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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원조(ODA)의 성 주류화가 필요한 이유
 
우리나라의 개발원조(ODA)에서는 그 동안 “여성” 또는 “젠더(gender)”라는 주제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물론 공여국으로서의 역사가 짧고 그 규모 또한 워낙 작은 탓이 크다.
 
2008년 들어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는 7개 중점사업분야 중 하나인 “환경 및 기타”를 “환경 및 여성”으로 수정하며 개발원조에 있어서 여성문제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KOICA에서 비록 지금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 정도로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빠른 미래에 모든 사업 분야에서 성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원조를 계획하고 집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빈곤국에 대한 경제성장지원 ‘성평등하게’  
 
남성/여성 이분화된 전통적 성 역할이 많이 무너지고 있다 해도, 여전히 대다수 여성이 ‘비공식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의 창출과 재분배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성의 전통적 성 역할이 강조된다.
 
일례로 아프리카의 카메룬을 연구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의 주당 가사노동 시간은 4시간인데 반해 여성은 31시간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남녀의 가사노동 시간의 차이는 여성이 소득창출이나 지역사회 활동과 같은 공식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큰 제약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여성이 빈곤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빈곤국 여성에 대한 투자는 아동건강과 교육에도 영향준다

경제성장의 불균등한 분배는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강, 보건, 교육과 같은 인간의 기본욕구에서부터 사회, 문화, 정치적 기회에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UNDP의 1995년 인간개발보고서는 “빈곤은 여성의 얼굴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또 십 년 후인 2004년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도 이 같은 불균형이 심화되어 여성의 경제적 지위, 교육기회, 건강 및 보건수준 등이 저하되는 악순환을 지적한 바 있다.
 
21세기의 개발 담론은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MDG)를 주축으로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2005년까지 여학생의 초등교육을 남학생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중간 목표는 이미 달성에 실패했다. 그리고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2015년까지 MDG 달성에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유엔에서는 성별 불평등이 지속되는 한, MDG 8개 목표 중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여성에 대한 투자가 자녀의 건강증진 및 교육확대 등 사회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즉, 여성에 대한 투자는 해당 여성에서 다음 세대로 전이되어 지속적으로 빈곤퇴치와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에 많은 공여국들은 ‘개발원조의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를 형평성의 문제로서 원조기구의 당위적 의무로 인식하고 있는 동시에, 효과적인 빈곤퇴치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원국에서 공여국 된 한국, ‘성평등 원조’ 기반 마련해야
 
국가발전은 사회적 조화와 안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수원국에 대한 이해는 정치.사회 제도와 경제구조를 비롯하여 역사와 문화적인 특성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젠더(gender)는 수원국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시작점 중 하나가 된다.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은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를 통해 보급된 전략으로서, 성평등 실현이라는 목표의식을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과 이에 따르는 집행활동의 중심에 두고 모든 단계에서 성 인지적(gender responsive) 관점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원조를 하려면 수원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성평등이 개발에 필수적이며, 모든 과정에서 여성이 의사를 고안하고 표명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성 주류화는 여성에 대해 개발의 혜택을 필요로 하는 수혜자로만 보지 않고, 남성과 함께 개발을 계획하고 이행하는 주체로서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표, 정책, 전략, 조치의 변화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조직구조, 절차 등과 같은 제도적 변화를 포함한다.

 
그러나 조직의 속성 상 근본적인 변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젠더에 대한 논의는 관행의 주변부에 머물기 쉽다. 성공적으로 성 주류화를 이룬 사례도 많지만, 일부에서는 성 주류화가 성 불평등한 현실을 변화할 책임과 의무를 여성전담부서가 아닌 모두에게 분배하는 효과를 가져와, 오히려 여성을 수혜자로 하는 활동과 예산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 같은 실패는 성평등 추구에 대한 정치적 의지와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보다 ‘도구’에 지나친 강조를 둔 탓이다. 공여기구 중에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과 성평등을 목표로 하는 분야별 사업을 각각 추진하는 이원적 접근을 추구하기도 한다.
 
“젠더고 뭐고 다 몰라도 우리나라는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는데 왜 성 주류화를 요구하는가.” 개발원조를 연구하면서 여러 번 들었던 질문이다.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개발경험이 개발도상국에게 좋은 모델이 된다고들 하지만, 과거 우리의 노동집약적인 경제정책이 오늘날의 세계경제에서 더 이상 효과적인 열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젠더니 뭐니 어려운 용어가 난무하는 요즘은 개발논의가 우리에게 생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개발성과가 성평등과 여성에게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특히 여성의 역량이 강화되는 과정에는 유럽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또 이렇게 성장한 여성단체들이 다양한 성평등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를 상기해볼 때, 우리나라의 개발원조가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에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개발원조의 성 주류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시급히 요구된다. 
[일다] 정혜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공적개발원조(ODA)의 성 주류화 전략 및 성 분석도구 개발, 개발도상국의 여성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관련 기사보기: ODA 댐 건설 등 현지주민에 오히려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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