ 사이에서 혼용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힙합이 지닌 의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매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Macklemore & Ryan Lewis)의 “Same Love”와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이 곡은 발표가 된 후 팬들은 물론 많은 아티스트들과 평론들의 격렬한 반응을 끌어냈다. 긴 시간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던 ‘진짜’ 문제를 꺼낸 곡 “Bitch Bad”. 싱글로 나왔던 만큼 그냥 듣기에도 꽤 괜찮은 힙합 곡이다.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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