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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신기하다, 선물을 주는 마음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연재 ▣ 일다
오래된 커다란 노트북을 들고 나와서
2주에 한번 연재라니, 이런 주기적인 스트레스가 얼마만이던가. 한 달에 2주 이상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장돌뱅이로 지낸 지 어언 반 년, 틈틈이 부산으로 돌아와 빨래도 하고 함께 사는 집사람들(4명이서 공동 주거 중임)에게 새로 만난 장소와 사람들에 대해 브리핑도 하고 쉬기도 하고 새로 짐을 꾸린다. 이 소중한 시간에!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나 마치 전문 작가라도 되는 냥 고뇌하는 분위기를 흘리는 거다.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나는 집에서는 집중할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차분하고 조용한 공간보다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조금은 소란스러운 곳에서 집중이 잘 되어 지하철 안이 최고로 훌륭한 도서관이었고, 다이어리에 계획을 세우거나 일기를 쓰기 위해서도 크고 작은 카페들을 돌아다녔다.
▲ 큼직한 자판의 이 노트북은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 이내
지금 나는 매우 무겁고 커다란 노트북을 짊어지고 나와서 재즈 음악이 흐르는, 어느 정도 소음이 공간을 채우는 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고 진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노래를 부르는 일들은 내 생에 최고로 행복한 시간들이지만,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들을 확보하지 않으면 그 행복은 자칫 삐끗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커다랗고 무거워서 정말 글을 쓰겠다고 작정하지 않으면 들고 나올 수 없는, 이 노트북은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다양하고 새로운 첨단 기계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돈이 없으면 가질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하다. 백수이며 돈도 없는 나는, 어느 날 노트북이 갖고 싶어져서(아마 <일다>에서 연재를 제안 받았을 때였을 거다.) 페이스북에 ‘집에 놀고 있고 쓰지 않는 노트북 있으면 제가 잘 사용하겠다’라는 글을 올렸고, 곧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래된 노트북이지만 집에서 놀고 있으니 복잡한 기능이 필요하지 않다면 가져가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덥석 챙겨와 보니 큼직한 자판은 문서 작성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오직 그 기능만을 원했던 터라 완벽한 ‘선물’이었다.
노트북을 주신 분의 어린 자녀들이 신중하게 꾸며둔 다양한 스티커가 붙어있는 게 맘에 들었다. 중고물건을 쓸 때 늘 생각하게 되는 누군가의 시간, 이 노트북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상상하는 것도 좋다. 새 물건을 받아보았을 때 설레었을까, 이걸로 어떤 글을 썼을까(글을 매우 잘 쓰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뭔가 기를 받는 기분도 들었다), 새로운 노트북이 나타났을 때 헌 노트북은 슬펐을까(까지는 오버라고 생각한다) 뭐 그런 상상들. 그렇게 이 선물은 지금까지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미안한 일이지만 어린이들이 신중하게 꾸며둔 스티커는 떼어냈고, 그 자리에는 친구가 영국에서 찍은 사진으로 만든 스티커를 붙여 두었다. 공교롭게도 런던의 어느 카페 테라스의 사진이다. 그리고 함께 사는 친구에게 노트북 파우치 제작을 부탁했고 그녀는 예쁜 꽃무늬 프린트를 골라 안감에 방수천까지 사용하여 노트북의 안전을 고려해주었다.
코 묻은 돈이 돌고 돈다는 이론을 실증하기 위해 주변의 비슷한(백수) 사람들이 만든 것들을 사고 내 것을 팔기도 하고 그런다. 그렇게 코 묻은 돈이 돌 때에는 이야기가 생겨난다. 자, 나와 함께 새 인생을 시작했으니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가야지. (토닥토닥)
선물로 시작된 나의 노래
요즘 나는 ‘선물’을 주는 마음을 연구(?)하고 있다, 라기보다는 그 마음이라는 것이 신기하다고 느끼고 있다. 선물이 오가며 또한 이야기가 쌓이는 것도 목격한다. ‘백수다’라는 것을 내세워 살다 보니 이래저래 받는 것들이 많다. 속 좁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있었고, 그들을 통해 선물을 주는 마음을 몸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허나, 나는 돈이 없기에 다른 것들로 마음을 돌려줘야 할 때가 많다. 생각해보니 그것이 내 노래여행의 시작이었던 것도 같다. 집들이에 가는데 선물 살 돈이 없으니 노래를 부르겠다(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식으로, 뭔가 주고 싶은 때에는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음악가가 되었다는 게 우습지만 실제 상황이다.
▲ N이 가져온 멕시코산 산악용 미니기타로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선물로 노래가 시작되었기 때문인지, 지금도 어떤 낯선 장소에 공연만 하러 가는 것은 웬만하면 피하게 된다. 소개를 받거나 궁금한 곳이 생기면 일단 한번 미리 찾아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그 장소의 분위기를 직접 만나보는 게 노래여행의 숨은 재미라서 그걸 포기할 수는 없다. 지난 4월 마산의 작은 갤러리 공연에서 만난 예술가 N은 나를 한 번 초대하고 싶다고 했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창원에 살고 있는 그녀를 방문했다.
처음 가 본 창원은 비행장 같은 넓게 곧게 뻗은 도로와 도심에 많은 녹지가 눈에 들어왔다. 단정한 모습은 어쩐지 불편하기도 했다. 약속 장소는 오래된 도심의 ‘정우상가’ 앞이었다. 익숙한 이름의 프랜차이즈 가게나 백화점이 아니어서 맘에 들었다.
아침에 급하게 나서느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이런 경우에는 늘 지니고 다니는 물건들을 돌아보게 된다. 시외버스 안에서 가방 속과 목걸이 팔찌 반지 따위를 살펴보다가 몇 가지 대안을 생각했다. 그 얘길 하면서 가죽으로 만든 라이터 케이스(나의 집사람 중 한 명이 만듦)를 건네자, 그녀는 자신도 아침에 집 구석구석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것이 없었다고 했다. 마침 친구가 잠시 맡겨두고 간 멕시코산 산악용 미니기타를 일단 들고 나왔다.
점심을 먹고 호숫가를 걸어 가로수 길 카페 거리에 있는 한 꽃가게로 나를 안내했다. 소나기를 피해 뛰어 들어간 그곳은 그녀의 초등학교 동창이 자신의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일종의 공동체를 꾸려 운영하는 곳이었다. 허브차를 한 잔 마시고 N이 가져온 기타로 (자연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어여쁜 꽃집 아가씨들과 컴퓨터 앞에서 일하던 동창의 남편과 선반을 짜던 목수(아주버님이라고 소개했다)와 이름 모를 많은 꽃들이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언젠가 꽃집 공연을 기약하며 나오는데, 어느새 예쁘게 포장한 꽃다발을 건네 온다. 비 갠 하늘, 양손으로 붙잡은 꽃다발을 번갈아 보며 ‘선물을 주는 마음’이라는 말이 둥실 떠올랐다.
비 오는 날 S의 반지하 작업실에서의 연주
지난 마산의 공연은 열 명 남짓 모인 작은 공연이었지만 그 지역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는 기회였다. N은 그 때 만난 S의 작업실에도 나를 데려가 주었다. 단순한 형태의 사람, 얼굴을 소재로 조소, 회화, 그림책 등을 만들어 내는 그의 작업은 간간히 여기저기서 인상적으로 보아왔었다.
▲ 마산 S의 작업실에서, 나는 기타를 치고 있는 사람을 선물받았다. © 이내
최근에 옮겼다는 꽤 넓은 반지하 작업실에는 이런 저런 공구들과 미완성 혹은 전시를 마치고 돌아온 작품들이 널려있었고 약속 없이 모인 몇몇이 그 곳에 둘러앉게 되었다. 의자 수가 모자라 작업실에 굴러다니던 벽돌과 나무판이 급조되었고, 누군가가 선물로 주었다는 자두와 방울토마토, N이 사온 맥주를 올려놓자 그럴듯한 테이블이 되었다.
다시 (또 자연스럽게) 기타를 들고 노래를 몇 곡 부른다.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는 멀리서 건너 온 작은 기타와 제법 잘 어우러졌다. 노래여행 중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내 노래가 비 오는 날과 잘 어울리며 네다섯 명의 사람들이 들어줄 때 (서로가) 가장 편안하다는 것.
S에게 답가를 부탁하자, 그가 손에 든 것은 악기가 아닌 공구였다. 잠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선물을 건넨다. 오래 전 작업에서 남은 조그만 사람 모양의 조각을 조금씩 변형해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L은 오랜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최근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외로워 보여서인지(?) 두 사람이 포옹하고 있는 모양의 조각을 받았다. 이날 나는 기타를 치고 있는 사람을 받았다. 매우 작은데도 고개와 다리를 까딱이는 게 보여서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창원에서의 시간은 반나절 정도였지만 어느새 마음이 가득 채워져 있다. ‘자본주의의 교환경제’ 따위의 말로는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사실 나의 노래여행기는 그런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건 볼 수도 만질 수도 설명될 수도 없는 것 같다. 돌아오는 시외버스 안에서 ‘선물을 주는 마음’을 계속해서 생각하다가 동네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언젠가 그 제목의 노래를 만들어야지, 하면서 길에 웃음을 뚝뚝 떨어뜨리며 걸었다. 이것은 절대 은유가 아니다.
※ 덧- ‘코 묻은 돈이 돌고 돈다’는 이론은 내가 살고 있는 ‘생각다방 산책극장’(부제: 백수들의 실험실)에서 깨달은 것이다. 돈이 떨어질 때마다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이벤트를 열기도 하고 지내온 지 3년쯤 되었고, 지금은 4명의 여자사람 백수들이 함께 살고 있다. 뭔가 돈을 벌 궁리를 할 때마다 고만고만한 친구들이 와서 돈을 쓰고, 또 그들이 뭔가를 벌이거나 팔면 우리가 가서 돈을 쓴다. 그럼 도대체 새로운 돈들은 어디서 나오는지 알쏭달쏭하지만, 일단은 어쨌든 우리는 살아남았고 지금을 살고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과 관계들이 하나씩 하나씩 쌓이는 그 재미는 알 사람만 알겠지. ▣ 이내 bombbaram.blog.me
<여성주의 저널 일다> 다른 기사 보기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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