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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틈새를 채워주는 “관계의 미학”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편지를 쓰는 마음
※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굳모닝입니다^^ 지난번 대전왔을 때 8살꼬마랑 함
께 잠시뵈었던 000입니다^^ 잘지내시지요 딸이 다
른음악 들으면_이내언니꺼 듣고싶어요_하고 3번9번
틀어주세요 주문까지하네요^^ 대전오시면 꼭연락주
세요~ 맛난맥주 한잔해요^^”
아침에 문자가 도착했다. 지난 달 대전의 산호여인숙에서 열린 “관계의 미학” 전시의 오픈 스튜디오에서 만난 엄마와 딸의 인사였다. 그날의 기억이 불현듯 찾아와 기분이 좋아졌다.
작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려준 “8살 꼬마”
▲ 산호여인숙에서 열린 2015 산호 레지던스 “관계의 미학”에서 여덟 살 어린이와 함께. © 이내
그날, 처음 만난 여덟 살 여자아이가 눈인사를 하더니 말을 걸어왔다.
“남자에요?”
예전에 삭발을 했을 때(한번쯤은 하고 싶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전에 시도해보았다) 어린이들에게 자주 들었던 질문이었지만, 오랜만에 들어 잠시 당황했다.
“너는 남자야 여자야?”
맞춰보라기에 ‘음, 너는 머리에 리본도 있고 꽃치마도 입었고 빨간 구두도 신었지만 요즘은 남자들도 치마를 입고 하니까 그걸로는 잘 모르겠는걸’ 했더니, 자기도 치마 입은 남자를 무대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곧장 내가 자기에게 한 것처럼 나를 살피더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귓속말로 우리는 서로의 성별을 비밀스럽게 알려주었다. 이후 그녀는 새로운 질문을 해왔다.
“작가에요?”
역시나 주춤하게 되는 질문이라, 너는? 하고 되물어 다시 시간을 끌었다.
“음, 이런 저런 작은 것들을 만들기도 해요. 나무로 비행기를 만들기도 했어요.”(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아 그럼 작가구나!”
그 날 나는 ‘작가’라고 나를 소개하며 작은 전시장을 열었고, 사람들이 그곳을 이리저리 구경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은 작가라는 개념을 나는 이 여덟 살 어린이에게 배우게 되었다.
부산으로 돌아와서도 이 대화를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받은 안부 문자를 보고, 나에게 가르침을 준 이 어린이도 나를 기억하고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낡은 기타가방과 신발, 빈 원고지와 펜
우리의 극적인(?) 만남이 있었던 <산호여인숙>은 게스트하우스지만, 문화 기획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주인장 부부의 노력으로 1층을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게스트하우스의 시작과 함께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과거 여인숙이었던 한 평 남짓한 공간들을 작가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다.
▲ 산호여인숙에서 열린 “관계의 미학” 전시장 벽에 나의 일기와 편지, 그림 등을 전시했다. © 이내
2014년에는 회화, 사진,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 네 명이 워크숍, 세미나, 발전소 견학을 몇 달 간에 걸쳐 함께하며 에너지의 경로를 좇아가보는 “에너지 로드” 장기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작가들이 맺어가는 관계를 보며 2015년 “관계의 미학”이라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그간 친구로, 동료로 지내온 <산호여인숙>에서 공식적인(?) 프로그램을 함께하자고 했을 때, 게다가 그것이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작가’들의 활동이라고 들었을 때, ‘내가?’ 라는 물음이 당연히 찾아왔다. 그저 일상의 노래들을 만들고 부르다가 ‘음악가’라는 이름도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데, 레지던스 전시라니!
하지만 내가 같은 ‘종족’이라고 느끼고 있는 이들이 ‘관계’라는 주제로 건네온 물음에, 나는 우리가 맺어온 ‘관계’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앨범을 한 장이라도 더 팔(아주)기 위해 청소를 할 때도, 특별한 단체 방문객이 있을 때도, 내 노래를 틀어두는 사려 깊은 친구들이 나에게 (그게 무엇이든!) 함께하자고 한 것이니까.
전시를 알리는 오픈 스튜디오에서는 이번 레지던스를 함께하는 네 명의 작가들(회화, 영상, 음악, 무용 네 가지 장르)이 이제껏 자신들이 사용한 ‘도구’라는 주제로 전시장을 열었다.
▲ 노래여행에 늘 함께했던 구멍 난 기타가방과 신발. © 이내
나는 지난 해 노래여행에서 늘 함께했던 기타가방과 신발을 전시했다. 공교롭게도 둘 다 닳아서 제법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이제껏 무언가가 닳도록 열심히 살았던 적이 없는 것만 같아 스스로를 조금은 대견하게 느끼고 있는 터였다. 구멍이 나도록 닳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 바로 내가 써온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나의 전시장에는 구멍 난 가방과 신발뿐 아니라 그간 끄적여 둔 일기와 편지(실은 그것들이 바로 노래가 된다)와 누군가가 나를 그려준 그림과 책상과 의자와 빈 원고지와 잉크와 펜을 두었다.
그리고 편지를 써달라는 부탁도 남겨놓았다. 혹시 노래가 될 지도 모른다는 귀띔과 함께. 요즘은 공연에서 나를 소개할 때 ‘일기와 편지로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더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일기나 편지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 나는 그이에게 답장을 하는 게 되지 않을까.
편지를 주고 받는 마음을 생각한다. 아침에 받은 문자도 실은 편지에 다름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 가끔 내 노래를 듣고 앨범 속지에 조그맣게 적힌 주소를 통해 메일을 보내오는 (아름다운 영혼의) 사람들이 있다. 한 곡 한 곡 자신의 느낌을 정성스레 적어 보낸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시 꺼내보며 힘을 얻기도 하고, (가끔 혹은 자주)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한다.
마음을 꺼내어 전달해 주는 것, 어쩌면 짧고 작은 그 시간이 무언가 거대하게 굴러가는 것 같은 이 세상과 수많은 사람들의 틈새를 채워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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